<국제 시장>은 영화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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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 논란은 영화계에서 나온 논란이 아니다. 주로 정치권에서 시작된 논란이다. 논란의 주된 내용은 이 영화가 보수 쪽에 유리한 이야기다 아니다 하는 논쟁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보수와 진보 논란에 휘둘려야 하나. 할 일도 많은 데 피곤하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는 사실이 아니라 허구임을 알아야한다. 영화 속 사실을 역사적 사실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의 허구는 이데올로기를 가공하거나 특정 이데올로기를 조장하기도 한다. 영화의 무서운 조작 능력 중 하나다. 애국가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에 이어 여야 차기 대권주자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연합 문재인 후보가 각기 <국제시장>을 자신들의 영화라고 주장하는 듯한 말을 했다. 이후 일부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다시 보수와 진보의 싸움으로 불이 붙는 형국이 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시니어의 문제가 다뤄져야 할 시점에 등장한 ‘국제시장’은 반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라는 등 <국제시장>을 ‘토 나오는 영화’ 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영화는 자체의 의미 평가를 넘어서서 이념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국제시장>의 감독 자신은 보수든 진보든 진영의 논리로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버지 세대를 생각하고 만든 영화라고 말할 뿐이다. 주인공 덕수란 이름도 감독의 아버지 실명이란다. 정치인들이여! 나의 아버지를 힘들게 한 책임을 지시라. 미래의 정치 지도자들이여, 우리 세대 각각의 아버지인 유권자들에게 ‘힘들었어요’ 란 말이 제발 안 나오게 정치를 해주기 바란다. 영화를 영화 이상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표 얻을 생각 말고 우리 국민인 관객, 유권자들 모두에게 ‘힘들었어요’ 란 말 안 나오게 국민을 위해 희생해 주기 바란다. 덕수가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생(生)을 희생했듯이.
영화는 허구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호도할 수 있고 선전선동을 할 수도 있다. 영화의 부정적 힘이다. 무엇보다 대중을 강력하게 흡인하는 호소력은 스크린이 갖는 힘이다. 시청각 매체인 영화는 수용자들에게 오감으로 직접 전달된다. 언어를 매개로 하는 매체는 관념이 우선한다. 그러나 영화는 영상과 사운드가 관객을 직접 지배한다. 이미지는 바로 수용자의 뇌에 입력된다. 음악과 사운드는 관객의 심장을 금방 움켜잡을 수 있다. 영화의 큰 힘은 감동에서 나온다. 조작과 감동이라는 양 날을 이용해서 영화는 가끔 특정 이데올로기를 교묘히 대중들에게 전파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국제시장>은 그런 영화가 아니다.
요즘 신문 지상을 달구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영화에서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의 부부싸움 중 애국가가 나오자 덕수는 황급히 국기를 바라보며 근엄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바라본다. 화가 덜 풀린 덕수의 부인 영자(김여진 분)는 씩씩거리다 그냥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다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데 유독 혼자 가만히 있는 영자를 목격한 나이 드신 어르신이 ‘뭐하는 인간이야?’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제야 엉겁결에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이를 두고 한 대통령의 말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부부싸움 중이라도 애국가가 나오면 싸움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고 했다. 물론 대통령은 당시 이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덕수는 공부 잘하는 남동생의 대학 진학을 위해 자신은 학업을 포기한 채 부둣가 노동 현장에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의 수입만으로는 생계가 힘이 들자 돈을 벌려면 광부로 가야한다는 친구 달구(오달수 분)의 유혹으로 둘은 함께 파독 광부가 된다. 다시 월남전에 민간 기업 요원으로 참여했지만 한 쪽 다리가 불구가 된다. 차디찬 이국땅 독일 탄광에서 매몰 사고로 부상을 당하고 월남전 와중에 총에 맞아 한 쪽 다리가 불구가 되면서까지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동생들 학비 조달과 결혼까지 시킨 아버지 덕수는 고모의 국제시장 ‘꽃분이네’ 가게를 인수한다. 백발노인이 되어 손자 손녀 여럿 둘 때 까지 가게를 팔지 않고 오로지 장사만 계속하는 옹고집 노인으로 변해있다.
주인공 덕수는 우리 아버지의 자화상이다. <국제시장>은 우리 시대의 모든 아픔을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6.25 전쟁, 함흥철수작전, 부산 피난시절, 미군에 구걸하는 어린 아이들,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삶, 월남전 참전, 남북이산가족 상봉 등 지난 시대 역사적 사건 속 주인공인 아버지들의 삶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덕수와 같은 시대를 산 우리의 아버지들은 자신들의 삶을 그린 이 영화를 지긋지긋해서 보지 않겠다고 한다. 영화 속 아버지의 아들 세대인 지금의 40~50대와 그의 자녀 세대인 20~30대 우리들은 이 영화를 보고 아픔과 공감의 눈물을 흘린다.
영화를 본 여야 정치지도자들은 염치 불구 체면 불구 눈물 펑펑 흘리면 영화를 보았노라고 고백한다. 이것이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가? 정치지도자라고 해서 눈물이 없다면 인간적 면모를 갖춘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관객 1천만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이 흥행영화는 정치영화도 아닐 뿐 더러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다루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힘들고 아픈 삶을 살았던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한 단면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산가족 상봉 장면에서 우리는 울었고 탄광매몰 사고에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구조하러 가는 장면에서 우리는 눈물을 흘렸다.
영화의 주제는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다. 덕수는 마지막 장면 혼자 방에 들어와 흐느끼며 말한다. “아버지, 저 진짜 힘들었거든예” 피난길에 헤어져 생사를 모르는 아버지의 사진을 끌어안고 애절하게 내뱉는 말이다. 덕수는 아버지의 유언과도 같은 ‘가장의 책무’을 다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포기하며 오로지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왔다. 이것이 우리시대 아버지의 삶이었다. 지금의 40~50대 세대는 이런 우리의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새삼스레 감사해한다. 20~30대 세대가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아버지의 삶일 수도 있다. <국제시장>은 우리 시대 희생적 아버지의 삶을 그린 드라마이다.
영화는 영화로 보아야 한다.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역사 스페셜도 아니다. 더군다나 시사 특집보도국 프로그램도 아니다. 그저 가공의 인물을 내세운 상업영화일 뿐이다. 그것도 지극히 통속적인 방식으로 세련되게 빗어낸 할리우드류의 잘 만든 영화일 뿐이다. 누가 영화 속 덕수와 같은 삶을 살았겠는가? 누가 덕수 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겠는가? 있다 해도 지극히 소수일 것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덕수와 같은 전형적인 삶을 살아온 우리의 아버지 세대를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를 가졌을 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는 아직도 국제시장 여기저기 일하고 계신다. 부산, 서울, 광주, 전주, 대전, 대구, 강릉, 춘천 등 전국 곳곳에 살아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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