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일본은 지난 91년에 개시된 국교정상화 교섭과 2000년 다시 재개된 협상을 거쳐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총리가 평양을 방문해서 소위 ‘평양선언’을 발표하고, 2004년 2월 2차 북일정상회담을 할 때만 해도, 양측간 교섭 타결이 임박한 것처럼 비쳐졌다. 무엇보다도 식민지 관계 청산 처리에 대한 양측의 팽팽한 입장이 어떻게 정리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북한측은 조선병합은 불법이며 배상방식과 청구권방식을 통한 해결을 주장한데 대해, 일본측은 병합은 합법이며 경제협력방식으로 인한 해결을 주장했다. 2002년 9월 ‘평양선언’에서는 식민지지배에 대한 사과표명과 무상, 장기 차관 등 경제협력방식으로 인한 문제 해결, 그리고 양국 모두 상대에 대한 재산청구권 포기를 기본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북일관계는 사실상 단절되었다.
북한과 일본은 평양선언 채택 12주년을 맞아 지난 5월 말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국장급 회담을 개최하고 납치자조사 및 대북제제해제에 전격 합의했다고 동시 발표했다. 북측의 외무성대사와 일본측의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합의한 내용을 보면, 우선 양국이 과거청산과 현안문제를 해결하고 국교정상화 실현을 위해 협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은 모든 일본인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였고 이에 대하여 북한은 협력할 의사를 표명했으며, 일본은 독자적 대북제제조치를 해제할 의사를 표명하였다. 다만 UN안보리결의과 관련된 조치는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했다. 결론적으로 납북자에 일본의 요구에 대해 북한의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재조사 실시와 일본의 독자적 대북제제조치 해제, 그리고 진전이 있을 경우 일본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제공과 과거청산 및 국교정상화 실현이라는 로드맵(Roadmap)을 마련한 것이다.
북한 김정은정권이 ‘스톡홀름 합의’를 충실히 이행할 경우 양국관계는 획기적인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과연 일본이 요구한 대로 만족할만한 실질적인 조사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그 동안 북한은 일본정부가 북한에 납치되었다고 결론을 내린 일본인 12명 중 요코타 메구미씨 등 8명이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북한에 입국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의 과거 행태를 볼 때 금번 스톡홀름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 질지는 불투명하다. 다만 북한이 북일합의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의도는 무엇보다도 외교적 고립탈피와 경제난해소라고 보여진다. 북한은 미국과 한국과의 대화가 막혀있거나 제한적이고, 최근에는 중국과의 관계도 불편해진 상황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외교적 돌파구를 찾고 일본의 경협지원으로 민생개선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2015년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한편으로는 중국에 대한 지나친 경제의존도를 낮추면서, 일본의 경제지원을 통해서 당면한 경제난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북일국교정상화는 북핵문제 해결이나 주변국과의 합의 등이 요구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아베정부 역시 북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선 납북자문제 해결을 통해서 대내적으로는 자민당의 집권기반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한국의 관계 개선을 견제하고, 남북대화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외교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 동안 남북한문제는 자민당, 민주당을 막론하고 일본정부의 숙원사항으로 다루어져 왔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현재 집권 자민당과 아베총리는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 평화주의”에 따른 집단적 자위권 추진과 더 나아가 평화헌법의 개정노력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듯 하다. 아울러서 북일간 관계개선은 한중간 전략적 협력에 대한 견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으며, 북한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한국과 주도권 경쟁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납북자 조사가 어느정도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일본의 대북한 경제지원이 실질적으로 이루어 질 경우에는 북일간 교역액은 급속히 확대되고 이는 북한 주민의 생활난해소와 북한경제 회생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북한의 산업인프라 개선과 경제특구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만경봉호가 운항재개 되면 연간 1만 5천명 이상의 북한주민이 일본을 방문하고 이러한 인적 교류를 바탕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고 분석되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북일관계 개선은 긍정적인 면과 우려되는 면이 공존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외교적 고립탈피와 일본의 지원에 의한 민생경제향상은 남북관계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평화통일비용을 줄이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북일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남북관계가 오히려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남북교류와 협력이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도 있다.
동북아정세의 큰 시각에서 보면, 북일교섭은 여러 가지의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미국이 유지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이 북일관계 개선을 과연 어느정도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가 주목된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북일교섭에 대하여 내놓고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북핵문제와, 한미일공조라는 차원에서 급격한 북일관계 진전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일단 북일교섭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중국은 북일교섭이 “동아시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유리하게 작용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적인 입장이다. 북일교섭이 북미대화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고 또 북한에 대한 제제완화를 촉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2년 9월 평양선언 이후 북미간 대화가 재개된 적도 있었다. 또한 북일간 대화는 한미일 공조체제를 이완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이끌고 있는 중국은 북일교섭이 6자회담의 재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또한 중국이 우려하는 부분은 일본의 대북접근으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다. 특히 중국이 한국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금번 베이징 APEC 정상회담에서 양국간 FTA를 타결함으로써 계속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북관계의 진전이 한중관계의 진전에 대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부분이 가장 신경이 쓰일 것이다.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북일 교섭이 러시아의 국익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북한의 개방은 한반도의 평화 안정에 도움이 되고 북한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경쟁 속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향후 북한 김정은정권은 그 동안 소원했던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면서 내부적 통제를 강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3차 북핵실험과 장성택 처형 이후 북중관계가 다소 경색되는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은 일본의 지원을 받아 대외경제협력과 관광 및 경제특구개발과 같은 조치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주변국과 국제사회가 원하는 수준의 개혁과 개방은 거꾸로 정권의 안정성을 위협하기 때문에 북한이 당분간 근본적인 변화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는다. 또한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북한 핵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의 진전이 없는 한 북한의 대일접근은 한계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박근혜정부 입장에서는 북일교섭은 기본적으로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과도한 북일접근은 일본의 대북영향력 확대와 한미일 공조체제를 약화시킬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신중히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일관계가 개선되어 일본의 대북경제지원으로 북한이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고 대외개방정책으로 나아가면 좋지만, 반대로 북한 김정은정권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면서 6자회담에 대한 관심이 아예 소멸될 경우 이는 오히려 한반도 안보상황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통한 남북대화의 동력을 잃지 않으면서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과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한미일 삼국공조체제를 견실하게 유지해 나가는 것이 북일교섭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