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파리 구석구석 돌아보기(15)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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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희 부부는 굳게 결심했습니다. 푹 쉬기로.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이 주말이면 모여서 쉬는 장소로 유명한 불론뉴 숲 (Bois de Boulogne)으로 갔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아래에 실은 구글 지도의 오른쪽 밑에 있는 라늘라그 (Ranelagh) 역에서 내려 약 1Km를 걸어 지도 왼쪽에 보이는 호수 두 개 (위의 큰 호수 안에는 섬도 두 개 있음)의 중앙에 해당되는 부분에 갔습니다. 그래서 그늘이 있는 벤치를 찾아 그냥 주저앉아 쉬어 보기로. 위쪽 호수의 오른쪽 아래 부분에 자리잡은 저희 부부는 약 30분 앉아 있다가 드디어 길게 눕기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네요. 자리도 불편하고 해서...
우리가 찾은 불론뉴 숲은 두 가지 이미지가 있습니다. 평일 저녁이 되면 화류계 여성들이 길거리에 서서 호객 행위를 하는 곳 (OECD 근무를 할 때 퇴근길에 이곳을 차로 지나가면 언듯언듯 그런 여성들이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프랑스 경찰들은 이 숲 주변을 2인조로 순찰을 도는데 이 여성들을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잘못되어 소란이 일어나면 개입하려고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미지는 오늘 같이 주말이 되면 프랑스 사람들이 가족별로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자전거도 타고, 배도 타고, 그리고 젊은이들 모임에서는 생일 축하 파티도 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빠리지앵들은 이곳에서 주말에 조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감히 얼굴을 대놓고 찍지 못해서 제가 서 있는 뒤에 건장한 여성이 조깅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퇴폐적인 장소와 가장 건전한 장소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셈이죠.
이곳은 호숫가를 거닐면 좋은 경치를 볼 수 있습니다. 좋은 경치라고 찍은 몇몇 사진도 올립니다.
호수에 떠다니는 큰 기러기 떼와 이곳 터줏대감 물닭 (Poule d'eau라고 합니다.)들도 찰칵.
얼마나 잘 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사정이 생겨버렸습니다.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섬 안에 좋은 식당이 있는 것 같아서 (Chalet des Iles) 배를 타러 갔습니다. 배는 무사히 타고 들어갔는데 안내역을 담당하는 여성이 우리는 예약을 하지 않았다고 땡볕 자리로 안내해 주고는 부하 (?) 웨이터에게 넘겨주고 가버립니다. 다른 곳 자리는 없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다시 배를 타고 나왔습니다. 그냥 배 한번 공짜로 타본 셈이지요. 그런데 다른 식당은 그곳에서 북쪽으로 호수를 거의 1/3 바퀴를 돌아 (구글지도에 왼쪽 윗부분에 붉은 색으로 표시: Chalet des Bosquettes) 그곳으로 갔습니다. 이곳은 간이식당. 간단한 점심 메뉴밖에 없어서 제일 큰 것을 시켜 둘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별로 맛있게는 먹지 못했지만 파라솔을 펴고 시원한 그늘에서... 그래서 커피도 한잔씩 마시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곳은 화장실이 없다고 하면서 아래로 한참 가서 우측으로 가면 있다고 하는데 가보니 아주 고급 운동 및 사교 클럽. 사정사정해서 겨우 용무를 마쳤지만 이제 거의 호수를 다 돈 셈. 그렇게 호수 밑까지 다시 와서 갑자기 저의 뇌리에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타고 가자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호수 꼭대기와 비슷한 레벨에 있는 OECD 옆으로 가서 버스를 한참 기다리다가 버스가 계속 오지 않는 것을 어떻게 알아볼 길이 없어 다시 10분을 걸어 결국 지하철역까지 와서 호텔까지 오니, 오늘도 무려 11,500보를 걸어버렸네요. 쉬러 갔다가 조금 지쳐서 돌아오는 길에 저희 아내는 그곳 기운이 나빠서 그렇다고 하네요. 평일 저녁에 그런 일이 벌어지니, 아무리 주말에 건전하게 사용한다 해도 그런 기운이 남아 있을 거란 주장이죠. 마지막 사진은 아마도 이 호수에 물을 공급하는 곳인 것 같아서 찍었습니다. 청계천 상류에 물을 흘러내리는 폭포를 떠올리면서...
자 이것으로 끝 하면 정말로 쉬운 일이지만, 혹시 아시는 분들 중에는 제가 왜 나무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궁금해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이야기거리가 너무 많아 미루어 왔죠. 오늘은 나무를 많이 보었으니 나무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는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쪽 끝에 놓여 있습니다만 기후대가 비슷하다 보니 비슷한 나무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 프랑스 공원이나 숲, 그리고 도로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들은 마로니에 (우리 이름은 칠엽수), 피나무 (프랑스 이름은 Tilleul), 플라타너스, 그리고 단풍나무 (우리나라와 종류는 다릅니다. 주로 잎이 다섯 갈래로만 갈라지지요.) 등입니다. 이 네 나무만 알면 곳곳에 가도 아는 척 할 수 있으시지요. (여기서는 제가 친절하게 사진 밑에 약간의 소개를 붙이겠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장소들을 거닐다보면 자주 볼 수 있는 침엽수 중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히말라야 시다 대신에 이곳에서는 가까운 모로코산 아틀라스 시다와 레바논 시다가 많이 보입니다. 불론뉴 숲에서는 멋진 레바논 시다들이.
우리나라에서는 공원이나 깊은 산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서어나무가 이곳에서는 길거리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서어나무의 열매가 마치 벌레집을 아래로 대롱대롱 달아놓은 듯하게 달린 모습은 항상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서어나무보다 더 신기한 것은 불론뉴 숲에 아름드리 중국 굴피나무가 많이 보인다는 것인데, 아래로 서어나무보다 훨씬 긴 벌레집 (이건 제 용어입니다.) 같은 것을 달고 있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합니다.
불론뉴 숲 같은 데에 오면 저는 반드시 찾는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이름은 참나무, 영어로는 Oak, 그리고 불어로는 le Chene이죠. 이곳 참나무들은 우리나라 참나무들보다 잎의 결각 (잎 옆부분이 물결 모양으로 파인 모습)이 훨씬 깊게 파이는 경향을 보입니다. 우선 오늘은 도토리 모양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갈참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에 비견될 만한 세 열매 사진을 찍었습니다. 프랑스 나무책을 보면 불어명이 나오겠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나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여기서는 이 정도에 그치겠습니다. 이곳 참나무들의 우람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들도 몇 개 담습니다.
위 왼쪽이 상수리 열매, 오른쪽이 신갈 열매, 아래가 갈참 열매를 닮았네요.
거닐다보니 우리나라와 거의 같은 모양의 나무들이 보이는데 아마도 이들 대부분이 두 나라 모두에 해외로부터의 도입된 나무들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낙우송, 태산목 (잎이 겨울에도 지지 않는 상록 목련입니다.), 무화과, 피라칸다, 이태리포플라, 그리고 박태기나무까지 (박태기나무의 콩깍지 색깔이 우리나라는 대부분 까만 데, 이곳은 빨간 녀석들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위 왼쪽부터 무화과, 피라칸다, 태산목, 박태기나무, 이태리포플라, 그리고 낙우송.
마지막으로 그래도 소나무를 다루어야지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육지에도 흑송들이 자라네요. 여하튼 죽죽 벋은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위의 호수 경치에서도 섬 쪽에 멋있게 자란 소나무군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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