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의 동북아전략과 북핵 협상 재개 정책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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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종연구소의 [정세와 정책 2021-4월호-제11호](2021.4.1.)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지난 2009년 2월 실패로 끝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WMD 능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북핵문제는 정체상태에 빠졌고 남북관계도 시련을 겪어와 바이든 행정부 출범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복원되는 전환점이 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나 미국의 새로운 대외정책의 윤곽이 드러나고 미 국무 및 국방장관이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 뒤 국무장관과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중국의 외교실무 최고책임자들을 만나 격론을 벌이면서 동북아 정책 기조의 주요 단면들도 드러나고 있다. 단지 북핵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대북 정책의 기조나 전략은 마무리 중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북핵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진척시키면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며 호혜적인 경협 전개와 함께 궁극적으로 북한의 핵 포기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 한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보다 패권 도전자 중국을 봉쇄·포위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동맹국인 한국에게 이 전선의 선봉을 맡기는데 주력하면서 집중해도 해결이 어려운 북핵문제보다 우선 북한의 인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 결과 한반도에 평화가 복원되기보다 한·미·일 대 북·중·러 간에 신냉전적 대결 구도가 다시 한 번 펼쳐질 가능성이 증폭되고 있다. 북한의 남침과 도발을 억지하고 한·미가 협력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한다는 한미동맹이 오히려 갈등적 신냉전구도 형성의 기제로 작동할 우려가 등장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동북아 정책 방향을 살펴보고, 북핵 협상을 재개시키기 위한 한국의 합리적인 대응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동북아 및 한반도 전략 기조
트럼프 시절부터 미국은 ‘동북아전략’ 또는 ‘아태전략’이란 표현보다 ‘인태전략’이란 표현을 사용해왔고, 이는 인도를 포함시켜 중국을 포위·봉쇄하겠다는 전략적 의지를 함축하고 있다. 먼저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도전으로 인식하고 미 해군의 주력을 태평양으로 이전시키는 전략적 재균형을 시도했고, 트럼프는 막대한 대중 무역 적자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대중 보복 관세와 제재 등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시작해 기술 경쟁과 인권 및 체제를 문제 삼는 총체적인 반중 정책을 노골적으로 구사했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미국인의 반중감정이 팽배하자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요란스럽게 대중 적대정책을 과시했지만 트럼프를 거치면서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오히려 30% 이상 증가했다. 미국의 제조업이 쇠퇴한 가운데 인위적으로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단지 트럼프는 오바마가 ‘전략적 인내’를 내세워 8년간 북한과 대화 한번 하지 않은 것에 착안하던 터에 김정은과의 탑다운 방식 정상회담의 세계적인 흥행성을 고려해 문재인 정부의 주선으로 세 차례나 김정은을 만나 북핵문제 해결의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하는 듯했다. 하지만 의회·언론 및 보수층의 강력한 대북 불신 압박에 따라 하노이에서 단계적 비핵화의 1단계 실행안에 대한 합의를 걷어차 북·미 협상의 진전을 막고 북한의 대미 불신을 키워 한반도 정세 경색의 원인을 제공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우선 동맹간 신뢰에 입각해 대북 억지를 위한 협력을 다지고 상호간에 호혜적인 동맹의 성격을 확인하면서 북핵의 최대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우리 정부의 의견을 경청하여 북핵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복원하는 것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류 공동의 과제 해결을 위한 다자 협력에 다시 나서고 동맹국과의 유대를 강화해 국제질서 주도국으로 복귀하겠다는 점에서는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중국을 패권 도전자로 간주해 전략적으로 포위·봉쇄한다는 기조의 전략은 트럼프를 계승했다.
다른 점은 트럼프를 지원했다고 여겨지는 러시아와도 대립하고, 트럼프가 주로 양자 차원에서 중국 때리기를 했다면, 바이든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워 일본, 호주, 인도 뿐 아니라 한국까지 동원해 군사 안보와 경제, 무역, 기술 부문에서 중국을 압박하고, 가능하다면 군사·안보적으로도 한국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한미동맹을 중국을 견제하는 동맹으로 전환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특히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3월 10일 미 의회청문회에서 올해 내에 한국에 배치된 사드의 성능 개량사업을 진행할 것임을 시사해 2017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이 겨우 수습되어 가는 단계에서 다시 한 번 한·중관계가 크게 타격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미국의 주장은 옳고 충분히 동의하지만, 미행정부가 한·일간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 갈등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보이는 것이나 인도의 계급제나 사우디 등 미국의 중동 우방국들의 비민주적 통치에 대해서는 묵과하는 반면 북한과 중국을 주로 비난하고 제재까지 가하는 것은 공정성이 부족해 보이고 인권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여겨질 수 있다. 세계 각국마다 내부 사정이 다르고 대다수의 나라가 나름대로의 문제점들은 존재하므로, 우리 정부는 이를 전면에 내세워 타국의 내정에 관여하고 적대적 국제관계를 조성하는 것은 신중히 접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겨진다.
북·미간 신경전
WMD 확산방지의 일부인 핵 문제 해결 노력에서도 이란이 미국을 포함한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과 체결한 2015년 합의(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잘 지키고 있다고 IAEA가 평가하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이 합의를 파기했다. 또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국가안전 보장을 받고 핵을 러시아에 넘겼는데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할 때 이를 막아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NPT에 아예 가입도 안한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핵을 개발해 공공연히 보유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협력을 도모하고 있는 이중 잣대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얻어낼 수 있을 설득력 있는 명분과 신뢰를 제시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2월에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과의 실무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는데, 기대에 못 미친다며 이를 거절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도 담화를 통해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하고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가 없으면 미국과의 대화에 나갈 수 없음을 다시 경고했다.
어쨌든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해 3월 18일 5년 만에 한·미간 2+2 회담을 가져 한·미 동맹의 결속력을 과시했지만, 미국 장관들은 북한과의 본격적인 대화를 제안하기보다 북한의 인권문제만 비판했다.
미국의 태도에 실망한 북한은 3월 21일 서해방향으로 두 발의 순항미사일을 발사했고 뒤 이어 25일에는 동해 쪽으로 유엔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단거리 탄도탄 미사일 2발 발사를 감행해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반발했다. 이에 미국은 유엔안보리 결의안 위반임을 지적하고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소집을 요구했다. 또 바이든이 직접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키면 상응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하고 “외교에 나설 준비도 되어있다”면서 “최종 결과는 비핵화가 되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북한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대미 협상력 제고를 위해 도발을 감행했지만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를 참관하지 않는 등 수위를 조절했고, 미국 역시 트럼프와 달리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안보리 결의 위반임을 지적하고 경고를 보냈지만 협상의 여지는 남겨둔 셈이다. 일단 북한은 정상간 담판을 선호하는데 바이든 행정부는 실무회담에서 성과가 있어야 정상 회담도 가능하다는 입장이 분명하므로 북한도 북·미관계의 급진전에 대한 기대는 접었을 것이다.
결국 4월 초 한·미·일 국가안보보좌관들이 워싱턴에서 만나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를 최종 조율한 뒤, 내용이 드러나면 4월 15일 북한 태양절을 계기로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설지 아니면 협상장에 복귀하는 방향으로 움직일지 여부가 드러날 것이라 예상된다.
따라서 북한이 잠수함발사미사일이나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 중대한 도발을 감행하기 전에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과의 핵 합의를 복원시키고, 이를 북한에도 적용할지 여부가 향후 미·북 관계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란이 평화적인 목적을 제외한 핵 활동을 중단하면 국제사회는 제재를 잠정 해제하고, 만약 이란이 이를 어기면 다시 제재를 가하는(스냅백) 방식의 합의를 북한에도 적용한다면 북한은 호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단지 이란은 핵 개발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북한은 이미 20개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전략적 인내냐 아니면 이란 핵 합의 방식 적용이냐 중 바이든 행정부가 무엇을 택할지 주목된다.
북핵 협상재개를 위한 미국 설득 방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고 합의 이행에 소홀했고, 단계적 비핵화의 1단계에 해당하는 합의안도 받지 않아 북핵 협상이 2년 이상 중단되어왔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남북 합의 이행도 사실상 차단해 남북관계도 후퇴한 상태에서 정체되어왔다. 이런 맥락에서 한·미가 협력해 북핵문제 해결 과정으로 재진입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복원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는 정책 방안을 제시한다.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당사국 모두가 북한의 핵 포기를 바란다. 김정은도 2018년 3월 우리 특사단에게 체제 안전보장과 군사위협 해소를 조건으로 핵 포기 의사를 밝혔다. 핵심은 핵 보유보다 더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보다 600배의 경제력을 갖고 있고 300배 이상의 핵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북한 외부에서 북한 체제를 흔들지 않고 선공하지 않으며 적절한 경제 지원도 제공하겠다고 제안할 경우 북한이 이를 신뢰하면 북한 핵 포기는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또 독재를 하는 북한 정권이 밉더라도 일단 핵을 포기하도록 하면, 북한이 독재를 계속할 경우 동구 공산 독재정권이 붕괴했듯이 시대정신과 순리에 따라 북한 정권은 내부에서의 문제로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현 상황에서 핵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순서를 바꿔 납치자 문제와 인권문제를 먼저 제기하거나 북한의 안보 딜레마를 무시하고 중단거리미사일과 화생방무기까지 포기시켜야 한다거나 처음부터 북한의 핵 능력 전모를 밝히고 사찰을 받으라는 등 ‘출구로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방식보다 많은 것을 처음부터 요구할 경우, 북한은 어려움을 감당하면서 핵 개발을 고수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특히 북한은 주민의 민생을 경시하고 정권 유지만을 생각하는 독재정권이므로, 미국이 북한의 안보 딜레마도 제대로 고려해 주지 않으면서 제재나 압박으로 핵 포기를 유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정부는 먼저 북핵 협상을 장기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 위해 설득과 압박 양면의 대북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미국에 대해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고 북한이 받을만한 제안을 제시하며 북한이 미국을 믿을 수 있게 해주어야 북핵문제에 긍정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이란, 우크라이나 문제로 미국의 신뢰가 추락되어 있으므로 우선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지키겠다고 선언하고 종전선언 수용의사를 표명하면서 북한도 일단 핵 가동을 잠정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는 일단 핵문제 해결과 분리해 북한과의 관계가 진전되면서 상응조치를 내놓으면서 요구해야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정부는 북한이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는 주민의 민생을 어렵게 만드는 효과는 큰 반면 집권자를 움직이기는 어렵고, 북한정권의 홍보로 대다수의 주민들이 민생고의 원인을 미국의 제재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김정은의 집권을 도와주는 측면도 있다는 점을 미국 당국자들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
이제는 제재를 적극 활용해 스냅백 제도를 도입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일단 1단계 합의를 도출·이행해 상호 신뢰를 증진하면서 북핵의 투명성을 증진하고 단계적으로 사찰도 이행하며 궁극적으로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 제공, 북·미관계 정상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함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달성된다고 권고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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