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사태 : 이해관계의 충돌과 아세안의 역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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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1-4월호-제13호](2021.04.01.)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이후 시민 저항이 두 달째를 넘어서며 최악의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비난 성명의 포화를 총동원하고 있지만주1), 사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미얀마 사태의 발생 원인과 국내외 정치‧외교적 동학을 살펴보고 아세안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역할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미얀마 사태의 전개와 국내정치적 배경
2021년 2월 1일 새벽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0년 11월 총선에서 선출된 미얀마 의회의 공식 개회를 몇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군부는 신속하게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국가고문, 윈 민(Win Myint) 대통령, 여당인 전국민주연맹(NLD) 국회의원 및 반군부 세력을 구금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비상사태 기간 중 입법, 행정, 사법권은 모두 군부의 실세인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총사령관에게 넘어갔다. 2월 5일 연금에서 풀려난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임시국회(CRPH)가 구성되었다. 저항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군부의 무차별한 유혈 진압이 계속되면서 3월 28일 기준 사망자 수는 최소 459명, 체포·기소·선고된 사람은 3,000명을 넘어섰다.
군부는 이번 사태가 쿠데타가 아니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헌법에 따라 군의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2020년 11월 8일 총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하며 이를 바로잡아 미얀마 헌법에 명시된 대로 ‘국가 해체나 주권 상실’의 위기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주2)
군부는 지난 총선에서 NLD가 선출 의석의 83%를 차지하여 군부 정당인 통합연대발전당(USDP)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자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무효화를 시도했다. 수치 고문에 대해서는 선거 부정 외에 부패와 수출입법 위반 혐의를 추가하여 연금을 무기한 연장하고 있다.
2020년 총선 당시 카친(Kachin), 카렌(Karen), 라카인(Rakaine) 등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일부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져 실제로 투표가 취소된 것은 사실이다. 이에 군부는 소수민족 참정권 박탈, 금권 선거 등을 이유로 선거관리위원회와 대법원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비상사태 선포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수민족을 포함한 미얀마 국민은 선거 결과를 신뢰하고 있고, 부정 선거나 수치 고문의 부정부패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도 없는 상황이다.
군부가 무리하게 비상사태를 선포한 실제 이유는 권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민족 간 내전이 지속되자 군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세 차례(1962년, 1988년, 2007년)의 쿠데타를 감행하며 정권을 이어갔다. 하지만 군사정권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 장기화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자 미국을 끌어들여 균형외교를 추진하기 위해 표면적인 민주화 노선을 취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군부가 안전장치로 마련한 것이 2008년에 도입한 헌법이다. 동 헌법은 의석의 4분의 1과 3대 핵심 부처(국방, 국경, 내무) 장관, 최고 행정기구인 국방안보평의회(NDSC) 의원 11명 중 6명을 총사령관이 지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실질적인 통치권은 여전히 군에 있었다. 이에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는 2015년 11월 8일 총선 승리 이후 헌법 개혁에 착수했으나, 개헌안은 2020년 의회에서 군의 거부권 발동으로 폐지되었다. 그런데 2020년 11월 총선에서 선출 의석의 83%를 NLD가 휩쓸자, 개헌을 저지할 수 있다는 군부의 자신감이 흔들렸다. 여기에 금년 7월 65세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흘라잉 총사령관의 대통령직에 대한 욕심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미얀마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동학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에서도 지정학적 가치가 높은 대표적인 국가이다.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던 군부가 중국으로 눈을 돌렸을 때 중국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미얀마는 중국이 해양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동남아 내륙을 통과하여 벵골만을 지나 인도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통행로가 필요했던 중국의 핵심 전략적 이해에 부합했다. 특히 원유 수입을 비롯하여 중국 대외 무역에서 중요한 해상실크로드의 남서쪽은 미얀마가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안다만과 말라카 해협 인근에 미얀마 해군기지 신설도 지원했다.주3)
50여 년의 군부 통치기간 동안 미얀마에게 중국은 최대 무역 대상국이자, 투자와 개발 자금을 지원하고 서방의 압력을 막아주는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다.주4)
이에 더하여 최근에는 러시아도 미얀마 군부와 관계를 격상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3월 27일 미얀마 국군의 날 열병식에 유일하게 러시아만 국방차관보가 본국에서 참석했고, 그 외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태국, 베트남, 라오스 7개국은 양곤 주재 무관이 참석했다. 2008년 이후 중국(15억 달러)에 이어 미얀마의 2위(8억 3,500만 달러) 무기 공급국인 러시아 국방부는 미얀마 군부와 무기판매를 비롯해 군사 협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주5)
한편 초조하게 중국의 동남아에서의 세(勢) 확장을 바라보던 미국은 미얀마 정부가 2011년 과도적 민주화에 착수하자 곧바로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 정책을 들고 미얀마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고속 성장하는 동남아 경제와의 협력 외에도 일대일로(一帶一路)사업을 통해 인도양 곳곳에 항만과 군사시설을 건설하고 있는 중국의 해상 출구를 봉쇄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번 쿠데타 이후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보호를 강조하며 미얀마 군부에 대한 경제제재의 수위를 높이며 다시 과거로 회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군부와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로 인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3월 10일 발표한 의장 성명은 지도부 구금과 시위자들에 대한 폭력을 규탄하는 수준에 그쳤다. 결국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 충돌로 유엔 차원에서 해결책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미얀마 사태에 미국,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가세하여 신냉전 시대 새로운 경쟁구도 등장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군부 쿠데타로 대혼란에 빠진 미얀마는 강대국 파워 게임의 시험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 영국 등이 주도하는 경제제재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생긴다. 지난 20년간의 제재를 견디면서 이미 미얀마는 대외교역의 90% 이상을 중국(33%) 및 태국, 싱가포르 등 이웃 동남아 국가들이 하고 있고, 미국 내 군부 자산 규모도 크지 않다.
아세안(ASEAN)의 역할
이처럼 강대국 간의 힘겨루기로 해법을 찾지 못하는 미얀마 사태에서 중요한 역할이 기대되는 것이 미얀마가 속한 지역기구인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이다. 이미 미얀마 사태에 대한 유엔 성명에 이어 쿼드 외무장관 및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역할론이 대두된 바 있으며, 동 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도 아세안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간 아세안은 내정 불간섭 원칙 아래 회원국 내정 또는 회원국 간 분쟁에 개입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최근 아세안 내에서 미얀마 사태 해결에 있어 아세안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아세안은 3월 2일 특별외교장관회의를 개최하여 아세안이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아세안 중심성’을 작동시키고 적극적인 개입을 시사하는 이례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해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제안한 아세안 긴급 정상회의 요청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가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만큼 지금 미얀마 사태는 아세안 공동체의 붕괴냐, 진일보냐를 가름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다.
2025년 정치, 경제, 사회·문화 공동체 완성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아세안에게 있어 미얀마에 민주정부, 원활한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미얀마는 아세안의 안정과 번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세안은 이미 친중 국가 대 반중 국가로 전선이 형성되어 있다. 아세안에 신냉전 패권경쟁의 전선을 확장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세안 10개 회원국은 정치체계도, 경제발전 단계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2008년에 발효한 아세안 헌장 2조는 민주주의, 법치, 인권 등을 아세안 공동의 가치이자 기본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세안 중심성을 발휘하여 아세안의 가치를 지켜내고 역내에서 강대국 패권경쟁의 추이에 따라 표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얀마 사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아세안은 이미 2011년 캄보디아-태국 국경 분쟁에서 효과적인 중재자 역할을 수행한 경험이 있다. 2011년~2014년 미얀마의 민주국가 전환기에도 일정 정도 역할을 했다.
현시점에서 미얀마 내 갈등 당사자들이 자체적으로 협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세안이 중재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나탈레가와(Marty Natalegawa) 전 인도네시아 외교장관도 아세안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아세안 의장(브루나이 국왕) 또는 사무총장의 중재, 특사 파견, 주아세안 대사단을 활용하는 방안 등 몇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또한 아세안 평화화해기구(AIPR),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 지역 포럼(ARF)과 같은 아세안 협의체를 플랫폼으로 활용하여 군부, NLD, 소수민족, 시민사회 등 미얀마의 이해 당사자들과 주요국 및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함께 모이는 비공식 회담을 주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 대한 시사점
한국도 협력의 가치에 기반한 외교로 미얀마 민주주의에 기여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2017년 한국 정부가 아세안과 4강에 버금가는 외교관계 수립을 목표로 발표한 신남방정책은 ‘사람’과 ‘평화’를 핵심 협력의 가치이자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남아 주요국의 민주화 후퇴는 신남방정책 추진에도 부담이 된다. 인권 침해 국가들과의 협력은 국내적 명분도 약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인권을 강력한 아시아 지역의 개입 카드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한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10개국(D10)도 이에 함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때마침 한국은 2020년 1월부터 3년 임기로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일본, 인도네시아 등과 함께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이사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 민주, 인권의 가치는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근본이고 핵심 가치이자 지향점이다. 이제는 한국도 원칙에 근거한 결기 있는 외교를 실천해야 할 때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조응하는 한국 신남방정책의 원칙을 이렇게 서서히 표명하면서 확립해나가는 것은 의미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미얀마 시민운동과의 연대와 인권 공공외교 확대, 아세안의 외교적 노력에 동참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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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특히 3월 27일 미얀마 ‘국군의 날(Armed Forces Day)’을 맞아 군부의 시위대 유혈진압으로 107명이 사망하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조 바이든 대통령, 호세프 보렐(Josep Borrell) 유럽연합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 등 각국 정상과 기관장들이 미얀마 군부의 만행을 규탄했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 한국 등 12개국 합참의장도 이례적으로 공동성명을 내어 미얀마군이 군대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비판했다(The Guardian. “Biden and EU condemn Myanmar bloodshed as 'outrageous' and 'a day of shame.“ 2021.3.29.).
주2) 미얀마 헌법 40조는 국론 분열의 상황이 되면 자동으로 군사령관이 정권을 인수하고 1년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3) 미얀마는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과 함께 중국 해공군 및 지원 병역을 위해 해외에 군 기지를 조차 또는 건설하는 12개 국가 중 하나이다(문정인. 2021.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 코로나 19, 미‧중 신냉전, 한국의 선택』: 178)
주4) 이미 쿠데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던 지난 2021년 1월 11일 시진핑(Xi Jinping) 중국 국가주석과 왕이(Wang Yi)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미얀마 방문 시 군부가 중국의 동의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주5) Financial Times. “Russia seeks deeper ties with Myanmar military junta.” 2021.3.2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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