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49) 극과 극을 함께 가진 벚꽃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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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TV 프로그램 중에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모두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경연 프로그램인 TV조선의 미스/미스터트롯이 단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경연에서 경연자들의 순위를 좌우한 것은 결국 시청자들의 문자 투표였다고 기억합니다. 시청자들의 표심은 이른바 전문가들인 ‘마스터’들이 부여한 점수 차이를 완전히 무력화하며 순위를 결정했지요.
이런 경연을 꽃에다 적용해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어느 꽃이 가장 아름다운가 하는 질문을 하면서 말이지요. 아마도 미적 감각을 가진 전문가들이 결정한다면 저는 장미가 단연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마스터 점수로만 한다면 꽃의 여왕 자리는 장미가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열광하는 정도로 본다면 어떨까요? 벚꽃이 그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세계적인 꽃 축제에 모이는 인파의 밀집도를 계산하여 기네스북에 올린다면 진해군항제가 단연 톱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탈리아 인피오라타, 네덜란드 쾨켄호프 등의 인파는 그에 비하면 대단히 차분한 정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진해군항제 피크 시기, 특히 저녁 시간에 벚꽃 무리의 한 가운데에 도달했다면 다시 나오는 데 몇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하니 (필자 딸의 개인적인 경험) 사람들의 밀집 정도가 참으로 대단했을 거라고 짐작됩니다. 진해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들썩거렸을 축제만 열거하더라도 제주왕벚꽃축제를 시작으로 섬진강변, 화개장터, 대구 팔공산, 김제 모악산, 제천 청풍호, 강릉 경포대를 거쳐 서울 주변의 용인 에버랜드, 여의도 윤중로, 잠실 석촌호수 등에 이르기까지 정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곳에서 봄나들이 손님들이 북적북적 했을텐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런 인파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관광객 출입을 막아버린 진해군항제 같은 관장명소에는 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지금 가까운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만 돌아다녀 보아도 곳곳에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으니, 누구나 어디에서나 벚꽃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은 수도권에서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는 4월 초/중순인데 올해는 이른 봄부터 따뜻한 날씨가 일찍 찾아와서 곳곳에서 벚꽃이 벌써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흔히 보이는 꽃인데도 불구하고, 특별한 장소에 모여서 만개한 벚꽃이 사람들을 흡인하는 마력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흔한 데도 인기가 높다는 점에서 참으로 극과 극의 가치를 함께 가진 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벚꽃은 만개한 후 길게 가야 일주일 정도 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심술궂은 비바람이라도 찾아오면 며칠을 버티기가 힘들지요. 그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벚나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립니다. 심지어는 항상 보아온 아파트 단지의 벚나무를 이 시기만 지나면 (즉, 벚나무가 보통 나무로 보이기 시작하면) 무슨 나무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일 년 내내 외면받다가 일주일 정도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벚나무는 그런 면에서도 극과 극을 달리는 셈이지요.
그뿐인가요? 진해군항제와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 무리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지만, 벚나무는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심어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고 일본 국화인데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배알 없는 짓 아니냐는 차가운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사랑과 극단적인 미움을 동시에 받는다는 의미에서도 참으로 양면성을 가진 꽃나무입니다. 심지어는 필자가 즐겨 읽는 나무 관련 책을 쓰신 원로 수목학자들 중에서도 호불호가 나뉠 정도이니 참으로 극과 극의 모순을 안고 있는 나무인 셈입니다. 필자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꽃을 선물해 주는 죄 없는 나무에까지 국적을 부여하고 그에 따른 정치적 호불호를 표시할 필요가 있는지 하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기본적으로 나무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이니 당연한 태도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벚꽃은 꽃 한 송이만 본다면 장미, 모란, 튤립 등에 비해 소박하다고 할 정도이지요. 그렇지만 한 나무에 모여서 피어난 모습은 훨씬 아름답고 그런 나무들이 밀집해 있으면 그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벚꽃은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서 벚꽃의 아름다움을 마찬가지로 찬미하고 있으니까요. 종종 미국이나 서구에서는 대체로 꽃잎이 겹으로 형성되는 겹벚꽃이고 그 겹벚꽃들은 왕벚나무와는 달리 꽃이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실 벚꽃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왕벚나무는 원래 일본에서 건너왔지만, 그 원조인 야생에서 자라는 산벚나무가 옛날부터 자생하고 있었습니다. 그 산벚나무와 올벚나무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왕벚나무라고 하니 과연 국적을 따질 필요가 있는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산에서 만나는 산벚나무는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왕벚나무와는 달리 잎과 꽃이 함께 피는 경향을 보이는 점에서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꽃이 한창 아름다울 때에 좋아하던 벚나무를 꽃이 지고 나서 만날 때도 식별할 수 있으신지요? 필자가 물어본 많은 분들이 벚나무와 느티나무를 단번에 구분해 내지를 못했습니다. 버찌가 달려 있을 때 다시 한번 식별할 수 있을 경우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기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 가까이 자라고 있는 벚나무를 알아보지 못하는 점은 저와 같이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벚나무를 비롯한 주변의 나무들은 우리에게 꽃의 아름다움만을 선물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벚나무와 같이 우리 주변에 심어진 나무들은 꽃이 아니라 하더라도 녹색의 모습으로 콘크리트 도시의 삭막함을 덜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많은 새들과 곤충들이 우리 곁을 찾아오게 하는 보금자리 역할도 합니다. 나무들이 광합성을 하면서 뿜어내는 산소가 도시의 공기를 맑게 만드는 것은 더 큰 고마움이지요. 이렇게 많은 혜택을 베풀고 있는 나무들에게 우리는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하는 필자의 생각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꽃이나 열매가 없는 벚나무를 식별하는 가장 좋은 지표는 역시 잎입니다. 벚나무의 잎은 갸름한 타원형의 우리가 상상하는 전형적인 나뭇잎 모습입니다. 끝이 뾰족하게 길어진 모습이 구분하는 포인트이지요. 잎이 떨어져 버린 때는 나무 등걸의 갈라짐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벚나무는 대부분의 다른 나무들과는 다르게 가로로 껍질이 벗겨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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