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46) 어떻게 알아볼까? 산수유와 생강나무 노란 꽃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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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지금 이 글을 읽을 때면 봄꽃 소식이 온갖 SNS를 뒤덮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그 소식을 전하기 시작한 지 오래 된 경우도 많을 것이고요. 일찍 피는 봄꽃 하면 필자가 지난 주에 소개한 매화가 으뜸이겠지만, 의외로 이른 봄에는 곳곳에서 노란 색깔의 꽃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개나리가 모두에게 익숙한 꽃이라면, 개나리보다 조금 더 일찍 핀다고 소개한 영춘화, 그리고 이번에 소개하려는 두 나무 즉, 산수유와 생강나무 꽃들이 모두 노란 색으로 핍니다. 어쩌면 봄에 일찍 활동을 하는 곤충들이 노란 색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매우 작은 꽃들이 뭉치를 이루어 피는데 그 뭉치들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서 피어나는 모습이 서로 너무나 닮았습니다. 그래서 이른 봄에는 이 두 나무의 꽃들을 혼동하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필자가 초보자에게 권하는 가장 쉬운 구분법으로는, 집 근처나 공원에서 보면 산수유, 산에서 보면 생강나무라고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궁궐의 우리 나무’라는 책을 쓰신 박상진 선생도 산수유 이야기 서두에 ‘숲에는 생강나무, 들에는 산수유’라고 썼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산수유를 접할 기회가 더 많다 보니 산에서 만나는 생강나무 꽃조차도 산수유라고 잘못 아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산수유라는 이름까지 혼동하여 산유화라고 부르는 분도 보았습니다. 함께 온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데에 끼어들 수 없어서 참으로 난감하게 느꼈습니다. 물론 산유화라는 나무나 꽃은 없고 김소월 시인이 산에 피는 꽃을 통칭해서 산유화라고 노래했을 뿐이지요.
‘산에는 생강나무, 집 근처에는 산수유’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금요일 분당 불곡산을 올라 막 꽃봉오리를 터뜨리려는 생강나무와 집 근처의 정원에 있는 산수유 꽃봉오리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기실 이 봄꽃들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피는 장소가 아니라 두 꽃의 모양 자체를 보면서 그 차이를 구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2015년 봄에 세종시 국책연구원에 근무할 때 청사 주변의 산수유 꽃과 뒷산 괴화산에서 본 생강나무 꽃을 카메라를 아주 가까이 들이대서 찍은 후에 그것들을 더 확대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제법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습니다. 생강나무 작은 꽃들은 그 수술들이 꽃잎 속에 숨어 있다시피 하는 데 비해 산수유 작은 꽃들을 자세히 보면 네 갈래로 젖혀진 꽃잎 위로 수술들이 뾰족뾰족 솟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더 쉬운 구분법으로 전문가들은 생강나무 꽃 뭉치는 꽃자루가 거의 없어서 가지에 딱 붙어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나무의 구분은 이 봄꽃들이 지고 나면 오히려 쉬워집니다. 산수유의 잎이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타원형의 일반적인 나뭇잎 모양인 반면, 생강나무는 잎의 끝이 세 갈래로 갈라져 삼지창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산수유의 나무 줄기는 더덕더덕 벗겨지는 특성을 가져서 다소 지저분한 이미지를 주는 데 비해, 생강나무는 비교적 매끈한 편입니다. 꽃을 보고는 구분이 어려울 때 (가끔 산수유가 산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 나무 줄기를 한번 보고 나서 분명한 구분을 내려 준다면 나무 전문가(?) 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산수유는 이렇게 이른 봄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가을이 무르익어 갈 때 다시 그 빨간 열매 때문에 주목을 받습니다. 잎을 다 떨구고 난 나무에 지천으로 붙어 있는 열매는 한겨울을 지나 새로 꽃이 피기 시작할 때까지도 달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끈질긴 생명력 때문일까요? 이 열매는 건강보조식품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고, 한약재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건위, 강장, 자양 등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지요. 정력에 좋다고 주장하며 한동안 건강보조식품 광고를 하던 사장님도 기억납니다. 이런 연유로 지리산이나 수도권 산골 마을에 대량으로 산수유가 재배되고 있기도 한데 이른 봄이면 이런 곳들에 상춘객들이 몰려들기도 하지요.
기실 우리나라에서 산수유가 산에서 자생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가끔 산자락 입구에서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근처 식재한 산수유 씨앗이 그곳까지 날아가서 생긴 경우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 연유로 오랫동안 산수유는 원산지 중국에서 건너와서 식재된 나무라고만 알려졌는데, ‘우리 나무 백 가지’ 책을 쓴 이유미 선생에 의하면, 1920년대에 당시 홍릉의 임업시험장을 맡고 있던 일본 수목학자 나카이가 광릉 숲에서 오래 된 큰 나무 두 그루를 발견하면서 한국에서도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중국에서 건너온 나무라고 못박고 있는 것을 보면, 일본인들이 우리 정체성을 찾는 데 기여한 바도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강나무는 그 이름을 온몸에서 풍기는 향긋한 향취 때문에 얻었습니다. 잎이나 어린 가지를 비비면 바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방에 따라서는 (특히 차나무를 재배하기 힘든 북쪽에서) 이른 봄에 달리는 여린 잎을 따서 ‘작설차’를 만들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 향기가 매우 좋다고 합니다. 수목학자들이 한결같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이 차는 위장 건강에도 좋다고 알려졌네요.
생강나무는 이른 봄이 지나면 곧바로 잊혀지는 나무라서 이 나무에 달리는 잎과 열매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가을에 익는 생강나무 까만 열매는 기름을 잔뜩 머금고 있어서 옛날 여성들의 머리를 윤기 나게 빗기 위해 쓰였던 머릿기름을 짜는 데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남쪽 해안가에서 자라는 동백의 열매로 짜낸 ‘동백기름’이 있었지만, 워낙 귀해서 궁궐 왕녀들이나 높은 양반댁 귀부인들이라야 겨우 쓸 수 있었고, 여염의 아낙네들은 거의 모두 이 기름을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기름도 ‘동백기름’이라 불렀고, 북쪽에서는 아예 생강나무를 ‘동박나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유미 선생은 다음과 같은 정선 아리랑의 가사 속에서 언급한 동박이 바로 생강나무라고 합니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 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아우라지 지 장구 아저씨 배 좀 건제 주게. 싸리골 울동박이 다 떨어진다.’
박상진 선생이 인용한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에서도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랑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매우 붉은 동백꽃과는 완전히 다른 색깔인 ‘노랑’으로 표현한 것을 보면 생강나무 꽃을 가리킨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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