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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막이 의료와 칸막이 경제의 한계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5월18일 18시4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0시11분

작성자

  • 홍은주
  • 한양사이버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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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칸막이 의료와 칸막이 경제의 한계

 

 어떤 노인이 다리가 저리고 심하게 아파서 대학병원 정형외과를 찾아갔더니 허리 디스크가 심해서 그러니 디스크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디스크 수술까지 받았으나 다리상태는 점점 악화되기만 했다. 알고보니 다리혈관에 혈전이 막혀 비슷한 증세가 나타났던 것이다. 어느 노인이든 대부분 디스크에 문제가 있기 마련이라 정형외과에서는 허리상태만 보고 비슷한 증세를 야기시키는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로 깊히 생각하지 않은 채 디스크 수술만 했던 것이다. 나중에 사태가 심상치 않게 되어서야 부랴부랴 처치를 했지만 이미 때가 늦은 뒤였다. “다리가 저리고 아프다”는 증세를 가진 환자가 나타났을 때 여러 가지 가능성을 한꺼번에 염두에 둔 협진시스템이 부재한 상태, 전문성은 높아졌지만 환자를 종합적 의료의 관점에서 판단하지 못하는 ‘칸막이 의료’의 한계가 드러난 사건이었다. 

 

 인체가 신경계와 뉴론, 임파선과 혈관으로 얽히고 섥혀있는 것처럼 경제도 하나의 시스템이나 생태계가 다른 분야의 시스템이나 생태계와 네트워크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특정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그것만 들여다 보면 종합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채 비효율을 양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칸막이 정책의 비효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이 정부가 창조경제의 핵심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벤처 및 창조적 중소기업정책이다. 벤처기업의 창의적 기술이 미국의 실리콘 벨리처럼 꽃피고 한국경제의 차세대 성장동력이 될 수 있으려면 금융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면서 정부는 은행에게 벤처와 창조적 중소기업을 지원하라고 호통을 친다. “부동산 담보대출같은 쉬운 장사나 예대마진만 챙기지 말고 벤처와 창조적 중소기업을 지원하여 사회적 책무를 다하라.”고 준엄하게 은행을 나무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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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은행의 벤처기업 투자회피가 반드시 은행의 ‘보신주의’ 탓 만일까? 곧 도입되는 바젤 III의 BIS 자기자본비율 규제는 신용 및 시장위험이 인식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있고 유동성 규제를 크게 강화하고 있어 은행의 벤처투자를 원천적으로 어렵게 만들고 있다. 바젤 II와 바젤 III에서 규정하는 은행 건전성 핵심 지표는 BIS자기자본 비율이다. 따라서 의무충당금 비율이 낮은 담보대출만 선호하는 등 대출행태가 보수화 될 수 밖에 없고 충당금을 높게 쌓아야 하는 ‘비(非)양질 자산’의 대표격인 벤처투자에 은행이 소극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앞서서 도입한 IFRS에 따르면 은행이 벤처출자나 대출을 한 경우 50%이상의 유의적 지배력이 아니라도 지분이 20%이상이고 ‘영향력’이 있으면 연결재무제표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열 개에 투자해서 한 두 개 건져도 대박이라는 벤처 투자를 몇 년이나 감시할만한 인원과 시스템을 보유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연결재무제표로 은행의 수익에 매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누가 벤처투자를 하려고 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벤처에 투자했다가 실패하여 은행에 손해를 미치는 경우 담당자나 실무자들이 금융감독당국의 검사에서 엄청난 고초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모 은행이 여러 벤처에 투자해서 정석대로 몇 년씩 인큐베이팅과 경영지원, 자금지원을 했는데 실패한 2억원 짜리 벤처투자에 대해 금융당국으로 부터8차례나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BIS 자기자본 비율에 악영향을 미치고 벤처기업의 실적이 은행의 회계에 매년 영향을 미치고 게다가 실패할 경우 금융당국으로부터 문책성 조사가 있을 것이 뻔한 상황을 무시한 채 아무리 은행에 벤처에 투자하라고 정부가 촉구해 봐야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될 수 밖에 없다.

 

 벤처에 투자하는 창투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반드시 ‘어느어느 분야’에 ‘5 년내’로 투자하라고 지정하는데 정부회계나 원칙상 몇 년을 지정할 것이라면 특정 분야를 제한해서는 안된다. 가령 ‘그린 에너지’분야에 5년 이내로 투자하라고 하면 그린 에너지 분야에서 투자할만한 기술을 가진 벤처 한 두 개 회사에 모든 창투사들이 몰려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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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진정으로 벤처정책을 활성화 시키려면 벤처라는 칸막이만 보지 말고 금융기관이 벤처투자를 꺼리는 규제적 한계를 종합적으로 살펴서 이를 우회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보다 더 원천적으로는 진정한 벤처 창투사나 엔젤투자를 육성하고 벤처기업이 성공적으로 상장되어 여러 가지 성공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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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5월18일 18시4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0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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