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의 남미를 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 - 페론이즘도 포퓰리즘도 아닌 자원부국 > News Insight

 

말도 많은 대통령의 남미순방

박근혜대통령의 남미 4국 (콜럼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 순방을 두고 말들이 많다. 요지는 이렇다. 외교도 좋지만 하필이면, 세월호 1주기에 맞추어, 그것도 성완종 게이트가 터진 시점에서, 하나같이 부정부패로 지탄을 받고 있는 남미 대통령들을 만나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은 모습이 영 아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런 민감한 시기에 대통령이 12일간이나(16일부터 27일까지 9박 12일간) 자리를 비우는 역대 최장의 해외순방을 하고 있다며 대통령 남미순방외교를 준비한 외교부의 정치적 감각부족을 나무라기도 한다. 대통령의 출국 날 자가 4월 16일로 잡힌 것은 4개국과의 교섭과정에서 발생한 우연한 택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앞두고 성완종 게이트가 터지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렇다고 1년여 넘게 준비해온 대통령순방을 어떻게 중단할 수 있단 말인가. 

 

언론들은 더 나아가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 앉은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남미에서 무엇을 배울게 있다고 …’하는 식으로 대통령의 남미순방을 비꼬았다. ‘성완종 게이트로 권력실세들의 부정부패가 도마에 오른 시점에 똑같이 권력실세들의 부정부패문제로 시끄러운 나라의 대통령들을 만나러 남미까지 가는 것은 무엇이냐’라고 묻는 언론의 질문에 외교부 관리들은 한 술 더 떠 ‘남미는 언제 가도 부패스캔들이 진행 중이니 딱히 피해가기도 어렵다”는 반응 보였다는 대목에서는 정말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참으로 ‘그 질문에 그 답’이란 생각이 든다. 

 

페론이즘은 포퓰리즘인가? 

사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남미를 포퓰리즘으로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아 선진국 진입에 실패한 나라로 우리의 반면교사로 여겨왔다. 빈부격차도, 부정부패도 심하고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한 나라로 치부한다. 우연히 2003년 7월부터 2006년 2월까지 2년 8개월 동안 아르헨티나에 살면서 주변국인 페루, 칠레, 브라질, 우루과이를 다녀보고 남미와 아르헨티나의 역사이야기를 읽어보기 전까지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2003년 4월 말 노무현정부가 출범하면서 맞닥뜨린 한-칠레FTA협정의 마무리 협상을 앞두고 남미농업에 대한 전략수립 등을 위해 농업전문가를 남미에 내보낼 필요가 있다며 아르헨티나 대사로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농업전문가로서는 아마 대한민국 최초(?)로 외교관이 되어 아르헨티나로 떠나면서 한가지 생각을 했다. 이 기회에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남미, 특히 아르헨티나는 어떠한 나라이고 페론이즘은 포퓰리즘이며 그 실체는 무엇인가를 알아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아르헨티나 생활을 시작하면서 제일먼저 접한 사실중의 하나는 우리가 흔히 아르헨티나 포퓰리즘의 아이콘으로 치부하는 페론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 (에비따)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추앙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집에 성모 마리아 사진과 함께 에비따의 사진을 걸어두고 있는 집이 한둘이 아니었다. 2004년 11월 노무현대통령이 아르헨티나 국회의사당을 방문했을 당시 국회의장을 비롯한 주요의회지도자들이 노대통령을 영접한 곳이 국회 내에 있는 ‘에바 페론 룸’이었다. 그 자리에 동석한 한 여성의원은 에비따를 여성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여성의 권익을 찾아준 위대한 여성지도자로 소개했다. 브에노스아이레스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공동묘지 한 켠에 있는 검소한 에비따 묘소 앞에는 추모 객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이 시들 날이 없다.      

 

 

페론의 정치경제개혁과 복지정책

대사 부임 직후부터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사를 알아보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저명한 경제사학자와 정치, 행정학자들을 대사관으로 초빙 특강을 듣기 시작했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산업혁명이 최고조에 이른 유럽사회가 자본가와 지주와 노동자간의 사회적 갈등으로 사회주의 사상이 확산되고 공산혁명이 일어나는 정치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은 페론 대통령은 사회주의와 공산혁명의 남미 상륙을 막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노동 3권을 보장하며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 아플 때 걱정 없이 치료 받을 수 있고, 자녀들을 교육시킬 수 있게 하는 일은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시로서는 유럽 어느 나라도 실천하지 못한 국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복지정책을 세우고 추진했다. 그 밑바탕에는 국민의 평등권 보장이란 인권사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교육은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국립병원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국민들의 기본생필품은 가격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게 보장하는 정책을 도입했으며 지금도 그런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국립대학교에서 무상으로 의대를 졸업한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국립병원에서 근무하고 개인병원은 일정기간 동안 국립병원 의사생활을 마친 의사에게만 허락되었다. 그러나 개인병원이란 간판은 걸지 못하게 했다.  에비따는 사회복지재단을 만들어 부유층으로부터 반 강제적인(?) 후원금을 받아 국민들의 교육과 의료환경을 개선하는 데 사용했으며 어린 아이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선물을 달라고 편지를 쓰면 들어주는 지금의 싼타 할아버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의 참정권 보장 등 여성해방에 앞장섰다. 만일 에비따가 요절하지 안 않다면 아마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아르헨티나는 미주대륙에서 미국과 미주 대륙의 맹주자리를 놓고 겨루는 자부심과 자존심의 강한 세계 5대 부유한 선진 대국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면에서 남미를 이끄는 중심국가였다. 경제사학자들도 페론 대통령의 재임기간 경제실적을 그 전과 후로 나누어 비교하면서 그 시기를 아르헨티나의 전성기로 평가한다. 경제성장은 물론이고 고용, 국민소득 모든 분야에서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페론 대통령은 종속이론이 말하는 것처럼 원부자재 수출위주의 식민지적 경제구조를 혁신하기 위해 2.3차 산업의 진흥과 함께 외국자본이 장악하고 있던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는 등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이러한 뻬론의 개혁정책은 대지주를 중심으로 한 부유계층의 저항을 받았지만 일반국민들은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페론이즘은 식민지 종속경제의 개혁을 통한 경제성장과 국민복지증진을 추구하는 정책이었으나 기득권층에게는 위험한 정치실험이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하게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것이 빌미가 되어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재건을 위한 마샬플랜을 추진하면서 유럽국가들에게 미국의 지원자금으로 아르헨티나산 농축산물 등의 수입을 금지하면서 하루아침에 유럽시장을 잃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눈의 가시와 같은 아르헨티나에 대한 봉쇄조치로 해외수출시장을 상실하고 고립되면서 경제가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이틈을 노린 군부쿠데타로 페론 정부가 무너지면서 아르헨티나는 몰락하기 시작했다. 페론의 식민지경제 극복과 평등한 인권국가 건설을 위한 개혁정치는 좌절되었다. 아르헨티나의 정치실험이 실패로 끝나고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사회에 종속이론과 해방신학, 그리고 급진적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확산되면서 이들 진보적 급진세력과 보수집단의 수호자인 군부간의 갈등은 수백, 수만 명의 진보적 지식인과 언론인, 노동, 인권운동 지도자를 소탕하는 소위  ‘더러운 전쟁’으로 이어졌고 그 참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아르헨티나는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국가였지만 공무원사회를 비롯 모든 일자리는 기득권 자들이 세습적으로 차지하는 닫힌 사회였다. 대학을 졸업한 유능한 청년들은 정치적 배경이 없는 한 제대로 된 일자리 찾기가 어려웠다. 미래의 희망을 잃은 유능한 젊은 인재들은 나라를 버리고 유럽으로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두뇌유출이 시작되었다.  .   

 

우리가 진정으로 남미에서 보아야 할 것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남미는 개혁정치가 실패하고 구조적으로 식민지경제, 다시 말하면 1:99%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불평등 사회로 양분되어 있고 국가공동체의식은 빈약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축구장에서는 한 나라지만 축구장을 나서면 서로 딴 나라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가진 자들 대 부분은 이중국적을 보유하고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생활하고 아르헨티나에서는 임대료를 챙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국내에는 방대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해외에는 막대한 금융자산을 달러화나 유로화로 보유하고 있어 뻬소화 가치하락 시 막대한 차익을 챙긴다. 역설적으로 나라에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가진 자들의 자산은 늘어만 간다. 그들은 아르헨티나에 빨대를 꼽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와 99%의 국민은 가난하지만 아르헨티나의 1%는 대단한 부자들이며 그들이 보유한 해외자산은 국가가 지고 있는 대외부채를 능가한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기득권유지를 위해서는 1%가 선택한 정치가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99%의 표를 사기 위한 값싼 저질의 복지정책을 남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의 진원지는 페론 이었으며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남발하는 복지정책의 책임을 페론에게 뒤집어 씌웠다. 페론이즘의 개혁정치는 빼버리고 복지정책만 포퓰리즘으로 새롭게 포장 정치적으로 악용한 것이다.   

 

그런데 욕하면서 닮아간다고 우리가 남미를 닮아가고 있다는 징후가 요즈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1%의 부가 커져가고 세습이 일어나면서, 1% 중심의 닫힌 사회가 형성되고 확산되면서,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부의 세습화와 불평등 구조를 혁신하지 못한다면 나라는 1% 중심의 가진 자들의 사회와 나머지로 양분되고 부를 장악한 1%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결국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돈으로 정치를 장악하고 정치인들을 입맛에 따라 골라 쓰게 될 것이다. 복지정책은 기득권체제의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제는 야당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당도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정치사회가 지금 남미 형으로 진행 중 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1940년대 후반 이미 무상복지를 감행한 아르헨티나의 페론이즘(Peronism)이 낳은 절망의 역사를 답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지적은 맞고도 틀린 얘기다. 뻬론에게는 포퓰리즘이 아닌 식민지적 유산을 청산하려는 개혁정책이 있었고 그러한 정책의 일부로서 기본권 보장을 위한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을 세웠다. 그러나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을 향한 페론의 개혁을 무산시키고 대신 값싼 복지정책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페론이즘을 포퓰리즘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남미는 자원부국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를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면 남미가 식민지시대 이후 1%에 의한 구조화된 부의 편재로 국가공동체의식이 붕괴되고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고 부정부패가 생활화되어 있는 위험한 불평등, 불공정한 닫힌 사회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구조화된 불평등 구조에 대한 개혁 없이 포퓰리즘이란 국민의 표를 사기 위한 값싼 저질의 복지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남미에서는 그런 정치를 해도 나라가 굴러간다는 사실이다. 남미는 역시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인구과소의 자원부국이기 때문이다. 남미의 포퓰리즘은 페론이즘이라기 보다는 기득권유지를 위한 1%의 정치권력이 국민의 표를 사 모우기 위해   뿌리는 값싼 복지정책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리고 남미는 자원부국이란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남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남미를 답습하다가는 우리는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우리 경제가 그런 복지정책을 뒷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는 남미형의 위험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 더불어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뼈를 깍는 개혁을 생각하기 보다는 1:99%사회를 전제로 기업과 자본가들은 물론이고, 정치인, 공무원관료집단, 노동귀족, 단체 등등 사회각계의 가진 자들이 기득권유지에 급급하면서 여야 모두가 남미처럼 선심성 값싼 복지정책에 앞다투어 빠져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남미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은 포퓰리즘도 페론이즘도 아니다. 우리가 국가적으로 남미에 대해 눈을 떠야 할 것은 남미의 무궁한 자원들이다. 우리에게는 남미의 식량, 광물, 에너지 자원 등이 절실한 반면 남미는 우리의 기술과 개발경험을 절실히 원한다. 그들은 우리가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난 것을 자신들이 배워야 할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인 2004년 11월 노무현대통령의 남미 3국 순방(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이후 남미자원외교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는 했지만 아직도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대통령의 이번 남미 순방이 한국과 남미와의 물리적 거리는 물론 정신적 거리도 좁히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미를 선진국문턱에서 실패한 반면교사라고 하면서 거들떠 볼 필요도 없다는 자세를 버리고 정작 우리도 선진국 문턱에서 휘청거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남미의 고통과 좌절까지도 우리의 타산지석으로 삼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남미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제는 우리의 남미를 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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