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에 대한 수사, 그리고 헌법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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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성완종 리스트와 이완구 국무총리 사퇴문제로 온 나라가 홍역을 앓았다.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희망은 못 줄지언정, 온통 우울감만 주고 있는 상황이 상당기간 진행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그러한 상황은 헌법에 부합되지 않는 위헌적 상황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 그 때의 상황을 헌법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정리해보자.
수사대상자가 수사권자를 감독할 수 있는 상황
우선 국무총리는 대통령 다음 가는 행정부의 제2인자이다. 그래서 국무총리는 헌법 제86조 제2항에 의해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할 ‘통할권’을 가진다. 따라서 국무총리는 행정각부와의 관계에서 상급행정관청으로서의 지위를 누린다. 상급행정관청으로서 행정각부 중의 하나인 법무부도 지휘하고 감독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법무부장관은 구체적 사건 수사와 관련해 수사지휘권을 가진다. 헌법은 아니지만 검찰청법 제8조가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감독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항에 근거해 법무부장관은 개별 수사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통해 검찰수사를 지휘·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수사 대상자인 국무총리가 수사권자를 감독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찰의 수사권 독립’은 연목구어에 불과하게 된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적어도 수사를 받는 동안은 국무총리직을 내려놓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국무총리로서의 ‘직무 정지’를 명할 법적 근거는 없었다. 헌법이나 법률이 국무총리의 직무 정지를 명하고 있는 것은 그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가 결의되었을 때뿐이다. 이 경우에만 헌법 제65조 제3항에 의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있을 때까지 피소추자인 국무총리의 직무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 따라서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검찰 수사 동안 잠정적으로 이완구 국무총리의 총리 직무를 정지시킬 어떠한 법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았다. 국무총리의 사임 없이는 헌법에 배치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으로 인한 국무총리의 대통령 권한 대행 상황
더욱이 그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길에 오르면서 헌법적으로 문제가 더 꼬이게 되었다. 헌법은 국무총리의 대통령 권한 대행권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71조에 의해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총리는 제1순위로 그 권한대행자가 된다. 대통령 유고시에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고 국무회의에서도 의장의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궐위’란 대통령이 사망한 경우, 탄핵결정으로 파면된 경우 등 대통령이 재직하고 있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이에 비해 ‘사고’란 대통령이 재직하면서도 신병이나 해외순방 등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와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함으로써 탄핵결정이 있을 때까지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된 경우 등,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직에 곧 복귀할 수 있는 경우를 뜻한다. 그래서 이번 경우는 ‘사고’로 인해 국무총리가 대통령직을 대행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국무총리가 대행할 직무의 범위에 관해서는 헌법이나 법률이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사고’로 인한 권한대행의 성질상 대통령 권한대행자인 국무총리의 직무범위가 잠정적인 현상유지에 국한되고 기본정책의 전환이나 인사이동 등 현상유지를 벗어나는 직무는 대행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사고’의 원인이 소멸하는 대로 대통령의 재집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박대통령의 해외순방으로 인해 이완구 국무총리는 국무총리이기도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자가 되었기에 ‘대통령의 명을’ 받지 않고 행정각부를 통할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 행정각부에 검찰을 외청으로 둔 법무부가 포함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수사대상자가 수사권자를 더 직접적으로 감독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런 반(反)헌법적 상황은 더 빨리 정리되었어야
헌법에 의해 대통령은 국무총리 임명권과 함께 파면권도 가진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자유로이 해임할 수 있다. 더불어 헌법에 의해 국회도 국무총리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헌법 제63조 제2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3분의 1이상의 발의에 의해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국무총리의 해임을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회의 해임 건의가 대통령에게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는 않는다. 즉 국무총리의 해임 여부는 해임 건의가 있더라도 여전히 대통령의 재량에 속하는 사항인 것이다. 과거 우리 헌법이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해임‘의결’을 규정했던 데 대해서, 현행 헌법 개정 시에 국회에게 국정감사권 이외에 국정조사권도 주는 대신에 다른 국회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의미에서 해임의결권을 해임건의권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다만, 법적 구속력과는 별개로 국회 재적과반수 의원들이 통과시킨 해임건의를 대통령이 무시하는 것은 법적 책임 이상으로 더 큰 정치적 책임을 부담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해임건의가 있으면 보통 국무총리는 대통령에 의해 해임되는 것이 통례다. 이번의 이러한 반(反)헌법적 상황은 결국 대통령의 국무총리 해임이나 국회의 국무총리 해임건의로 가지는 않고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임을 표하는 것으로 일단 해결되었다. 더 일찍 이러한 상황이 해결될 수도 있었는데 불필요하게 시간을 끈 면이 없지 않다. 반(反)헌법적 상황은 국가나 국민을 위해 빨리 정리될수록 좋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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