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식 주주친화 경영, 무엇이 문제인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삼성, 사상최대 주주환원…'이재용식 주주친화경영' 속도낸다,” 지난 10월 30일자 한 경제 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기사의 일부를 좀 더 소개하면, “삼성전자가 29일 11조3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자사주 매입 등 대대적인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한 것은 ‘이재용 부회장식 주주자본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기사는 더 나아가 이번 결정이 이 부회장의 경영 원칙에 따른 것이란 재계의 분석, 이 부회장은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기 때문에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철학이 확고하다는 평가, 삼성전자의 이 같은 결정은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투자증권 애널리스트의 평가 등을 소개하고 있다.
두 가지 이슈가 있다. 첫째는 그 동안 축적한 과잉 또는 잉여현금(free cash flow)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방법이 왜 배당이 아니고 자사주매입인가이고, 둘째는(첫째보다 더 중요한) 삼성전자가 잉여현금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이 과연 주주친화적이냐 다. 첫째 문제는 대답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기업이 기업활동에서 발생한 순이익을 주주에게 배분하는 방법으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은 다음에 보는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경우는 배당 소득세율과 자본이득세율이 크게 차이가 나거나 또는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이 투자자에게 주는 정보효과가 크게 다른 경우다. 모두 비슷한 경우는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모두 기업가치나 주주에게 미치는 경제적 효과는 동일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배당소득세율이 주식 매매에 따르는 자본이득세율 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배당소득세는 당장 내는 것이지만 자본이득에 대한 세금은 매매 시점에 발생한다. 따라서 세금만 보면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이 주주에게 다소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정작 어렵고, 일반 투자자, 언론매체들은 물론 소위 증권 전문가들 마저 혼동하는 문제는 두 번째 질문이다. ‘주주친화적’이라 함은 주주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잉여현금을 회사에 두지 않고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주에게 나눠주는 것이 주주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말이다. 두 경우 모두 회사의 입장에서는 현금유출이므로 자산가치와 자기자본을 배당 또는 자사주 매입액만큼 감소시키지만 주주에게는 재산상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므로 자사주 매입(또는 배당)에 들어간 잉여현금 역시 주주 돈이고 주주의 입장에서는 현금 유출액과 유입액이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왼쪽 주머니에 있던 돈을 꺼내서 오른쪽 주머니에 넣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웬 주주친화적?
이제 배당, 자사주 매입 등 이른 바 주주환원 정책의 논리를 생각해 보자. 먼저, 자사주 매입이 주당순이익을 증가시키고 주가를 상승시키므로 주주에게 이익이 된다는 오랜 미신(迷信)이다.. 이런 미신은 주가를 단순히 주당순이익에 주가-수익비율을 곱한 것으로 보는 경영자들과 투자자들의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경영자들은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증가시키는 기업을 선호하고 애널리스트들의 이익 예측치에 못미치는 실적을 낸 기업들에 실망한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주당순이익을 유지 또는 증가시키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자사주 매입은 유통주식수를 감소시켜서 주당순이익(=당기순이익/유통주식수)을 증가시킨다. 그렇다면 주가도 당연히 올라가야 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주가는 주당순이익에 주가수익비율(PER)을 곱한 것이므로 PER가 변하지 않으면 주가는 주당순이익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사주 매입이 회사의 자산가치와 지분을 그만큼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투자포기로 인한 미래의 이익창출 기회를 감소시킴으로써 PER를 하락시켜 주당순이익 증가 효과를 정확히 상쇄시킨다는 데 있다. 주가는 예상되는 미래순현금흐름을 자본비용으로 할인한 현재가치들의 합인데 자사주 매입은 기대순현금흐름이나 자본비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주가는 변하지 않는다.
또 다른 주장은 회사가 현재 주가가 저평가되었다고 생각하면 자사주 매입을 통해 시장에 이를 알려줌으로써 주가상승을 가져와 주주들에게 이익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자사주 매입을 반드시 저평가를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일 이유도 없거니와, 설사 현 주가가 저평가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자사주 매입과 관계없이 계속 가지고 있으면 결국 주가는 내재가치까지 상승하게 될 것인즉 주주에게 무슨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가? 자사주 매입에서 한 가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남아도는 현금을 주주들에게 줌으로써 회사에 쌓아놓고 지배주주를 위시한 경영층이 낭비할 수 있는 가능성(코리아 디스카운트?)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자사주 매입에 따르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문제는 자사주 매입이 주주에게 줄 수 있는 실질적인 이익은 별로 없으면서 회사의 상황이 오히려 주당순이익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는 것 말고는 신사업도, 신제품 개발도, 대규모 R&D 사업도, M&A도, 그리고 성장도 없다는 것을 시장에 알린다는 것이다. 더구나, 투자자들은 이익 감소가 예상되어 경영층이 지금까지의 주당순이익 수치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미리 알고, 이에 대비해 자사주 매입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은 구조조정으로 떠나는 임직원들에 의한 스톡옵션 행사로 인한 주당순이익 감소를 희석시키기 위한 사전 예방조치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내부자금을 감소시킴으로써 앞으로 신규자본이 필요한 경우에는 더 비싼 외부자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거나 수익성 있는 사업을 포기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 모두가 주주 친화적은 아니다.
진정한 주주 친화적 정책은 투자정책에 있다. 그리고, 이재용식 주주 친화정책은 주주가치 극대화를 추구하는 주주자본주의도 아니다. 현재 추진중인 사업구조조정을 신속히 마무리하고 구조조정에서 발생한 현금(이미 5조 이상이라 함)은 주주에게 나눠줄 것이 아니라,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미래 지향적인 사업의 개발, R&D, 글로벌 M&A 등에 투입해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