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평화공세와 우리의 대응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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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의 파격적인 신년사가 발원시킨 ‘평화의 바람’이 무척 거세다. 남북 간 고위급회담이 열리고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하더니만 특사교환에 이어 남북 정상이 4월에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고, 이제는 미북 간 정상회담도 가시권에 들어온 상태이다. 160명 규모의 한국 예술단이 평양을 방문하여 공연을 가질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핵악몽의 포로가 되어 살아 온 한국 국민에게 핵해결의 기대감을 안겨 준 신선한 충격임에 틀림이 없지만, 경계해야 할 것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때문에 남북 정부가 정상회담 준비에 한창인 지금 북한에서 발원한 평화공세의 성격, 진정성을 의심해야 할 이유, 함정, 전망, 향후 한국의 대응 등을 정리해보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3국 모두에게 엄중한 도박
우선, 북한의 평화공세는 “환영하지만 환호하거나 열광하기보다는 차분하고 냉정한 자세로 세심하게 대응해나가야 할 엄중한 사안”이며,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북한정권에게도 일종의 도박일 수밖에 없다. 한국으로서는 현 상황이 1994년과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당시 미북 간 제네바핵합의(Agreed Framework)가 성사되었을 때 세계와 한국의 언론들은 북핵 문제가 해결된양 환호했지만, 결국 북한의 ‘시간벌기 사기극’으로 결말나고 말았다. 하지만, 당시는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이 문제가 되었던 시절이었고 제네바합의는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과 관련 시설들을 동결한 합의였다. 지금은 북한이 세계 아홉 번째의 핵보유국으로 한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들을 가진 상태이다. 한번 더 사기를 당하면 한국의 안보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한국의 국론은 극렬한 분열현상을 보일 것이며, 정부는 중대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게도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GDP 규모가 미국의 6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북한의 지도자에게 ‘동등한 대화 테이블’을 제공하겠노라고 덥석 약속했다. 미국이 한번 더 북한의 기만극에 놀아난다면, 초강대국의 체면은 구겨지고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는 망가질 것이다. 평양정권에게도 그렇다. 이번에 또 다시 핵대화를 국제사회의 예봉을 피하면서 핵무기 기술의 완성을 위한 시간벌기에 악용하는 기만극을 펼친다면, 북한에게 다음 기회는 없을 지도 모른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응은 예전과는 많이 다를 것이며, 북한정권은 미국의 군사행동이나 국제사회의 초강경 조치에 직면해야 할지도 모른다.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혹시나’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하겠지만,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가지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북 진정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해야 하는 이유는 넘치도록 많다.
첫째, 북한은 적어도 여섯 번 이상 핵합의를 파기하는 찬란한(?) 전과를 가지고 있다. 1990년 기본합의서 및 비핵화공동선, 1994년 제네바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및 10․3 합의, 2012년 2․29 합의 등이 요란한 환호 속에 성사되었지만, 매번 ‘대화 따로, 핵개발 따로’라는 북한의 이중전략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되고 파기되었다.
둘째, 북한체제의 특성상 갑작스러운 핵포기가 쉽지 않다. 북한은 2012년 개정헌법에 스스로를 ‘핵보유국’으로 천명했고 이듬해에는 핵보유법(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에 대한 법‘)을 제정했으며, 여태껏 ’정의의 핵보검‘으로 선전해왔다. 체제의 특성상 하루아침에 핵포기로 선회하기에는 핵보유가 너무 많이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셋째, 평화공세가 시작된 과정이 탐탁하지 않다. 2017년 10월 7일 노동당 중앙위 제7기 제2차 전원회의는 ’핵보유 고수‘와 ’국제제재 극복‘을 ’2대 당면활동 방향‘으로 채택했다. 즉, 아무리 압박이 심하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핵보유를 고수하겠다는 전략목표를 수립한 것이다. 이어서 대남 평화공세의 내용을 담은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가 발표되었고, 유난히도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한 신년사에는 어떻게든 한국을 끌어안아 동맹을 이간시키고 국제제재를 균열․이완시키겠다는 의지가 흘러넘쳤다.
넷째, 북한을 다녀온 한국의 정의용 특사가 3월 5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표방했다”고 전언하고 여섯 개 항의 확인 내용을 발표했지만, 그리고 이어서 미국을 방문한 정 특사의 ‘비핵화’ 전언을 듣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에 응할 의사를 밝힌 상태이지만, 북한의 언론매체들을 비핵화에 대해 여전히 함구하면서 오히려 핵보유 정당성을 보도하고 있다. 북한의 사실상의 제2인자이자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인 김여정이 특사로 방한하여 온갖 좋은 말을 나누고 돌아갔는데, 그 김여정이 검열하는 북한 매체들이 여전히 ‘핵보검의 정당성’을 보도하고 있으니 개운하지가 않다. 마지막으로, 1990년에도 그랬듯 이번에도 평양정권이 궁지에 몰린 시점에 평화공세로 나왔다는 점도 핵포기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공식적으로 북한을 제재하지만 뒤로는 북한정권의 생존을 돕는 이중플레이를 해왔던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밀려 북한을 제대로 제재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후반기부터였다. 북한 내부를 아는 전언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해외에서 일자리를 잃고 돌아온 노동자들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무역회사들이 문을 닫고 있으며, 탄광에는 수출하지 못한 석탄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고 한다. 이런 시기에 또 다시 한국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이 품어야 할 당연한 합리적 의심이다.
경계해야 할 함정들
이대로라면 4월의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서로를 ‘멍청한 노인네’와 ‘꼬마 강패’로 부르던 두 지도자가 조만간 만날지도 모르지만, 정의용 특사가 ‘확인된 북측의 입장’이라며 발표한 여섯 개 항에는 경계해야 할 함정들도 있다.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은 필요하지 않다”라고 한 세 번째 항과 “대화중에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으며 핵무기와 재래무기를 남한을 향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 다섯 번째 항이 특히 그렇다. 세 번째 항은 ‘고무줄 해석’이 가능하여, 한미 연합훈련, 미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미국의 적대시 정책 등 북한이 ‘위협’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들은 무지기수로 많다. 북한이 핵폐기가 아닌 시간벌기와 제재체제 균열을 노린다면 핵해결의 전제조건으로 연합훈련 중단, 동맹 해체, 미군철수, 미북 수교, 평화협정 등 한국이 수용할 수도 없고 수용해서도 안 되는 요구들을 쏟아낼 수 있다. 때문에, 북한이 대화에서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하는 것이 핵폐기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다섯 번 째 항은 대화가 중단되면 언제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며, 특히 “한국을 향해 핵무기와 재래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부분은 다분히 선동적․기만적이다. 자고로 안보정책이란 상대국의 말이나 선언이 아닌 상대국이 보유한 능력에 근거하여 수립되는데, 이는 말이나 약속은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에 비추어본다면, “한국을 향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한국과 미국을 이간시키고 한국내 좌우 갈등을 심화시키는 선동일 뿐 실제 안보정책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말들이 정부의 안보정책이나 동맹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건 정부가 잘못하는 것이 된다.
전망과 대응
어떤 경위이든 핵대화가 시작되는 것는 것은 핵대화가 없는 것 보다 좋은 일이며, 가능성이 많고 적음을 넘어 북핵의 폐기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굳이 전망을 하자면 북한이 핵포기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에 임함으로써 실질적 진전을 가져오는 ‘착한 시나리오’와 북한이 핵포기보다는 핵무력 완성을 위한 시간벌기를 위해 다시 한번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이중전략을 펼치는 ‘나쁜 시나리오’ 대별할 수 있다. 착한 시나리오로 판명된다면, 모두가 행복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와 동맹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지원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30년에 걸친 북한의 핵행보를 관찰해온 전문가의 입장에서 평가한다면, 착한 시나리오가 될 확률보다는 나쁜 시나리오로 전개될 기능성이 훨씬 더 높다. 북한과 협상을 하는 동안에도 최악의 안보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해나가야 함은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은 실로 막중하다.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핵 폐기가 핵심적 의제가 되어야 함을 확실히 해야 하고, 핵폐기를 향한 진전된 행동이 실천되기 전까지는 대북 제재와 압박 그리고 독자 및 동맹차원에서의 확고한 안보태세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하며, “조선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기만적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는 과거에는 북한에서 “미국의 전술핵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미국의 핵우산과 모든 영향력을 한반도로부터 걷어내는 것이 먼저”라는 의미가 담긴 표현이다. 그럼에도 ‘조선반도 비핵화’가 ‘denuclearization of Korean peninsula'로 번역되고 그것이 한국에서 다시 ’한반도 비핵화‘ 번역됨으로써 적지 않은 혼란을 야기해 왔다. 때문에 핵대화에서 사용해야 할 용어는 ’북핵의 폐기‘이며, 이는 한반도에서 핵을 가진 쪽은 북한이고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한반도가 비핵화된다는 점에서 매우 명백하다.
미국 정부에게는 대한민국이 원하는 것이 어중간한 ‘핵타협’이 아니라 ‘완전한 북핵 폐기’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의 핵동결이나 모라토리엄(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 약속을 대가로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은 한국이 경계해야 할 어중간한 핵타협의 사례이다. 그런 식의 타협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일시적인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지만, 한국의 안보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북한이 핵폐기의 대가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반대급부는 제재의 해제, 미북 수교, 북한의 국제사회 동참, 남북간 경제협력 등이며, 동맹해체, 주한미군 철수, 연합훈련 중단, 평화협정 등은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북한이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들 수 있지만,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나중에 다시 쟁기를 녹여 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 때문에, 평화협정이나 미군 철수와 같은 것은 북한의 체제변화를 전제로만 생각할 수 있으며, 4년 임기의 미국정부나 5년 임기의 한국정부가 결정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북한의 평화공세에 대응함에 있어서는 국민과 언론의 자세도 매우 중요하다. 국민은 북한의 평화공세에 열광하거나 환호하기 보다는 조용히 대화를 성원하면서 정부가 함정을 경계하고 실족하지 않도록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여론의 힘이다. 언론도 그렇다. 장밋빛 일변의 보도보다는 차분하고 냉정한 자세로 팩트에 입각한 보도를 해야 한다. 몇 달전만 해도 북한군의 백령도 및 연평도 점령훈련을 현지 지도하던 김정은 위원장에게 갑자기 찬사를 쏟아내는 식의 보도는 낯간지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핵대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여론을 선도하는 언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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