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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의 새로운 자원민족주의 물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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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6월03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06월03일 12시10분

작성자

  • 손혜현
  •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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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의 자원 국유화 물결

최근 몇 년간 실시된 중남미의 선거에서 좌파 성향의 지도자들이 연쇄적으로 당선되면서 중남미의 정치지형이 다시 좌파로 바뀌었다. 새로운 좌파 대통령들은 자원가격이 급상승하자 자원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자원민족주의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천연자원은 중남미 지역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성장동력이며 빈곤 해결을 위한 열쇠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중남미에서 자원 국유화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멕시코(PEMEX), 브라질(PetroBras), 아르헨티나(YPF), 베네수엘라(PdVSA), 볼리비아(YPFB), 콜롬비아(Ecopetrol), 에콰도르(Petroecuador) 등의 산유국들은 국가가 에너지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중남미에서는 1930년대부터 천연자원에 대한 영구주권 원칙과 자주적 이용권을 주장하며 자원에 대한 국유화 조치가 광범위하게 취해졌다. 2006~2008년 중남미에 불었던 자원 국유화 열풍은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던 좌파 정부가 고유가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던 석유와 천연가스산업의 이익을 사회재분배정책을 위한 재정을 확보하고 모든 문제의 근원을 외국기업의 탐욕으로 돌림으로써 공공의 적을 만들고 응집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중남미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침체된 상태였다. 2014~2023년간 평균 0.9%의 성장률로, 중남미가 외채 위기를 겪던 1980년대의 ‘잃어버린 10년’ 당시보다도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2023년에도 국내외적인 불확실성의 증가로 경제성장은 더욱 둔화되어 성장률은 세계평균 성장률을 밑도는1.2%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면서(ECLAC), 중남미의 경제회복 전망이 불투명하다. 2019년 중남미 지역을 휩쓸었던 사회적 시위의 원인인 불평등과 빈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더욱 심화됐으나, 성장둔화로 소득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재정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다. 결국 중남미의 새로운 좌파 정부들은 자원 국유화를 경제성장과 소득 재분배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 인식하고 있다. 

지난 2월 20일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es Manuel Lopez Obrador 이하 AMLO) 대통령은 리튬 산업 국유화를 발표하고 리튬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에너지부로 이양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어 4월 20일 칠레에서는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대통령이 칠레의 리튬 산업 국유화를 선언했다. 5월에는 아르헨티나에서도 여당인 모두
를 위한 전선(Frente de Todos)이 리튬 국유화 계획을 발표했고, 라 리오하(La Rioja)주는 리튬을 전략 광물로 지정하고 기업들의 채굴권을 정지시켰다. 중남미 최대 리튬을 보유한 볼리비아는 이미 2008년에 리튬을 국유화하였다. 현재 4개국 모두 경제에 대한 정부의 더 많은 개입을 지지하고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지도자들이 이끌고 있으며, 이러한 이념적 동질성은 중남미를 리튬 공급망의 허브로 만들기 위한 “리튬 카르텔” 추진에 강력한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시대 중남미의 리튬과 미-중 경쟁

 전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문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과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 모든 국가의 경제와 산업의 판도를 바꾸어놓고 있다. 주요 국가들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였고, 중남미 국가들 역시 대부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탄소중립을 위해 전 세계 많은 국가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전기자동차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미-중 경쟁의 심화가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였다. 에너지 전환의 핵심인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에너지를 저장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수요가 많이 증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에 판매되는 신차 3대 중 1대 이상이 전기 자동차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전 세계 전력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1년 28.7%에서 2030년 42%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세계 배터리동맹(GBA)은 리튬배터리 시장이 2022년부터 2030년까지 매년 30%씩 성장하여 2030년에 4,000억 달러 이상의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은 배터리생산국가간 리튬확보 경쟁을 가열시켰다. 리튬의 매장량은 석유보다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전 세계 확인된 매장량의 약 56%가 볼리비아(23.7%), 아르헨티나(21.5%), 칠레(11.1%) 중남미 3국에 집중돼 있으며, 멕시코, 브라질 그리고 페루를 포함하면 60%에 달한다. 멕시코는 170만 톤(1.9%)에 불과하지만, 미국 및 캐나다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최근 전기차 생산의 중심지로서 급부상하고 있어 북미의 리튬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중남미 국가들의 기술 및 자본 부족 때문에 아직은 생산 규모가 크지 않지만 앞으로 개발 잠재력은 매우 크다. 잠재력은 리튬 추출뿐만 아니라 리튬 이온 배터리 생산 및 판매 가능성에도 있다. 칠레는 역내 최대 리튬 생산국으로 전 세계 리튬생산의 25%를 차지하며 아르헨티나는 세계 4위 생산국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6%를 생산하고 있으나, 현재 전속력으로 생산량을 늘리고 있으며 수십 개의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향후 수십 년간 중남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원자재 공급자가 될 것이다. 리튬 및 녹색기술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미-중간 지정학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남미는 미국과 중국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현재 아르헨티나에서는 2년 내 생산이 시작되는 6개의 리튬개발 사업 중 4개 사업에 중국이 참여하고 있고, 2022년에만 최소 9개의 리튬 사업을 발표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의 체리 자동차기업은 4억 달러 규모의 전기자동차 제조공장을 아르헨티나의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인 로사리오(Rosario)에 설립할 계획이다. 볼리비아에서도 최근 이루어진 6개의 입찰 중 4건이 중국 기업에 낙찰됐으며, 특히 우유니 사업권은 미국을 탈락시키고 중국이 가져갔다. 칠레에서도 중국의 전기차회사인 비야디(BYD)가 리튬 배터리용 양극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미국이 주로 원자재 확보에 중점을 두지만 중국은 중남미의 배터리 생산에 투자하기 때문에 고부가가치의 상품 생산 및 산업 모델 전환을 추구하는 중남미 리튬 보유국들은 중국의 제안에 더 끌릴 가능성이 크다. 

중남미의 딜레마와 각국의 자원 국유화 상황 

중남미 지역 정부가 직면한 딜레마는 리튬 가격이 오르는 것에 비례해서 자국의 이익이 충분히 증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리튬에서 발생하는 수익 대부분은 채굴이 아닌 리튬을 사용해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가치사슬의 후반부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중남미 국가들은 추출주의 모델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업 모델로 바꾸고 리튬 수익을 자국으로 가져올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① 멕시코 
멕시코의 AMLO 대통령은 중남미 지도자 중에서 리튬에 대해 가장 강경한 민족주의 입장을 취하는 지도자로 지난 2월 리튬 국유화법 서명 시 “우리는 리튬을 국유화하여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외국인이 착취할 수 없도록 할 것”이며 “석유와 리튬은 국가와 국민에게 속한다”라고 말했다. 멕시코는 리튬을 국유화하고 에너지부 산하에 리튬공사(Lithium for Mexico)를 만들어 리튬의 탐사, 개발, 판매 등에 대한 전권을 위임했다. 멕시코 북부에 있는 소노라(Sonora)주를 멕시코의 신재생에너지의 허브이자 리튬생산 및 전기차 제조의 중심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리튬 광산 채광권을 보유한 12개의 민간 기업에 대해서는 리튬 채굴과 탐사 활동을 유보하였다. 
멕시코의 리튬은 점토에 매장돼 있어서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리튬 산업의 공급망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리튬개발은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한 산업이다. 이러한 사업에서 국내외 민간부문을 배제하게 되면 국가의 전략산업에 대한 외국인 침투를 억제하고 국가자원을 보장하는데는 효과적이지만, 부패를 증가시키고 필요한 기술과 외국인 투자 유입을 감소시켜 경제안정과 발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② 칠레 
전략적 천연자원 개발의 선두주자인 칠레가 4월 리튬 산업의 국유화를 선언했다.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 칠레 대통령은 국가가 리튬을 통제하는 것이 지속가능하고 발전된 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말하며, 국영 리튬회사를 설립하여 리튬에 대한 정부통제 강화를 발표했다. 칠레에는 60개 이상의 염전 및 염호가 있지만, 국가매장량의 90%는 아타카마 염수호(Salar de Atacama)에 집중되어 있으며 현재 칠레기업인 SOM과 미국기업인 Albemale가 채굴권을 가지고 있다. 리튬 국유화에도 기존 기업의 채굴권은 보장된다. 그리고, 칠레의 리튬 국유화는 국영리튬기업과 민간광업기업간의 민관파트너십(PPP, Public-Private Partnership)의 형태를 띠게 된다. 

③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는 멕시코와 칠레의 리튬 국유화 조치에 영향을 받아, 여당인 모두의 전선(Frente de Todos)이 리튬 국유화와 볼리비아와의 합작회사 설립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재계 및 광업 위원회가 리튬 국유화는 현재 진행 중인 개발사업을 위험에 빠트리며 새로운 투자 붐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맞서고 있다. 또한 칠레의 국유화로 아르헨티나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국유화를 반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현재 수십 개의 민간 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며, 역내 국유화 물결 속에서 가장 기업 친화적이다. 

④ 볼리비아 
세계 최대 리튬 매장지를 보유한 볼리비아는 2008년에 리튬의 채굴, 생산 및 판매 과정을 국가가 독점하는 리튬 국유화를 추진했으나, 자원, 인력, 기술 부족 및 정치적 불일치로 아직 생산단계에도 진입하지 못했다. 국영화 10년 후 볼리비아 국영 리튬회사는(YLB) 민간투자 유치를 위해 볼리비아의 지분 51% 보장, 리튬의 고부가가치 산업화 보장, 자금투자, 기술 및 지식 이전을 합작투자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최근 리튬생산, 가공, 판매의 전 과정을 YLB가 관리·감독한다는 조건으로 중국의 ‘CBC 컨소시엄’과 10억 달러 규모의 리튬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향후 중남미 자원민족주의 전망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60%를 차지하는 중남미 지역은 전기차 생산 확대에 따른 횡재에 기대감이 높다. 지난 2년간 리튬 가격이 500%나 급등했고, 경제선진국들은 녹색기술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중남미와의 공급망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은 리튬에 대한 폭발적 수요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해 리튬 국유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중남미에 불고 있는 새로운 자원 국유화의 바람은 자율성과 주권을 강조하는 좌파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COVID-19 팬데믹의 이후 경제를 재활성화와 사회정책 확대를 위해 정부의 수익을 증가시키려는 국가전략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중남미의 리튬 국유화 물결은 리튬에 대한 국가 통제력과 장악력을 강화하여 단순한 천연자원 수출국에서 베터리 제조와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 모델로 생산 및 경제구조를 현대화하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많은 자본이 필요한 리튬개발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를 위태롭게 하고 경제 다각화를 위한 ‘황금 거위’를 죽일 수 있다는 유려가 있다. 따라서 리튬 국유화는 급진적인 방식보다는 국제적 협력과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상
황에서 중국이 중남미 리튬 부국들과 단순 채굴뿐만 아니라 리튬생산부터 배터리 제조까지 기술협력을 강화하고 있어 중남미가 미-중이 충돌하는 새로운 격전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끝>

 ※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한 [정세와정책 2023-6월호 제35호] (2023.6.1.)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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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6월03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06월03일 12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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