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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투자결정은 정치가의 몫이 아니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3월16일 20시45분

작성자

  • 오성근
  •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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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선거철만 되면 이합집산이 일어난다. 역겨운 일도 다반사다. 익숙한 모습이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수는 없을 테니 크게 보아 건강한 모습이라고 여기고 싶다. 모두들 겉으로는 그럴듯한 철학과 가치를 내세우며 금방이라도 뭐가 바뀔 것처럼 말들 하지만 일이 전개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희망을 갖기 힘들다. 필자는 정치를 잘 모르지만 정치란 보다 나은 세상을 열어나가기 위한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우리 사회를 절망을 넘어 희망으로, 불신을 넘어 믿음으로, 미움을 넘어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여 살만한 세상으로 가꾸어나가고자 하는 것이 정치하는 분들의 소망이 아닐까? 그들은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의 철학과 이론과 실천체계를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선택을 기다린다.

 

더불어민주당이 총선공약 1호로 공공임대주택 및 보육시설에 매년 10조씩 10년간 100조를 투자하는 대규모 건설안을 발표하였다. 재원은 국민연금기금이다. 국채에 준하는 수익률을 보장하는 국민안심채권이라는 특수채권을 발행하여 기금이 투자토록 하겠다고 한다. 더민주당은 이 안이 일석삼조의 방안이라고 한다. 출산율이 올라 기금의 지속가능성이 높아지고 공공부분의 일자리가 늘어나 경기부양효과가 기대되며 주거불안이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뚜렷한 철학을 바탕으로 엄혹한 현실에 대한 철두철미한 반성 끝에 성안된 것일까? 어쩐지 선거를 코앞에 두고 급조한 느낌이 든다. 총선승리 대선승리를 노리는 정당치고는 엉성하고 성급해 보인다. 보다 근원적인 처방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불황이다. 모두들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기업활동은 위축되고 있고 소비자들도 지갑을 닫고 있다. 금방 나아질 기미도 없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들 사정도 엇비슷하다. 큰일이다. 1929년 대공황도 20년 긴 세월을 끌었다. 2천만 생령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의 잿더미위에서야 불황을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29년 공황은 주식이 격발시켰지만 이번은 은행이었다. 문제의 뿌리가 훨씬 깊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렇게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양이 질을 죽이고 있고, 소유가 존재를 압도하고 있는 세상이다. 배금주의 물신주의가 넘친다. 과잉생산 과잉소비 과잉금융 탓이다. 금융위기는 팽창될 대로 팽창된 이 연결고리가 끊어져 발생한 것이다. 다시 이으려면 희생도 더 크고 시간도 더 걸릴 것이다. 

 

세계경제상황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더 흐릿해지고 있다. 디플레이션이 만연해있다. 앞날에 대한 불안으로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어 물가가 하락하고 성장이 침체되고 있다. 유동성은 넘쳐나지만 실물경제회복은 요원하기만 하다. 너도나도 한결같이 양적완화라는 미봉책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위기돌파의 핵심은 정부 기업 가계 경제주체 모두의 선제적인 구조조정으로 초과공급과 수요부족을 치유하여 성장엔진을 다시 살려내는 것인데도 하나같이 모두 쉬운 길로만 달려왔다. 미국이 홀로 위기에서 탈출한 듯 보이지만 아직은 취약해보이고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수년간 이어져온 양적완화정책을 중단하고 조심스럽게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시작하자마자 문턱에서 머뭇거리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어쩌면 이미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는지도 모른다. 환경오염이나 기후변화는 이제 우리가 날마다 피부로 느끼고 있는 일이고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이성맹신 과학기술발전 대량생산 인구폭발 자원고갈 환경파괴 이상기후. 현대문명이 불러온 결과다. 더 이상 발전과 성장을 도모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곳저곳에서 이름도 생소한 전염병들도 창궐한다. 발버둥 쳐보지만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빛의 속도로 쏟아지는 우울하고 불안한 소식은 오늘도 시시각각 우리를 옥죄어온다. 도대체 이 세상은 지속가능한 것인가? 걱정은 깊어만 간다. 근본적인 성찰이 절실하다. 현상을 해석하고 지도할 새로운 이념은 언제 출현하여 이 지긋지긋한 질곡에서 우리를 탈출시킬 것인가?

 

실상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 호도해서는 안 된다. 알릴 것을 제대로 알리고 이해를 구한 다음 모두 함께 힘을 합해 돌파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먹고사는 것만큼 절박한 것은 없다. 우리를 잠들지 못하게 한다. 벼랑 끝까지 몰아간다. 생존의 기본욕구조차 충족되지 못하고서야 더 이상 무슨 의미를 추구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는 소득양극화현상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더 이상 실기하면 백약이 무효다. 병이 깊어지면 치료법도 독해진다. 생명이 끊어지기 전에 서둘러 대수술에 나서야 한다. 내일로 미룰 상황이 아니다. 지금은 그야말로 우리 모두의 피와 땀과 눈물이 요구되는 엄중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상황이 이런데도 야당총선공약 1호가 고작 국민연금기금을 전용하여 공공주택을 짓자는 것이라니. 당면한 곤경을 돌파해나갈 그랜드플랜을 먼저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살률 이혼률 세계 1등이다. 암울한 현실이다. 우리가 가장 힘들 때는 언젠가? 희망이 없을 때다. 절망은 우리를 죽음으로 내몬다. 오늘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내일은 나아지겠다는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고난도 참고 견딜 수 있다. 믿음이 한 조각이라도 남아있다면 희망은 있게 마련이다.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사랑에서 온다. 사랑이 없으니 믿음이 없고 믿음이 없으니 희망이 없는 것이다. 사랑 믿음 희망을 되살려내야 한다. 미움 불신 절망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이 땅의 정치인들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면서도 시대상황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부족한 것 같다. 

 

어제오늘일이 아니지만 요즘 정치판을 보고 있자니 부아도 치밀어 오르고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품위를 잃고 막말이 난무하고 있다. 국민대표들이 맞나? 이런 꼴 보자고 뽑아놨나? 이런 나라가 어디 또 있는가 모르겠다. 여야 모두 오십보백보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꼴을 보아야 하나. 이런 분들이 날마다의 우리 생활을 구속하는 법을 만들고 있다. 제발 투표들 제대로 하여 수준 떨어지는 분들은 그만 집에 보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정치가가 정치를 죽이고 있고, 종교인이 종교를 죽이고 있으며, 교육자가 교육을 죽이고 있다. 모두가 넌덜머리를 내고 있다. 정치인은 있지만 정치는 없고, 종교인은 있지만 종교는 없으며, 교육자는 있지만 교육은 없다. 너무 심한 말인가? 

 

더민주당의 이번 발표는 과연 공공주택투자가 기금운용목적에 합치하는 것이냐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그 자체로 이미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기금운용은 기금운용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집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기금운용절차도 무시해가며 그렇게 발표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국민연금기금의 투자결정은 정치가의 몫이 아니다. 이번 발표는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해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든지 지배구조를 무시하고 기금운용에 간섭하면 안 된다. 정치적인 간섭으로 잘못된 예가 가까이에 있다. 일본후생연금이다. 주식투자를 확대한 결과 최근 엄청난 손실을 안게 되었다. 피해는 결국 가입자에게 돌아간다. 

국가가 수익률을 보장한다는데 무슨 말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투자판단은 정치가의 몫이 아니라 기금운용담당자의 몫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기금운용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인지, 포트폴리오를 여하히 구성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기금운용담당자의 몫이다. 배를 산으로 밀어 올리려고 하는가? 안정성만이 능사가 아니다. 물론 기금은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수익성 또한 중요하다. 유동성도 마찬가지다. 공공성과 독립성이 훼손되면 기금운용에 심대한 지장이 초래된다. 기금은 안정성 수익성 유동성 공공성 독립성을 고루 감안해 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것 하나 벗어나면 안 된다. 장기안정수익확보로 기금가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해놓은 기본원칙들이다.   

 

더민주당안은 공공성 면에서는 타당해 보인다. 안정성 면에서도 합격이다. 그러나 수익성 유동성 독립성 면에서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투자결정주체도 잘 모르고 있다. 국민연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성급한 발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조급증은 세계가 다 안다. 매사 절차와 순서를 지켜야 한다. 빵을 만들려면 밀가루에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반죽을 잘한 다음 서서히 열을 가해야 한다. 불에 물을 들이붓고 나서 밀가루를 끼얹으면 되겠는가? 정성을 다해 빵을 만드는 숙련된 주방장이 따로 있다. 아무나 나서면 안 된다. 국민연금은 쓰고 싶다고 누구라도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국가필요에 의해서 용처가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되는 돈이다. 주머니가 다르다. 이천만 가입자 돈이다. 재정으로 충당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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