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운동하자는 사람이 늘고 있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나는 매사에 상당히 너그러운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따뜻한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물론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경우에 나는 대단히 엄격해진다. 예를 들어 강의 첫날 나눠주는 강의계획서에 어떤 경우라도 지각, 결석을 3번 이상할 경우 F학점을 준다고 적어 두었고 예외 없이 실천하고 있다. 과제물도 기한을 넘기면 아예 받지 않는다.
학부 강의 때 일이다. 종강 날 복도에 예닐곱 학부모와 오토바이 택배 기사가 과제물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을 종종 본다. 수강생들의 연락을 받고 황급하게 달려온 어머니 얼굴에 “원 성격 안 좋은 교수가 다 있구나”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고 환한 얼굴로 과제물을 받는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동반자들은 나를 무척 원망한다. 이해가 간다. 멀리건도, OK도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예외 없이 엄격한 룰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크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는 대개 나보다 훨씬 연배 분들이다. PGA 경기도 아닌데 왜 이리 사납게 구느냐고 불만들이 대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이 원칙을 깨뜨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보니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좋은 점은 나와 플레이를 하는 날에는 정확히 제 실력(핸디캡)을 알 수 있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주말에 간만에 힐링차 나왔는데 ‘백돌이’가 되어 돌아가니 기분이 엉망이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동반자들은 가끔 나를 두고 ‘조폭교수’라고 놀린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지인들이 나의 이런 방침을 이해해 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하다. 인정사정 두지 않는 경기 운영방식에 얼굴 붉히다가도 막상 헤어질 때쯤에는 유쾌하고 즐거웠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말이 빈 말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신뢰와 원칙이 중요한 것은 잠재적 가변성이나 예측 불가능성을 줄이기 때문이다.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정은 물론이고 나아가 인간세상의 모든 거래는 깨지거나 성립하지 않게 된다. 앞서 얘기한 사례처럼 신뢰는 개인 간의 신의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무한대로 확장된 인간사회에서는 규칙에 의해 보장된다. 각종 법률과 제도가 점점 복잡하게 발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을 지키지 않을 때 이를 응징하는 법과 제도도 동시에 발전해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정한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이다. 또 국사 시간에 배운 ‘도적질 한 자는 노예가 되고, 50만전을 배상해야 한다’는 고조선의 8조 금법도 모두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도적질을 했을 때 탈리오 원칙(응보원칙)에 따라 응징하는 법이다.
신뢰의 중요성은 제갈공명의 읍참마속(泣斬馬謖) 고사로도 이해된다. 약한 초나라를 어렵게 삼국정립의 대등한 위치에 오르게 한 것도, 아들같이 사랑했던 장수 마속을 울면서 참수했기 때문이다.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도 원칙주의자였다. 하루는 아내가 시장 가려는 데 아이가 울면서 매달리자 “시장 갔다 와서 돼지를 잡아 맛있는 저녁을 해주겠다.”고 구슬린다. 시장을 다녀온 아내는 난데없는 돼지비명을 듣게 된다. 증자가 뒷간에서 돼지 잡을 태세다. 깜짝 놀란 아내가 울면서 만류했지만 “신뢰가 없으면 아이를 망치게 된다”며 주저 없이 멱을 땄다. 신뢰는 운동이나 아이교육뿐 만 아니라 국가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그토록 신비해 하는 로마제국의 천년 영화(榮華)도 따지고 보면 상황논리에 기댄 재량보다는 신뢰와 원칙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은 실제 과학적으로도 증명된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키드랜드(Kydland)와 프레스콧(Prescott)은 1977년 ‘재량보다는 원칙’(Rules rather than discretion)이라는 논문에서 융통성보다는 원칙을 지킬 때 정책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왜 재량보다는 원칙이 먼저일까? 그것은 사회적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거래나 계약은 거래당사간의 신뢰를 필요로 한다. 거래는 신뢰수준과 같은 거래비용의 영향을 받는다. 원칙 준수는 거래비용을 낮추지만 재량은 반대로 거래비용을 높이게 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기대 속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서너 달이 지났다. 그가 내놓은 공약의 실천여부를 두고 찬반이 분분하다. 대국민 약속이니 만큼 당연히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과 나라가 거들날 수도 있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양쪽 주장이 나름대로 설득력 있다. 그러나 다소간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공약실천이 중요하지 않을까? 매 정권마다 상황논리를 앞세워 공약을 휴지조각 만드는 구습은 더 이상 곤란하다.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은 대통령의 잘못이 아니라 그런 공약을 믿고 뽑아준 우리 모두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런던의 옛 증권거래소 벽에는 '나의 말은 나의 문서'(Dictum Meum Pactum)라는 경구가 있다. 사회적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서, 조그만 섬나라 영국을 세계 최고의 금융국가로 가능케 한 금언이다. 저명 사회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한국을 심각한 ‘저 신뢰사회’라고 평가한 바 있다. 신뢰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가 그립다. <ifs pos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