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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늘 선한 자부터 죽는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6월25일 16시56분
  • 최종수정 2017년07월05일 09시57분

작성자

  • 김동률
  • 서강대학교 교수. 매체경영. 전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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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을 다녀왔다. 미국에는 7년 살았다.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서다. 그래서 미국은 내게 비교적 익숙한 나라다. 미국에서 학위공부를 해 본 많은 분들이 공감하겠지만 미국 땅에서 공부할 때는 미국이 그리도 싫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소변도 미국쪽으로 보고는 하지 않겠다”고 말들 하곤 한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다. 비록 트럼프라는 럭비형 인물에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스템이 돌아가는 나라다. 이번 방문길에 워싱턴에 며칠 머물렀다. 

 

나는 워싱턴에 갈 때마다 도심에 있는 내셔널 몰을 산책하곤 한한다. 몰 중앙에 위치한 리플렉션 폰드(반성하는 연못) 주변을 걸으며 미국이란 나라를 생각해 본다. 바로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가 뛰어들었던 그 연못이다. 그리고 꼭 한번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전 기념공원(The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이다. 

 

워싱턴 포토맥 강가 링컨기념관 앞쪽에 세워진 한국전쟁 기념 공원은 이제 워싱턴의 명소가 됐다. V자 형으로 늘어선 실물크기보다 약간 큰 열아홉명의 군인상이 자리하고 있다. 육, 해, 공, 해병으로 백인· 흑인· 히스패닉계 미국인 등 인종별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전쟁의 극심한 고통이 적나라하게 새겨져 있다. 그래서 보는 이에게도 그 쓰라린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새겨진 동판옆에 세워진 판초우의를 덮어선 지아이(GI)들의 일그러진 얼굴 부조앞에서 여행객은 정녕 자유가 공짜가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기념 동판에는 낙동강, 장진호 등지에서 무려 54,245 명의 꽃다운 젊음이 사라졌다고 적어 놓았다. 그리고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조국의 부름에 응한 우리의 아들딸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새겨진  구절이 보는 이들을 감동시킨다.  

 

전쟁사로 볼 때 미국 역사상 최악의 패전은 진주만 피격이다. 알려진 대로 일본의 공군력을 과소평가,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한국의 장진호 전투다. 한국전쟁 중인 1950년 겨울, 미해병 1사단은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 일대에서 중공군에 포위되어 전멸되다시피 했다. 그해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 벌어진 전투는 미군 전사에도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공식 기록되어 있다. 해병 1사단 외에 미 육군 7사단 병력도 대부분 괴멸되었다. 

 

그러나 작전을 통해서, 해병 1사단은 중공군 남하를 일시 지연시켰으며,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도 봤다”는 작고한 가수 현인 선생의 노래처럼 ‘굳센 금순“으로 대변되는 수많은 피난민이 남쪽으로 탈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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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국에 있어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 (forgotten war)에 다름 아니다. 때마침 탄생한 컬러 TV와 맞물리면서 안방까지 생중계 되다시피 했던, 화려했던 베트남 전쟁에 비해 한국전쟁은 2차 대전과 베트남 전쟁 사이에 낀 미국으로서도 잊고 싶은 전쟁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3년 7월 28일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열린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직접 읽은 축사를 통해 "5천만 명의 한국인들이 종전후 지금 자유와 번영 속에 살고 있다"면서 한국전은 결코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승리한 전쟁이라고 재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와 패배를 떠나서 전쟁은 늘 비극적이다. 연전에 기념 공원에 설치된 부스에서 전사자의 이름을 한번 건드려 본 그 날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이름을 누르면 붉은 테두리의 종이가 삐죽이 나온다. “조쎕 C. 제르보, 육군 일병, 군번 12322768, 1931년 뉴욕주 킹스출생, 1950년 9월 13일 한국전 작전중 19세로 사망”이라고 적혀 있다. 종이에는 다시 작은 글씨로 “고 제르보 일병은 미육군 1 기갑사단 5연대 정찰병으로 한국전에 참전, 서부전선에서 9월 13일 적군과 교전중 사망했다”고 덧붙인다. 열아홉 어린 미국청년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태평양 건너 멀고 먼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도착한 다음 날 전사했다는 것을 알리는 쪽지다. 기록을 읽는 나의 마음은 순간 울컥해 왔다. 

 

소포클레스가 말했다. “전쟁은 언제나 악한 자보다는, 선한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먼저 죽게 된다.”고. 맞는 말씀이다. 그러면서 작금의 사드를 둘러싼 보혁간, 한미간의 갈등을 지켜보는 나는 몹시 우울하다. ‘국가안보 이상 없다’고 큰 소리 치다가 저혼자 줄행랑친 이승만 정부가 문득 떠오른다. 안보는 그 모든 국정에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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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7년07월05일 09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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