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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시스템을 기다리며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05월07일 18시41분

작성자

  • 김동률
  • 서강대학교 교수. 매체경영. 전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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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아들이 태어나서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용돈을 줘 본 적이 없다. 명절날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받은 용돈을 어디 썼는지 물어 본 적도 없다. 물론 아내가 따로 용돈을 준 것도 아니다. 작은 서랍이 있는 조그만 탁자가 현관 출입문 안쪽에 놓여 있다. 서랍 속에는 늘 만원권 서너 장, 천원 짜리 서너 장, 그리고 동전들을 준비해 놓았다. 수시로 확인해 보고 채워 넣은 것은 아내의 일이다. 아이들은 돈이 필요하면 맘대로 꺼내어 쓴다. 물론 사전 허락을 받거나 사후 보고를 할 필요는 없다. 대학에 진학하자 신용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어디 사용하는지 아내와 나는 캐묻지 않았다. 카드이던 돈이던 자신들이 알아서 쓰면 그 뿐이다. 

 

그러나 이같은 우리 집만의 용돈 관리는 그 동안 서너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다. 서랍속의 돈은 아들에게는 제 또래 동네 아이들의 군것질용으로는 충분했다. 아내와 나는 짐짓 모른 체 보고만 있었다. 군것질 돈이라는 게 그래 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문제는 딸아이였다. 용돈을 무절제하게 쓰는 두살 아래 동생을 호되게 나무라는 게 보통이 아니다. 조목조목 따져 가며 동생을 야단치는 등 아이들간의 긴장 국면은 열흘간이나 계속됐다가 조용해 졌다. 서랍 속의 돈을 맘대로 쓰던 아들이 생각을 바꿨음은 물론이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다. 아내의 생일날이 다가오자 아이들이 항의해 왔다. 용돈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다. 용돈을 받고 또 그것을 절약, 선물을 해야 뭔가 의미가 있고 그럴 듯해 보이는데 서랍 속의 (부모가 넣어둔) 돈으로 선물 사기가 영 맘이 켕긴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른이 되면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단한 얘기이지만 이처럼 스스로 알아서 하게 하는 자유와 자율은 막상 현실에서는 그리 쉽지가 않다. 특히 식민지 시대에 이어 오랜동안 권위주의 정권의 감시와 규제에 길들여져 온 우리로써는 자율이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은 느낌일 들 때가 종종 있다. 교통량이 뜸한 교외 길에도 유턴이나 좌회전 허용 표지가 없으면 어디 후미진 곳에 가서 억지로 돌려 오거나 아니면 딱지 뗄 각오를 하고 마음 조려가며 방향을 턴다. 지시나 허용해 주지 않으면 쉽게 뭘 하기가 망설여진다. 예전의 명문이던 서울고 김모 교장의 경우 주머니에 손을 넣는 아이들이 보기 싫다며 교복주머니를 없애 버려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 된다. 미국의 경우 좌회전, 유턴 등등 금지 표시가 따로 없으면 맘대로 운전할 수 있다. 운전뿐만 아니다. 하지 말라는 특별한 표시만 없으면 어떤 일이든 맘대로 할 수 있다. 물론 금지표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위반했을 때에는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다. 이른바 네거티브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원래 무역 용어로 수출입 자율화가 인정된 제도에서 특정 품목에 한해서만 수출입을 제한, 금지하는 방식을 말한다. 지금은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게 쓰인다. 특별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사회 구성원의 양식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전제로 해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우리도 이제 많이 변했다. 좁아지는 도로에서 자연스럽게 교대진입이 정착되고 있으며 수백만 명이 촛불을 들고 나왔지만 다쳤다는 소식은 없다. 한국 사회가 몰라볼 정도로 성숙했다는 좋은 증거가 된다. 문제는 정부다. 개인과 사회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예전 그대로다. 지나친 규제나 개입은 오히려 창의성을 떨어뜨린다. 규제와 간섭은 또 관료집단의 부정부패 등을 필연적으로 가져오게 된다. 탄핵 사태에서 나타난 재벌과 정부간의 정경유착이 적절한 예다. 물론 자율적인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시장실패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개입은 일정부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해 오히려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정부실패 상황을 가져오고 있다. 네거티브 시스템에도 일정 부분 부작용이 따른다. 그러나 부작용이 없는 이치란 세상에 없다. 썩은 가지를 일일이 쳐내는 것 보다 나무전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하여 더 좋은 열매(사회)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성숙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차기 정부가 네거티브 시스템 확대를 고민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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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5월07일 18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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