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연금사회주의 우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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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가 지난 7월30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의결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이를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행동지침”을 말한다. 즉,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단순히 주식 보유와 그에 따른 의결권 행사에 한정하지 않고 기업과 적극적인 대화를 통한 기업의 지속가능 성장에 기여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사전적(辭典的) 의미다. 어디까지나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행동원칙을 규정한 자율규범이다. 잘 지켜지면 매우 바람직한 지침이고 잘 운용된다면 국가경제의 활력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왜 말들이 많은가? 연금기금에 부여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주권 행사를 통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의 영향력 하에 있는 국민연금이 기업의 경영참여나 인사개입 등을 통해 민간기업 지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연금 사회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것이다.
‘연금사회주의’ 용어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1976년 펴낸 저서 ‘The Unseen Revolution’<NY,Harper & Row,1976> (한국어 번역판 ‘복지혁명’,조희영 외3인,1981.8 간행, 대영사)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제1장 첫 제목이 ‘연금기금 사회주의의 출현’이다. 1970년대 중반 들어 미국 연금들이 기업 최대주주 및 최대채권자로 올라서면서 제기된 개념으로 드러커 교수는 이 책에서 “10년 안에 미국 주식자본의 50~60%를 연금기금이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최근 전경련 세미나에 참석한 싱가포르국립대 신장섭 교수는 "한국에선 국민의 돈을 끌어 모은 국민연금이 대기업 지분을 사들여서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금사회주의로 가고 있다"며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국민연금은 수익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행동주의 펀드’와는 분명히 다르다. 국민들의 노후복지를 책임지는 사회보장 장치로 출범한 것이 국민연금이다.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책임지는 기금이라면 수익성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안정성이 아닌가 싶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상당한 리스크가 수반되는 주식투자에 큰 비중을 두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다.
더구나 기업들의 경영참여를 통해 기업이 성장하고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나 기업이 국가통제 하에 놓인 사회주의의 몰락은 이미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기업 활력의 저하로 이어질 경우 오히려 수익성 악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처음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경영참여를 배제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으나 노조와 진보성향의 사회단체 반발에 부딪혀 “국민연금은 자본시장법상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임원의 선임·해임과 관련 주주제안 등의 경영참여 주주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한다”는 방안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본격적 경영참여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 등 제반 여건이 구비된 후에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되, 그 전이라도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한 경우에는 시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둔 것이다. 현행법은 임원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의 정지, 정관의 변경, 자본금 변경, 합병·분할·분할합병, 주식 교환·이전, 영업 양수·양도, 자산 처분, 회사 해산 등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를 경영참여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과도한 영향력 행사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향후 법령정비를 거쳐 위탁운용사에 의결권행사를 위임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경영참여가 제한적으로나마 허용되는 ‘기업가치의 훼손’을 누가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는 정해진 바가 없다. 결국 “기업가치 훼손 여부는 기금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해명이다.
이래저래 문제가 많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시행은 원론적 해법이지만 전권을 쥐 다시피한 기금운용위원회를 투자전문가들로 구성하고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다. 특히 자칫 잘못하면 본래 목적인 장기수익률 제고보다 ‘기업경영권 침해’ ‘연금 관치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지배구조 개편 압박 등 기업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독립성을 유지한다 해도 정부·정치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지배구조를 개편해 독립성과 안정성 확보를 위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외풍에도 쉽게 흔들리는 국민연금 지배구조의 한계를 먼저 해결해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 노후자금 635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국내 ‘자본시장의 공룡’임에 틀림없다. 당장 국민연금의 영향권 아래 들어갈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국내기업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276개에 이르며, 지분 10%이상 보유 기업도 96개에 달한다. 지금은 이보다 훨씬 많아졌을 것이라는 게 관계당국의 추정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주식에 투자한 총액도 약 131조5,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코스피, 코스닥 시가총액의 7%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목적은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기금수익률을 높이는 것이지만 ‘연금 관치주의’의 길을 열었다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는 만큼 정부는 국민연금을 ‘기업 길들이기’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을 떨치고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하려는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ifs POST>
< ※ 한국의 스튜어드십 추진경과와 내용 >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0년 영국이 처음 도입했다. 현재까지 네덜란드, 캐나다, 스위스, 이탈리아 등 10여개 국가가 도입해 운용 중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 등이 운용하고 있다. 영국이 처음으로 코드를 도입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주주, 특히 기관투자가의 무관심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기관투자가가 금융회사 경영진의 잘못된 위험 관리를 견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정 배경이다.
우리나라는 금융위원회가 지난 2015년 도입을 목표로 그해 3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을 중심으로 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추진했으나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의 반대로 시행이 늦춰지다가 2016년 12월 19일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인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공표했다.
공개된 제정안은 7개 원칙으로 이뤄져 있는데 기관투자자가 자금 수탁자로서 고객이나 수익자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책임을 이행하면서 의결권 행사의 절차와 기준을 마련해 공개하고 의결권 행사 내역과 이유를 적절한 방식으로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제시한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원칙)은 다음과 같다.
➀ 기관투자자는 고객, 수익자 등 타인 자산을 관리ㆍ운영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명확한 정책을 마련해 공개해야 한다. ➁ 기관투자자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실제 직면하거나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이해상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관해 효과적이고 명확한 정책을 마련하고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➂ 기관투자자는 투자대상회사의 중장기적인 가치를 제고하여 투자자산의 가치를 보존하고 높일 수 있도록 투자대상회사를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➃ 기관투자자는 투자대상회사와의 공감대 형성을 지향하되, 필요한 경우수탁자 책임 이행을 위한 활동 전개 시기와 절차, 방법에 관한 내부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➄ 기관투자자는 충실한 의결권 행사를 위한 지침ㆍ절차ㆍ세부기준을 포함한 의결권 정책을 마련해 공개해야 하며, 의결권 행사의 적정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의결권 행사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사유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➅ 기관투자자는 의결권 행사와 수탁자 책임 이행 활동에 관해 고객과 수익자에게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➆ 기관투자자는 수탁자 책임의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이행을 위해 필요한 역량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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