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대담] 김광두 "경제정의, 일자리 창출없인 안돼…기업들 氣부터 살려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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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추구하는 경제 정책과 관련해 "나무 뿌리가 썩고 있는데 당장 배고프다고 과일만 찾는다"고 평가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그는 "한국 경제에 비전이 안 보이는데, 정부가 몇 달 앞만 보고 정책을 세우면 되겠느냐"고 일갈했다. 김 부의장은 혁신성장이 지지부진한 이유로 국회가 법 개정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탓하는 관료들에게 "정부가 솔직하게 털어놔야 국회도 협조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옆에서 충고하는 게 내 역할"이라며 현실을 직시하는 경제석학의 면모를 보여준 이번 김 부의장 인터뷰는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실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 청와대와 여당은 경제에서도 `정의` 개념을 중시합니다. 지금 우리 경제에서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국민 후생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게 일자리입니다. 서민들이 일자리를 갖지 못하면 경제에 해악이 되는 `양극화` 상황이 더 나빠집니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데 양극화가 완화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따라서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의로운 경제는 궁극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구조와 질서가 구축된 경제입니다. 경제정책도 이에 맞춰 정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저는 이를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경제 구조와 질서를 구축하는 데 유효한 정책 수단들의 조합`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산업경쟁력으로 귀결됩니다. 지금처럼 세계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산업경쟁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일자리가 생기지 않습니다.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경제구조와 그런 구조가 공정하게 돌아갈 수 있는 질서가 잘 배합돼야 경제에서 정의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산업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요?
▷세계 경제가 플랫폼 비즈니스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 사업자가 모든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비즈니스 모델을 짭니다. 소싱(Sourcing)은 글로벌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연구개발(R&D)은 실리콘밸리에서 하고, 원자재는 아일랜드에서 가져오고 하는 식이죠. 이런 글로벌 밸류체인의 관점에서 경쟁력을 봐야 합니다. 한국 경제 주축인 제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데 핵심 밸류를 누가 갖고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최근 트렌드는 공장 제조부문의 부가가치는 낮고 전 단계인 기획과 연구개발, 후 단계인 마케팅의 가치가 더 높습니다. 전후 단계에서 뒤처지면 제조부문이 아무리 잘해도 전체 가치 창출 규모는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쪽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 제조업만으로는 일자리 창출이 어려우니 서비스업을 더 육성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제조업을 과거의 잣대로만 보면 안 됩니다. 디지털기술 발달로 인한 자동화로 제조업 자체에서는 고용이 줄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동화·효율화를 돕는 생산서비스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제조업 대표국가인 독일은 스마트공장을 늘리는 `인더스트리4.0` 계획으로 제조업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일자리가 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에서도 제조업과 생산서비스 비중을 함께 보면 10년간 38% 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 정부는 `혁신성장`으로 일자리 창출에 나서려고 하는데요. 잘되겠습니까?
▷혁신은 결국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입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자`는 분위기가 중요한데 지금 기업들은 너무 위축돼 있습니다. 혁신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기업 내부적으로도 관료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오너 2~3세 밑으로 내려가면서 도전정신이 약화됐고, 구성원들도 위험을 감수하기를 싫어합니다. "해봤어?" 하는 오너 대신 "조심해!" 하는 오너 밑에서는 보신주의만 득세합니다. 능력주의가 혁신의 중요한 패러다임인데, 현재 우리 기업 분위기가 능력주의와 맞지 않습니다. 여전히 규제도 엄청나게 많아 혁신의 속도를 늦추고 있습니다. 핀테크 사업을 해보려면 금융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 부처를 다 돌아야 하고, 이들 부처는 자기들끼리 따로 놉니다. 정부 자체도 플랫폼 정부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홈페이지에 가서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최저임금`을 치면 고용노동부의 모든 정책이 죽 떠야 합니다. 지금은 부처가 다르면 소통이 안 됩니다. 혁신 능력의 공급요소인 인재 육성에도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인공지능(AI)만 해도 미국과 중국엔 있는 슈퍼탤런트(슈퍼인재)가 한국엔 한 명도 없습니다. 선수가 없는데 어떻게 메달을 따겠습니까.
― 기업들이 혁신적 인재를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기업들이 하는 직무훈련 교육을 아주 심화시키는 겁니다. 일주일~한 달짜리 교육을 6개월~1년으로 확 늘리는 겁니다. 새로운 기술 변화에 적응한 직원들의 업무능력이 높아지고, 종업원 충성도도 함께 올라가 기업에는 이득입니다. 또 이들이 교육을 받으러 간 사이 필요한 인력을 더 뽑을 수 있습니다. 정부가 이런 쪽에 재정 지원을 하면 윈윈이 될 겁니다. 대표 기업 서너 군데만이라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사회 분위기가 바뀔 것 같습니다.
― 위축된 기업들의 기는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요?
▷한국 대기업들은 대부분 오너 체제라 오너들이 처한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주요 재벌 총수들이 구속되고, 재판 중인 상황에서 기업 분위기가 좋을 리 없지요. 이젠 정부가 "과거 잘못만 고치면 된다"고 확실히 선을 그어줘야 합니다. 대기업을 모두 적대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 대기업 노조 문제도 심각하지 않나요?
▷전체 근로자들 중 10%만 노조로 조직화돼 있는데, 그 10%가 무섭습니다. 생산 현장에서 노조가 갖는 힘이 너무 커서 기업들이 리스크 테이킹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과 프랑스 같은 선진국을 보면 한마디로 쫄딱 망한 후에야 일자리가 소중하다고 정신 차리곤 했습니다. 다양한 방법론이 있겠지만 노조가 대변하지 않는 90%의 비조직화된 근로자들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합니다.
― 공정위가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기업을 위축시키고 있는데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추진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질서를 해치는 행위, 즉 대주주가 자기 이익을 위해 회사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사익편취를 처벌하는 것입니다. 이를 규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공정경제를 잘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옥석은 가려줘야 합니다. 또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획일적인 법 적용을 지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적기에 공급하는 게 중요하거나,기술의 보호가 기업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소재·부품의 경우는 기업이 내재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부분은 좀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 現 경제정책, 나무 뿌리 썩는데 과일만 찾는꼴…근본적 비전 먼저 세워야
― 청와대와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왜 비판을 받고 있다고 보나요?
▷모든 정책은 현실에 무엇인가를 처방하는 약과 같습니다. 크든 작든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이 실현될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집행하면 약의 독성에 따른 부작용이 더 커집니다. 결과적으로는 본래 시도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고용 상황이 나빠지는 건 지난 1년간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기업들의 경쟁력이 지난 5년간 약화된 것이 핵심 원인입니다. 중국에 밀리고, 미국이나 일본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소득층 임금을 올리면 소비가 늘어난다는 좋은 취지의 소득주도성장이 잘 작동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타이밍`입니다. 대기업을 보면 반도체 석유화학 등 일부 기업만 잘나가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물건이 잘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공장 가동률은 70%대 초반까지 떨어졌고, 재고는 늘고 있습니다. 중소·영세기업은 더 상황이 좋지 않아 고용을 줄이는 쪽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약을 투입할 때는 잘 살펴서 투입량과 투입속도를 계량해야 합니다. 지금은 체질이 약화된 몸에 너무 센 처방을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80대 노인에게 20대 젊은이 약을 준 꼴입니다. 약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 그럼에도 청와대와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홍보 문제만을 제기합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높으니 `우리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냉정하게 보면 일자리는 국민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홍보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히 일자리가 나빠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건 왜 고민하지 않습니까.
― 다음달 중순까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폭을 결정해야 합니다. 2020년 1만원 공약을 달성하려면 올해 16.4%에 이어 내년과 후년에도 15.3%씩 올려야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속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1만원 달성의 시점을 당초 예상보다 2년 늦춰 2022년으로 해도 공약은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국민도 수용하지 않을까요.
― 그렇다면 경제를 반전시킬 계기가 있을까요?
▷경제가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습니다. 몇 달 단위로 성과를 내려 해선 안 됩니다. MB정부 때 자원외교니 하며 쓸데없는 짓을 많이 했고, 박근혜정부 때 부동산만 띄운 결과가 지금의 침체입니다.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전을 설정한 뒤 `이 방향으로 가자`고 해야 합니다. 나무 뿌리가 썩고 있는데, 당장 배고프다고 과일만 찾으면 안 됩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며 가야 합니다.
― 대통령이 아무리 혁신성장을 강조해도 국회 협조가 없어 정부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다 얘기하고 협조를 구하면 됩니다. `어렵다`고 다 털어놓고, 정부와 국회가 서로 상의해야 합니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우니 힘을 합하자`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대담 = 정혁훈 매일경제 경제부장 / 정리 = 조시영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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