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의 한국 잠룡 전 상서(前 上書) <8> ‘준비된 개혁’만을 내놓아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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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25년’ 중에 딱 한번 일본경제가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거센 당내 저항을 극복하고 5년 5개월의 총체적 구조개혁으로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한 고이즈미 내각(2001~2006년) 때가 바로 그 때였다.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개혁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장래를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잠룡들에게, 고이즈미가 편지로 전하는 충언을 한번 들어보자. |
<편지 8> ‘준비된 개혁’만을 내놓아라
‘설 익은 개혁’은 금물이다
모든 정책에 특히 개혁에는 때가 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때는 리더가 강한 신념을 가지는 때이고, 다음으로 중요한 때는 그 개혁이 요구되도록 시대적 여건이 무르익은 때이다. 리더의 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결의로 자리잡지 못한, 설익은 정책과제를 그에 대한 논의조차 없는 여건 속에서 불쑥 내밀다가는 자칫 정권의 종말을 재촉하게 된다.
대신, ‘그 때’가 왔다고 판단되면, 한 순간도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개혁 기회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 때까지의 긴 기다림 속에서 무슨 개혁과제를, 누가, 어떻게 결정하고 추진할 지 등 개혁의 내용, 추진방식과 체계 등에 관한 구상과 계획이 마련되어, 리더와 그 주요 브레인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어야 한다. 2005년 국회를 통과한 우정민영화법이 바로 그런 ‘준비된 개혁’이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추후에 있을 것이다.)
정치를 위한 개혁이 아니라 개혁을 위한 정치여야 한다
내가 퇴임한 후 자민당 총리 중에 주요 개혁과제를 아무런 사전준비나 국민적 논의도 없이 불쑥 내밀었던 인물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관저주도로 개혁과제를 밀어붙이는 내 ‘스타일’의 리더십 발휘로 국민의 지지를 올려보겠다는 계산으로 그런 일을 벌였다. 그러나 지지율 상승은 커녕, 그 설익은 ‘관저주도’ 개혁의 좌절로 그들은 내각 지지율 하락과 퇴진을 맞이해야 했다.
아베 총리는 2006년 11월 우정조반 복당(郵政組反 復黨, 우정민영화에 반대하다가 2005년 9월에 탈당하여 그 달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의원을 자민당으로 다시 받아들인 것)으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갑자기 도로특정재원의 일반재원화(고속도로 통행료 수입을 도로 관련 예산에만 쓰게 되어있던 것을 일반 세입으로 삼자는 것)라는 개혁과제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뭔가 결단력 있는 지도자상을 내세우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도로족의 반발을 이겨내지 못하고 유야무야 되어 스타일만 구기고, 우정조반 복당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반전시키지 못해, 2007년 9월에 물러나야만 했다.
후쿠다 총리도 비슷한 정치 행로를 거쳤다. 개혁을 위해 정치를 한 게 아니라 정치를 위해 개혁을 동원한 것이었다. 2007년 가을 몇 개월 동안 오자와의 민주당과의 연정을 꾸몄으나 민주당 당내 반대로 연정시도가 무산되면서 내각지지율이 급락했다. 그 때 그가 들고 나온 것이, ‘세(稅) 및 사회보장 일체개혁’(소비세를 올려 사회보장 지출에 충당하자는 것)이었다. 그 또한 (일본의 재정건전화 등) 뭔가 ‘책임감 있는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제안은 국가 의제는커녕 내각의 의제로도 자리매김 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 후 후쿠다 내각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책임지는 정치가’로 부각되기 위해 아소 총리가 동원한 것은 소비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제안과 ‘우정민영화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는 발언이었다. 이 또한 당내 그리고 야당의 야유 외에는 아무런 본격적인 반응을 불어 일으키지 못해 총리의 리더십이 또 한 차례 크게 손상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세 총리 모두, 주요 개혁과제를 사전에 아무런 준비나 구상이나 추진전략도 없이, 개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기 만회라는 ‘다른 뜻’을 품고 개혁과제 추진에 나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개혁을 위해 정치를 동원한 게 아니라 정치를 위해 개혁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을 뿐이었다. 세 사람 모두 당 안팎으로 무시당하고 총리의 권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물러나고 말았다. 그들은 국가지도자가 언제 뜻을 펴야 하는지, 정책의 타이밍에 대한 판단력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정치도 개혁도 타이밍이다.
<순서>
왜 지금 개혁의 리더십인가?
제 1부 제대로 된 잠룡라면
제 2부 대권을 잡고 나면 개혁의 무대는 이렇게 꾸며라
제 3부 모두를 개혁에 동참시켜라
제 4부 논란이 많은 개혁과제를 택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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