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남북 정상 회담의 민족 통합적 의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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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남북정상 회담의 의미를 만남과 민족통합의 주제어로 정리해 본다.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온 지 3만 여년, 선사(先史)이래 오늘의 이 시간까지 인류사는 전쟁과 평화, 분열과 통합의 변증법적 회류(回流)의 연속이었고, 긴 역사의 시공간 속에서 인간 개개인의 삶은 만남과 헤어짐, 이해와 오해, 갈등과 화합이 교차, 순환하면서 영위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종족과 종족, 집단과 집단, 조직과 조직 간에는 유무형의 폭력과 비폭력, 싸움과 화해, 상극(相剋)과 협력이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반복적으로 전개되어 오고 있다. 인간 개개인의 삶은 마르틴 부버(Martin Buber)가 논한 “너와 나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고, 만남은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에 의하면, 의사소통으로 상호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 하고, 평화를 유지한다.
그러나 때로는 의사소통이 부족하거나 이해관계가 충돌하여 오해와 갈등이 깊어져 적대관계가 되거나 전쟁을 하기도 한다. 지구촌 동쪽에 자리한 한반도의 한민족, 역시 전쟁과 평화,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는 역사를 이어왔다.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인 남북 정상은 마르틴 부버의 “나와 그것”에서 “나와 너”의 관계로 위치 전환하여 지난 4.27 판문점에서 역사적 만남을 가졌다. 두 정상은 1945년 분단 이후 70여 년 동안 겹겹이 쌓이고 쌓인 오해와 갈등을 해소하고, 비핵화 실현을 위한 의미 있는 회담을 가졌다. 이는 세계 평화와 민족 생존, 번영이란 면에서 세계사적, 민족사적 가치를 지니는 일이다.
크게 보아 만남에는 의미 있는 만남과 의미 없는 만남, 두 가지가 있다. 만남의 결과가 좋으면, 의미 있는 만남이고, 만남의 결과가 나쁘거나 만나기 이전 상태보다 관계가 더 악화되면, 의미 없는 만남이라 할 수 있다. 의미 있는 만남과 의미 없는 만남은 네 가지 속성, 즉 미래지향성, 개방성, 효과성, 통합성을 기준으로 평가 할 수 있다.
첫째, 남과 북, 두 정상의 만남이 남과 북의 미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번 만남은 분단 남북의 미래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더 나은 미래, 더 좋은 내일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회동이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종전을 선언해 한반도와 세계 평화의 정착에 기여 할 수 있는 모티브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 할 수 있다.
둘째, 남북정상의 만남이 좋은 만남인 두 번 째 기준은 열림을 의미하는 개방성이다. 우리는 세계사 속에서 닫힌 민족은 패망하고, 열린 민족은 흥함을 보아왔다. 그 동안 개방체제였던 남과 폐쇄체제였던 북이 판문점에서 만나, 열린 자세로 협상하여 더 큰 열린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 것은 진일보한 발전적 변화라 할 수 있다. 폐쇄체제로 세계와의 소통을 스스로 거절하며, 세계로부터 소외 되어있던 북이 비핵화를 전제로 평화와 번영을 수용함은 세계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초석(礎石)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셋째, 만남의 의미는 효과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만남을 통해 북은 체제 안정과 경제 성장을 보장 받고, 남은 전쟁 위협의 제거, 안보 불안 해소, 평화유지 비용 절감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는 회동이었다.
넷째는 통합성이다. 민족통합은 민족 정체성 확립의 큰 기둥이다. 분열과 분단, 상쟁(相爭)과 상극(相剋)은 민족의 원초적 본성에 반하는 고통스런 행위이다. 그래서 이번 회담은 미래지향성, 개방성, 효과성, 통합성이란 네 가지 만남의 속성으로 볼 때, 좋은 만남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좋은 만남이 민족통합이란 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본다. 4.27 남북정상회담은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민족통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민족적 차원에서 근대 역사 140여 년은 분열과 통합의 시간이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140여년의 기간은 주로 한민족이 외세와 외세의 영향력에 의한 저항과 갈등, 내부 분열, 그리고 민족 내부의 주체적 통합 노력의 역사 전개였다고 할 수 있다. 개화기의 개화파와 수구파의 대립,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급진 세력과 온건 세력 간의 대결, 3.1독립운동 이후 1920년대부터의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노선 투쟁, 해방 이후 이념 갈등과 남북 분단은 쓰라린 상처를 남긴 분열의 역사 전개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의 과정에서도 민족 통합에 대한 주체적 노력도 꾸준히 전개되었다. 1907년 도산 안창호 주도로 조직한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애국계몽운동, 1919년 범민족적 비폭력 저항의 3.1독립운동, 1920년대의 상해임시정부의 통일운동과 1923년의 국민대표회의 개최, 1927년 안재홍, 이상재, 신채호 등이 발기한 좌우익 합작의 신간회 활동, 해방 이후 신탁통치 반대 운동과 1948년 백범 김구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 노력, 1972년 분단 이후 최초의 7.4공동 선언, 2000년의 6.15와 2007년의 10.4공동선언 등은 대표적인 민족통합운동이고,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이자, 만남이었다.
이러한 근대 역사 전개 과정과 그 전개 과정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이번 4.27 남북정상회담은 민족통합에 대한 미래지향적이면서 개방적인 효과성이 높은 민족통합운동이라 할 수 있다. 개화기로부터 전개된 민족 분열과 통합의 역사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아래와 같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첫째, 민족통합의 과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대응해야할 과제라는 교훈이다. 민족통합은 긴 호흡으로 꾸준히 준비하고, 추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민족통합은 국제정치의 현실과 외세와의 관계 하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익 우선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현실적 대응이 있어야 한다.
셋째, 민족통합을 위해 민족 내부적으로 자주적이면서 주체적인 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 민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 있는 세력이 민족 내에 자주적으로 구축되지 않으면, 민족통합은 불가능하다.
넷째, 민족통합을 위한 주체 세력은 다수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 국민적 동의를 받지 못하거나 국민적 지지가 약한 세력은 외세에 이용당하거나 소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민족통합을 위해서는 내부 분열과 내부적 갈등이 최소화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계사 속에서 내부 분열로 망하거나 파멸에 이르는 다수의 민족에게서 역사의 가르침을 학습하여야 한다.
이상의 다섯 가지 민족통합의 역사적 지침은 민족통합은 장기적으로 보고,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의 이해하고,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받는 자주적 주체세력이 내부 분열을 최소화 하면서 꾸준히 추진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기에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은 좋은 만남으로 시작한 21세기 민족통합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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