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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北 정상회담 전망과 한국의 안보위기 가능성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06월07일 09시41분
  • 최종수정 2018년06월08일 15시09분

작성자

  • 김태우
  • 前 통일연구원 원장, 前 국방선진화추진위원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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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자리매김한 북한은 한반도의 군사균형을 붕괴시키고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장악했으며 핵능력을 통해 외교적 위상을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다. 2018년 1월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와 ‘한반도 비핵화’ 발언으로 시작된 북한의 평화공세는 일시적이나마 스스로를 세계외교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그 결과 2018년 상반기 동안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 두 차례의 중북 정상회담,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 러시아 외무장관의 북한 방문 등이 숨가쁘게 진행되었고, 6월 12일 미북 정상회담이 대미(大尾)를 장식할 예정이다. 북한의 평화공세는 한국 정부에게 ‘달빛정책(moonshine policy)’을 본격 시동하고 미북 정상회담을 중재하는 계기를 제공했고, 중국은 김 위원장을 베이징으로 초청하여 ‘중북 혈맹관계’를 재확인시켜 주었으며, 빈소국(貧小國) 북한은 초강대국 미국과 협상테이블에서 마주 앉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기만극 가능성’을 우려하는 보수 국민과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남북관계 개선과 미북 정상회담 성사에 주력하면서, 국가안보 위기와 동맹의 와해를 우려하는 보수세력과 북한의 비핵화 약속과 남북관계 개선에 환호하는 진보세력 간의 분열은 더욱 극명해질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일관되게 북한을 대변하는 외교행보를 보임에 따라 미국의 조야에서는 동맹국 한국에 대한 불신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렇듯 북핵 이슈의 부상이 동북아의 안보질서를 요동치게 만들고 한국안보와 한미동맹의 미래를 불확실성 속으로 내몰고 있지만, 6·12 미북 정상회담 이후의 북핵 문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북 정상회담 전망: 가설과 현실

 

  그 동안의 미북 실무접촉과 김영철 통전부장의 트럼프 면담을 통해 미북 간에 덕담들이 오갔고 미국은 CVID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에 대해 ‘CVIG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guarantee)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비핵화 여정은 만만치 않다.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로 가는 여정은 ‘합의, 이행 그리고 검증’이라는 세 개의 산을 넘어야 하는 험로(險路)이며, 현재 미북은 첫 번째 산을 넘고 있는 중이다. 북한의 합의 위배 전력(前歷)과 핵포기를 어렵게 만드는 자체의 ‘체제 딜레마’를 감안할 때, 북한이 CVID에 가까운 비핵화에 합의하더라도, 이행과 검증 단계에서 어떻게 나올 것인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결국은 북한정권이 심중에 들어있는 동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미북 정상회담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우선 핵해결의 당사국인 북한의 동기, 즉 2018년 초반부터 펼치고 있는 평화공세의 동기를 분석해야 하는데, 적어도 두 개의 가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평양정권이 더 이상 제재와 고립을 감당하면서 핵보유를 고수할 수 없음을 깨닫고 확실한 핵포기와 개혁개방을 통해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선의(善意) 가설(goodwill hypothesis)’이며, 다른 하나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통해 이미지를 개선하고 제재와 고립이라는 당면 문제를 해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핵능력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을 한반도로부터 이탈시킴으로써 ‘주체통일’의 여건을 만들려고 할 것이라는 ‘대전략 가설(grand strategy hypothesis)’이다. 현재로서는 어느 쪽이 현실로 드러날지 단언할 수 없다.

 

  또 하나의 핵해결 당사국인 미국에 대해서도 두 개의 가설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지금까지의 지도자들과는 이질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군사력(military power)과 도덕력(moral power)을 모두 중시하면서 동맹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을 무릅쓰는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정통적 가설(othodox liberalism hypothesis)’이며, 다른 하나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제일주의, 경제 민족주의, 동맹정책에 대한 상업주의적 접근 등과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움, 경솔함, 국내정치적 입지 등 개인적 변수들이 대북협상에 그대로 투영될 것이라는 ‘수정주의적 가설(revisionist commercialism hypothesis)’이다. 

 

  평양정권에 대한 ‘선의’ 가설과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정통적’ 가설이 실제상황이라면, 미북 핵협상은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대체로 만족스러운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다. 비핵화의 강도에 있어서 북한이 CVID에 가까운 비핵화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고, 이후 이행 및 검증 단계도 무탈할 수 있다. 평양정권에 대한 ‘대전략’ 가설과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정통적’ 가설이 만난다면,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성공’ 이라는 외교적 수사들이 쏟아지더라도 실제 합의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며, 이후의 핵협상은 결렬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수정주의’ 가설이 현실화되는 경우,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불충분한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경우, 북한은 미국에게 더 많은 반대급부를 요구할 수 있으며, 미국이 그것을 수용할 가능성도 높다. 불충분한 합의의 사례로서는 북핵의 불완전한 폐기 및 일부 핵능력의 은닉, 사실상 북한의 핵능력 일부를 인정하는 느슨한 검정 또는 비핵화 속도등을 들 수 있으며, 한국의 안보틀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평화협정, 주한미군 감축, 연합훈련 중단 또는 축소 등을 미국이 수용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당연히, 트럼프 행정부의 ‘수정주의’ 가설과 북한의 ‘대전략’ 가설이 합쳐져서 현실로 드러나는 것이 한국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이 경우 북한이 ‘체제보장’의 명분으로 요구하는 평화협정, 미군철수, 연합훈련 중단 등은 ‘미국의 한반도 이탈’과 ‘주체통일 여건 조성’이라는 마스트플랜에 따른 것이 된다. 이런 가능성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할 수 없다. 

 

  플랜 B의 부재 

 

  북한이 마음먹기에 따라 그리고 한국이 하기에 따라, 북한의 평화공세와 비핵화 협상은 한국에게 기회이자 도전이 될 수 있다. 평양정권의 선의와 비핵화 용단이 역시 선의에 바탕을 둔 문재인 정부의 달빛정책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면, 남북은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평화를 향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이 북한이 펼친 또 한번의 기만극에 속고 이용당한 결과 안보와 동맹을 모두 상실하는 위기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달빛정책이 후일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해 정부가 보여준 최대의 문제점은 ‘안보원칙 미준수와 그에 따른 플랜 B의 부재’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의 ‘선의 가설’에만 근거하여 평양정권의 입장을 대변·두둔해왔으며, ‘대전략 가설’의 가능성을 외면한 채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안보원칙을 준수하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정부는 축소지향적 국방개혁, 국정원 대공기능 무력화, 전작권 조기전환, 탈원전 등을 표방하면서 오히려 스스로 국방역량을 약화시키고 플랜 B를 포기하는 행보를 보여왔으며, 북한의 비핵화가 이행은커녕 합의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시점에서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와 변화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논의되어야 할 평화협정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고있다.

 

  미북 대화를 주선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 일변도의 자세를 보임으로써 미국에서 ‘남북공조 대 미국’이라는 구도로 보는 시각이 부상하게 했으며, ‘미북 정상회담’ 대신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동맹국인 미국보다 동맹틀에서 공동의 적으로 간주되는 북한을 더 중시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유사사태 발생시 군사적 도움을 제공할 유일한 국가라는 점에서 본다면, ‘안보원칙 준수와 플랜 B 병행’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남북상생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시도가 어떤 정부 하에서든 추구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남북 화해협력 시도 그 자체는 비판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대전략 가설’ , 즉 북한이 또 한번의 기만극을 펼치고 있을 가능성도 함께 염두에 둔다면, 문재인 정부는 남북대화 노력과 함께 병행하여 안보원칙도 준수하고 있어야 마땅하다. 

 

  작은 위기와 큰 위기

 

  평양정권의 ‘대전략’ 가설이 실제상황인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현재의 기조를 계속한다면, 한국의 안보는 미북 정상회담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역설적이지만 남·북·미가 ‘회담 성공’을 자축하는 상황에서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미북 핵협상이 난항 속에 좌초하는 경우 한반도는 대결국면으로 복귀할 수 있고 북한의 도발과 긴장고조라는 위기를 맞이할 수 있음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위기는 국민적 단합을 가져오며, 독자역량과 동맹역량을 통해 대처방안을 강구해 나갈 수 있다. 북한정권이 심중에 ‘대전략’을 품고 있는 가운데 미북 대화가 ‘성공’으로 마감되는 경우 안보위기는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생각이 짧은 사람들은 ‘평화의 환상’에 빠져 평화협정 촉구, 연합훈련 중단 또는 축소, 미군철수 또는 감축, 전작권 전환 및 연합사 해체, 동맹해체,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외칠 것이고, 자유민주주의적 질서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기름을 부을 것이며, 군론은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수정주의 가설’과 합쳐진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위기가 될 것이다. 북한정권은 남쪽에서 자생적으로 주체통일의 여건이 형성되는 것을 즐기면서 시기를 가늠하게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생사(生死)의 기로를 향해 다가갈 것이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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