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발 ELS 폭탄이 터지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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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세계 주식 시장이 요동 치고 있다, 지난 주말 반등을 보이기도 했지만, 실상 초유의 단기 동반 폭락 장세를 연출 했다. 작년 말 대비 1월 20일 현재 미국의 다우지수와 영국 FTSE는 10%, 일본의 니케이는 16%의 하락을 보였고, 우리나라 주가지수도 6.3% 하락했다. 특히 미국 다우지수 하락에는 홍콩의 H지수(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 폭락이 저유가와 미국 연준 금리 인상 외에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7%대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뉴스에 중국 통화의 약세에 배팅하는 환투기 세력이 몰려들었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공격이 여의치 않자, 대신 홍콩 통화를 겨냥 했다. 홍콩달러를 막대하게 빌려 팔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대차 수요가 커지니 홍콩달러 이자율이 대폭 올랐고, 미국달러에 페그(peg) 되어 있는 홍콩달러마저도 분리되어 절하되는 양상을 보였다. 중국경제 침체, 통화 불안, 이자율 급등이 홍콩 주가를 끌어 내리기 시작했고, 여러 지지선을 뚫자 더 가속도를 붙이며 폭락 한 것이다. 그런데 이웃 금융시장인 홍콩 증시의 폭락이 우리 금융 시장에 엄청난 우려를 안겨 주고 있는 것은 왜 일까?
‘국민 재테크’라 불리던 ELS가 한국 금융시장의 시한폭탄으로
사상 최저의 저금리 상태가 지속 되자 초과 수익을 얻고자 하는 투자 수요는 급증 했고, 각 금융사들은 시장 초과 수익을 줄 수 있는 투자상품의 개발과 판매에 열을 올렸다. 2003년 주식시세 상승분의 일부를 포기하는 대신 원금의 보장을 받는 신종 투자 상품으로 선을 보인 ELS(주가연계증권)가 자리를 잡아나가자, 2005년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원유, 금, 은 같은 실물뿐 아니라 환율, 금리 등 다양한 기초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DLS까지 일반인에게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고위험 고수익인 파생상품 시장의 주요 고객은 어디까지나 투자 여력이 상당한 자산 계층이어야 했기에 당시 투자 진입 장벽은 '500만원 이상'으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주류는 '100만원 이상'이다. 그야말로 ‘국민 재테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파생결합증권 시장은 201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성장을 보이게 된다. 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불과 5년 사이 5배의 증가를 해서 총 설정액이 2015년 말 98조4천억 원에 달해, 이달 20일 현재 공·사모 국내 주식형 펀드의 설정액 합계가 80조9천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ELS가 주축인 파생결합증권 시장이 오히려 전통적인 주식형 펀드 설정 총액을 넘어서는 기현상이 만들어 지고 있다. 한국 특유의 쏠림 현상이 여기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이런 파생결합 상품 중 상당 부분이 투자자들이 초과 투자수익의 반대급부로 각종 가격 리스크를 떠안았고, 유가 등 각종 자원 가격의 폭락과 해외 증시의 폭락이 가름할 수 없는 수준의 투자 손실을 투자자에게 가져다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H지수 연계 ELS의 투자 손실 가능성은 생각 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발행 잔액은 현재 38조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21일 8,000선 밑으로 내려가면서 2조 원어치가 한번만 터치해도 원금 손실을 가져오는 소위 녹인(Knock-in)구간에 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만일 7,000선을 뚫고 내려가면 그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감독 당국은 만기가 2년여 남아서 아직 손실이 확정된 것이 아니며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보니 증권사들 중 극히 일부만 우려되고 대개는 영업용 순자본비율(NCR)이 건전해 크게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이야기 했다.
물론 감독 당국의 입장에서는 시장의 안정과 투자자들의 동요를 막는 것이 중요하므로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 또한 염두에 두고 우발적 상황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먼저 녹인을 당한 포지션은 이미 손실의 확정은 아니나 평가손은 나있는 상태란 점을 유의해야 한다. 요즈음 이런 류의 ELS를 가진 투자자가 환매를 문의하면 적어도 30~40%의 원금 손실을 감수하라는 말을 듣는다. 서둘러 환매 하지 말고 앞으로 2년여 시간이 있으니 기다려 보라고 한다. 일견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주식이나 채권이 30~40% 손실 상태인 사람에게 “기다려 보라, 언젠가 올라 갈 때가 있지 않겠는가” 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구나 ELS는 주식처럼 중간에 매매를 자유롭게 할 수 도 없고 어찌 보면 만기 딱 한 순간에 결정지어지기 때문에 주식투자 평가손 보다 훨씬 실(實)손실액을 줄이기 까다롭다.
더구나 시장은 예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만일 H 지수가 더 하락하기 시작하면 헷지(hedge)하려는 수요가 몰려 하락 속도나 폭이 커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현재 40조 원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헷지 물량은 비슷한 포지션에서 구축됐기에 다 같은 방향이다. 이것은 불이 나면 몇 안 되는 비상구로 모두 탈출 하려 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이다. S&P나 유로스톡스는 시장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헷지 물량이 대량으로 나와도 소화가 가능하지만 H지수는 그렇지 못하다. “시장 급락은 ELS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동시 증권사가 산 옵션의 가치까지 동반 하락시키는 연쇄 효과를 불러오고, 이에 따라 옵션 매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돼 유동성이 감소하게 되고 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투기세력들이 이러한 시장의 약점을 파고 들 가능성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장의 흐름이 그들에게 유리해지면 거침없이 공격해 들어 올 수 있다. 소로스 펀드 하나가 영국 중앙은행의 손을 들게 하지 않았던가?
만일 큰 손실이 나게 되면 누구의 책임인가?
과거 국내 3개 투신사의 몰락, 저축은행 줄 도산과 동양그룹 CP사태, 그 원인이 똑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좀 더 높은 금리나 수익률을 쫓는 투자자들이 그들의 투자 손실을 정부 당국의 책임으로 몰아가며 보상을 요구해 거리로 나섰다. 키코(KI-KO)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감독 당국을 운동 경기의 레프리가 아닌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으로 생각한다는 지적이 있다. 즉 룰을 만들고 그 룰을 어기면 제재(制裁)하는 심판 역할이 아닌 무엇이든 등교 후 아이들에게 생기는 일은 다 책임져야 하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같이 여긴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금융이 뒤쳐져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규제 과다를 빼 놓지 않는다. 그런데 규제 완화를 해서 문제가 생기면 모두 당국 탓으로 몰아간다. 어떤 공무원이 규제 완화에 앞장서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생긴 이후에나 당국이 나선다면 그 또한 책임 회피이다. “국보 1호 남대문이 불이 날 것 같을 때 옷 벗을 각오를 하고 기왓장을 뜯고 들어가 불을 끄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진정한 공무원이 아닌가?” 라고 일갈(一喝)을 했던 어느 전직 공무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수입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나 세월호 사태에서 보듯 법보다 정서가 우위에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나라이다. 금융에도 이런 정서가 앞서면 금융 선진화는 공염불이다. 금융사가 불완전 판매를 했거나 규정을 위반 했다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고, 투자자가 초과 수익을 위해 리스크를 졌다면 손실을 의당 감내해야 한다. 감독 당국은 투명한 절차와 방법으로 감독하면 된다. 그리고 제발 국회는 윽박지르기 청문회 고만하고 주워진 입법권과 감사권을 통해 감독 당국이 담임선생님이 아닌 레프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ELS 문제로 한국의 파생 상품 분야와 금융 투자업의 시계가 거꾸로 가지 않았으면 한다.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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