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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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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3월11일 20시5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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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규제완화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어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얼마 전 유승민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언급한 내용이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 활력의 회복을 위해 규제개혁 작업에 진력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유승민 원내대표의 발언은 듣기에 따라 여러 가지의 해석이 가능한 뉘앙스를 남겼다. 언론에서는 ‘규제는 암덩어리’, ‘규제 단두대’라는 수사까지 써가며 강력하게 추진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여당의 원내대표가 사실상 반기를 든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앞으로 규제개혁을 둘러싼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물론 언뜻 보면 그런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적어도 표현상으로는 그러하다. 그러나 유승민 원내대표는 정치인이기에 앞서 경제학자이다. 그가 경제정책에 대해 언급한 내용의 핵심을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발언의 배경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면 당청 간 이견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경제정책의 측면에서 보면 매우 함축적인 내용이 담겨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규제개혁을 둘러싼 성찰의 단초를 제시한 점에서 보면 그러하다는 뜻이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규제를 반으로 줄이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개혁에 나섰다. 규제를 반으로 줄이라는 대통령의 의지는 역설적으로 쓸데없는 규제가 많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15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규제개혁은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자리 잡은 채, 규제개혁위원회는 풀가동되고 있다. 규제개혁의 수요가 여전하다는 것은 규제의 속성상 규제개혁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작업임을 시사한 것이다. 아마 정부가 존재하는 한 그렇다고 보는 게 옳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하여 규제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인사들은 규제를 ‘손톱 밑 가시’로 비유하고 규제개혁에 대한 미온적 태도를 죄악시한다. 심지어 규제를 암덩어리에 비유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규제자들인 당국자의 입장에 보면 규제는 그들의 신념이자, 정책의 확신에서 비롯된 업무의 영역이다. 정책을 구현하는 유효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규제개혁은 이 같은 정부와 정부당국자의 인식 및 속성과의 일종의 투쟁 과정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존재하는 한 규제개혁은 끝나지 않을 작업이라고 보는 이유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보면, MB정부 시절 운영되었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같은 임시기구에서 진행했던 이벤트성 행사보다는 시스템적 접근이 규제개혁에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규제개혁을 위해 상설기구로 설치된 규제개혁위원회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여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게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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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제개혁은 역대 정부가 강조해 왔지만, 결국은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을 정도로 어려운 과제다. 이 역시 규제개혁이 한 정부만의 과제가 아니므로 일정한 원칙 하에서 시스템적 접근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정부가 생산하는 규제의 품질이 곧 정부의 품질이고, 대통령책임제 하에서는 임기 중 생산된 품질이 곧 정권의 품질이라는 생각으로 규제자인 정부가 규제에 대한 마음가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기존 규제에 대한 개혁 작업은 지난한 과제다. 그래서 규제의 품질관리는 만들 때에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만들어진 규제는 개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은 가장 돈 안들이고 경제를 살리는 지름길로 인식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규제개혁에 따르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경우도 있는 것이다. 기존 규제를 추계하는 비용뿐만 아니라, 규제완화에 따른 보완 시책에도 많은 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월호 사태에서 보면 여객선의 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규제완화한 뒤, 이에 따라 지켜져야 하는 다른 보완규정들의 설정과 집행에 소홀했던 때문에 참극이 발생하고 말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정부가 규제개혁을 독려하는 과정에서 강조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의 도입도 비용이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네거티브 시스템을 채택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시장진입을 자유롭게 허용하되 시장에서의 사후감독이 철저하다. 우리나라도 네거티브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장감시 기능을 확충하기 위한 상당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철저한 사후규제를 위해 상당한 수준의 행정력을 추가로 뒷받침되어야 하고, 이에 따른 추가비용도 당연히 지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발언은 규제개혁 그 자체가 만병통치는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구축하고 있는 제도와 규제의 대부분은 단일기술, 단일산업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러한 제도와 규제들은 정부의 칸막이행정과 맞물려 그동안 큰 탈 없이 한국산업의 고도화와 한국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해 왔다. 정부의 각 부처마다, 부처 내의 각 부서마다 소관 업무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담당자들이 진력하였고, 나름대로 결실을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철옹성처럼 구축된 정부의 칸막이행정은 기술 및 산업 융합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경제와 사회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로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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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면, 기술융합이 활발해지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에도 각 분야별로 연구개발(R&D) 활동을 지원하면 일종의 규제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과감하게 업종별 또는 분야별로 R&D 자금의 용도를 지정하지 않거나, 업종별, 분야별이라도 융․복합을 전제로 한 과제에 일정 비율의 R&D 지원 자금을 배정하는 정책을 전환해 볼 수 있지 않은가. 

 

  규제개혁은 필요조건일 뿐이지 결코 충분조건이 될 수가 없다. 규제개혁의 노력이 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경제와 사회의 전 분야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긴요하다. 창조경제의 구현과 경제 활력의 회복을 지향하는 규제개혁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업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새로운 규제질서에 적응하면서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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