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위헌성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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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직자의 100만 원 이상의 금품 수수행위를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어떠한 법익도 침해하지 않는 ‘순수한 증여’ 행위까지 처벌하는 위헌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부부 간과 부모 자식 간의 부양도 엄밀히 따지면 공짜가 아니다. 꼭 상대방의 물질적 반대급부가 아니더라도 장래의 부양에 대한 기대나 서로 간의 존경, 애정 등과 같은 정신적 반대급부라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 만족을 반대급부로 하여 행하는 지급은 법률적으로 ‘증여’이지 대가성 있는 급부가 아니다. 미국 판례는 이러한 개념의 증여를 다음과 같이 정의 한다: “애정, 존경, 칭찬, 자선 또는 유사한 심적 충동에 의하여 이루어진 지급액”(payments generated by affection, respect, admiration, charity or like impulses) 등과 같은 “사심 없고 편견 없는 호의에서 받은 금액”(proceeds from a detached and disinterested generosity)을 대가를 받지 않고 지급하는 ‘증여’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이러한 성격의 금품의 수취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부과한다.
그런데, 공무원, 언론인, 교사 등의 신분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진정한 의미의 증여를 받을 권리가 없는가?
이러한 증여와 수증 행위는 어떤 누구의 개인적 법익이나 사회적, 국가적 법익도 침해하지 않는 사인 간의 무상지급으로서 가벌성이 전혀 없다. 예를 들면, 판사의 직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관여하지 않는 복잡한 송사에 휘말린 친척에게 자신의 법률지식을 활용하여 친절하게 법률자문을 해 준 데 대한 사례로 명절에 굴비 한 짝을 선물로 받은 경우 그 선물의 수수는 증여이지 직무의 집행과 관련된 부정한 대가의 수취가 아니다. 또한 교사가 헌신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친 데 대한 대가로 학부모들이 돈을 모아 고급 넥타이 하나를 선물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업무와 관련된 대가성이 있으면 100만 원이 아니라 10만원도 수뢰죄(受賂罪)나 배임수재죄를 구성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진정한 의미의 ‘증여’라면 1천만 원, 1억 원이라도 납세의무를 발생시키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것이다. 100만 원 이상의 금품 수취행위를 일률적으로 처벌한다는 입법의도의 근저에는 그 정도의 금액이면 업무와 관련된 대가성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그 대가성을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범죄의 구성요건은 법률에 명확히 규정되어야 하고, 검사에 의해 입증되어야 함이 대원칙이다. 이에 반해서 구성요건을 숨겨 놓고, 일률적으로 그것이 충족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명백히 이 원칙에 위반된다. “사심 없고 편견 없는 호의에서 받은 금액”으로서의 증여에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업무와 관련된 대가성 있는 급부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급부에 관련된 모든 사실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는 것인데,< 위 미국 판례, 287-288.> 100만원이라는 금액을 기준으로 그 성격을 업무와 관련된 대가성 있는 급부로 간주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정신을 바탕부터 흔드는 것이다.
2. ‘부정 청탁’을 애매모호한 의미의 불확정 개념을 사용하여 정의함으로써 법집행자나 법 적용자에게 입법권을 위임한 결과가 되어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
근대 민주주의 제도는 3권 분립의 정신에 입각하여 운영되고 있고, 우리 헌법도 당연히 이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법률, 특히 범죄의 구성요건과 그 처벌을 규정하는 형사법은 국회에 의하여 구체적 내용이 규정되어야 하고, 행정부나 사법부에 그 내용의 실질적 보충권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국민 생활의 법적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침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국회는 애매모호한 개념을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규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법집행자인 행정부(검찰)나 법적용자인 법원에게 범죄를 정의하고 그에 대한 형벌을 정할 권한을 위임할 수는 없다.
<참고 United States v. Wiltberger, 5 Wheat. 76, 95 (1820)(...only the legislature may define crimes and fix punishments. Congress can not, through ambiguity, effectively leave that function to the courts - much less to the administrative bureaucracy). >
이 또한 범죄와 형벌을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하여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의 위반이다.
그런데, 김영란법은 부정 청탁의 유형을 정의함에 있어서 곳곳에서 “법령에 위반하여”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공무원, 예를 들면 세무공무원의 조세부과 결정이 적법한지, 위법한지 여부는 대법원의 재판까지 받아 보아야 결론이 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그 전에 조세부과액의 감경을 요구하는 것이 “법령에 위반하는” 행위를 요구하는 것인지 판단할 길이 없다. 또한 김영란법은 외부강의 등에 대한 기준금액 이상의 사례금 수수금지와 관련하여 “사실상의 영향력”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불확정 개념을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규정하는 것은 명백히 입법권을 법집행자나 법 적용자에게 위임하는 것으로서 위헌적 성격이 강하다고 할 것이다.
3. 정당한 청원까지 부정 청탁으로 간주해서 처벌하는 것도 위헌이고, 공무원의 복지부동 현상을 초래할 것이다.
국가는 “특정 지역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평화, 질서, 복지와 같은 삶의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그들이 행하여야 할 일을 일부 사람들(공무원)에게 위임(agency)하거나 그들이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권리의 일부를 공무원에게 신탁(trusteeship)함으로써 형성되어 그 특정 지역과 그 속의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 비개인적(impersonal), 추상적(abstract) 조직체”라고 정의되고 있다. <참고 Kenneth Dyson, The State Tradition in Western Europe, Martin. Oxford(1980), pp.29, 270-271.>
이러한 국가관에 입각하여 국민은 누구나 국가의 권한을 행사하는 공무원에게 그 권한의 적정하고도 정당한 행사를 요구할 ‘청원권’을 가진다(대한민국 헌법 제26조 제1항). 예를 들면, 세법 해석에 어긋나게 세금을 과다하게 매기려는 공무원에게 시정을 요구하고, 일조권을 현저히 침해하는 건축물의 건축허가를 해 주려는 공무원에게 시정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김영란법은 이러한 정당한 청원에 대비되는 ‘부정 청탁’ 행위를 열거하면서 이를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공무원에게 요구하는 행위가 ‘법령에 위반되는’ 것인지 여부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그 행위의 상대방인 국민의 입장에서 그 행위가 위법한 것으로 보아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부정 청탁일 수는 없다. 어떤 세금부과 처분이 세법에 위반되는지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세법을 확장 해석하여 세금을 매기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는 행위나 어떤 건축허가가 개인의 일조권을 현저히 침해하여 위법한 것으로 인정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일조권을 침해하는 건축허가를 내 주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공무원의 정당한 권한의 행사를 요구하는 것이지, 위법한 행위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에게 ‘법령에 위반되는’ 행위를 요구하는 것인지 여부가 불분명하고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적법한 행위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까지 싸잡아 부정 청탁으로 의율(擬律)하여 처벌하는 것은 국민의 청원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각종 행정행위를 하는 곳곳에 청원의 절차가 미비한 상황에서, 그리고 공무원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현실에서 법에 규정된 절차 외의 방식으로 적법한 권한의 행사를 요구하였다고 하여 ‘청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공무원의 권한 행사의 위법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무원에게 위법한 행위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까지 부정 청탁으로 의율하여 처벌하게 되면, 공직자들은 ‘부정 청탁’임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직무집행의 적법성 여부를 좀처럼 되돌아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이는 국민들을 더욱 답답하고 억울한 상황에 처하게 할 것이다.
4. 배우자의 금품 수수행위에 대해 공직자인 상대 배우자에게 신고의무를 지우고, 이를 게을리 한 경우 처벌하는 것은 연좌제 금지의 헌법조항에 위반되고, 우리 사회의 최소 구성요소인 가정의 파괴를 초래하는 행위이다.
김영란법은 공직자로 하여금 자신의 배우자가 수수 금지 금품 등을 받은 사실을 안 경우에는 소속기관장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있고, 이를 게을리 하면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처벌규정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 한다”라는 연좌제 금지를 선언한 헌법조항에 위반되고(헌법 제13조 제1항), 동시에 우리 형사법의 근저에 깔려 있는 ‘가정 보호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우리 형법상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의 절도 행위는 처벌하지 않고(형법 제344조, 제328조), 또한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범인은닉의 죄를 범한 때에도 처벌하지 않는다(형법 제151조 제2항). 모두 국가의 구성요소인 가정을 보호하고, 기대 불가능한 행위를 요구할 수 없다는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사이인 배우자에 대해서 상대 배우자의 행위, 그것도 범죄 여부가 애매모호한 행위를 신고하라고 요구하고, 게을리한 경우 처벌하는 것은 이러한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5. 적용대상자에 사인(私人)을 포함하는 것은 사적자치의 헌법 정신에 위반된다
국민이 위임하거나 위탁한 권한을 행사하는 자는 그 위임이나 위탁의 본지에서 벗어나 그 권한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직자의 독직범죄 처벌의 입법정신이다. 그런데, 김영란법이 처벌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언론 종사자와 사립학교 교원은 그 직무에 어느 정도 공공성을 가진 기관이긴 하지만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거나 위탁받은 것이 아니라, 그를 고용한 주체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았을 뿐이다. 권한을 위임받은 자는 그 위임한 자에 대해 충실의무를 지는 것이고, 그 외의 자가 관여할 권리는 없다고 할 것이다. 국가가 아닌 사인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자의 독직, 부패 행위에 대해서는 배임죄나 배임수재죄 등의 처벌제도가 이미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에 관여하는 것은 사적자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서 민주국가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6. 결론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에 가벌성이 있는 부정부패 행위가 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일소하여 우리 사회를 투명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후손들에게 자긍심 넘치는 나라를 물려주어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이러한 입법취지를 고려하더라도, 오히려 국민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위축시키고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인 3권 분립 정신을 흔드는 형식의 입법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김영란법은 그 입법취지를 살리면서도 위헌적 요소를 제거하여 국민에게 법적안정성을 주고, 나아가 국민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정비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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