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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의 한국 잠룡 전 상서(前 上書) <18> 개혁저항의 둥지를 제거하라: 구태(舊態)정치의 적폐를 해소하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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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5월04일 17시39분

작성자

  • 김정수
  • 무역협회 경제통상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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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25년’ 중에 딱 한번 일본경제가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거센 당내 저항을 극복하고 5년 5개월의 총체적 구조개혁으로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한 고이즈미 내각(2001~2006년) 때가 바로 그 때였다.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개혁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장래를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잠룡들에게, 고이즈미가 편지로 전하는 충언을 한번 들어보자.제 3부 모두를 개혁에 동참 시켜라​

 

 

 

거당(擧黨)체제에 연연하지 말라. 당내 갈등이 있더라도 그것이 개혁을 둘러싼 갈등이라면 당내 분란을 즐겨라. 그것을 당의 개혁을 촉진하는 계기로 삼아라. 당내 갈등은 당에서 구태 정치를 일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어느 조직이든 기득권은 변혁을 원치 않는다. 환골탈태는 더 더구나 어불성설이다. 그 변혁이 그동안 조직이 안주해 온 그들의 권력 기반을 흔들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서면서 ‘자민당이 변하지 않으면 자민당을 부순다’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자민당 기득권 세력이 좋아할 리 만무였다. 그들은 ‘내각 흔들기’로 그들의 뒤틀린 심사를 드러냈다.

 

내 내각 흔들기는 집권 초기부터 줄곧 있어왔다. 그것은, 불황 속의 긴축기조와 구조개혁, 금융경색 속의 부실채권정리, 공기업개혁 등 내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에 대한 반발과 비판으로부터 시작해 개각요구 그리고 내각불신임 투표 위협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획책되었다. 그 모든 것은 내 내각의 정책기조를 개혁으로부터 경기부양 등으로 전환하는 것, 자민당 개혁으로부터 파벌이 주도하는 구태의 정치체제로 회귀하는 것을 겨냥하여, 파벌들 간에 내밀히 도모되거나 또는 원로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거론하곤 했다.

 

2001년 4월 집권 후 3개월 뒤 참의원 선거 때였다. ‘고이즈미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내가 진두 지휘한 그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승했다. 상식적으로는 내각 흔들기나 내각 길들이기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각이 들어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90년대 중반 이후 죽 이어온 참의원 선거에서의 패배를 승리로 반전 시켰을 뿐 아니라, 국민들이 ‘고이즈미 개혁’에 대한 지지를 명확히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내각 지지의 안정이 오히려 자민당 기득세력으로 하여금 ‘안심하고’ 내각 흔들기에 나서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내 내각 흔들기는 개각을 이유로 발동을 걸었다. 中曽根康弘 나카소네 등 당 원로들이 개각으로 자민당의 분위기를 일신해야 한다고 나선 것이었다. 거기에는 네 가지 명분이 있었다. 

 

첫째, 힘 있는 정치인을 내각으로 영입해야 정부 정책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내 기반이 취약하고 거의 모든 것에 당내 주류와 충돌하는 ‘고이즈미 체제’로는 주요 현안이나 정책을 하나도 해결할 수 없으니, (파벌 영수 등) 영향력 있는 인사를 내각에 들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둘째는, 4월에 첫 내각을 꾸밀 때 파벌의 의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개각으로 뒤늦게 나마 파벌들을 구슬려 파벌들의 적극적 참여로 자민당과 내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연립내각 파트너의 인사적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당 파트너 정당으로부터 국토교통대신, 후생노동대신 두 사람이 입각했지만 몇 달 되었으니 이제 다른 인사를 대신 자리에 앉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개각을 하면서, 외무성 안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다나카 田中眞紀子 외상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명분이었을 뿐, 누가 보더라도 개각 권유가 파벌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고이즈미 흔들기’ 내지 ‘내각 길들이기’의 일환이었음은 분명했다. 그런 요구에 밀리기 시작하면 파벌의 내각 흔들기는 내가 물러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 불 보듯 했다. 

 

저항세력의 개각 요구의 저의가 무엇이든, 나는 개각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나의 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선거를 통해 확인하였고, 그 개혁을 추진하기에 적합한 인물로 내각을 구성하였을 뿐 아니라, 개혁을 위한 관저주도 체제가 이제 막 출범한 터였다. 수구파들이 원하는 개각으로 과거처럼 파벌 균형 식 내각 인사로는 ‘성역 없는 구조개혁’은 물 건너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차였기에 더구나 개각은 있을 수 없었다. 

 

나카소네는 자기가 ‘큰 정치인’으로서 (개각을) 조언한 것을 나에게 무시당해 체면에 큰 손상을 입었다. 그는 급기야 내 내각을 ‘쇼윈도 내각’이라고 힐난하기에 이르렀다. 겉으로만 그럴 듯 했지 실제로는 ‘좋은 물건이 없다’는 말까지 했다. 내 내각에 실물경제를 모르거나(다케나카 竹中平蔵 경제재정담당대신), 역부족이거나(이시하라 石原伸晃 규제개혁담당대신), 능력부족(다나카 田中眞紀子 외무대신)인 인물뿐이라는 얘기였다. 파벌들이 좌지우지 하는 자민당을 부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고 국민의 지지로 집권한 내가 그런 말에 흔들릴 수는 없었다.

 

당시 나는 당내 원로 정치인을 포함해 정치가 입네 하는 인물들을 구조개혁 추진에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자민당을 부순다’고 되뇌었던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내각과 당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구조개혁에 나서기 위해서는 그들 구태정치인들이 물러나야 하는 것이었다. 

 

그 기회는 2003년 ‘메니페스토 총선’에 왔다. 나는 그 선거를 ‘젊은 자민당의 선거’로 치르기로 작심하고 있었다. 10월 23일 오전 9시. 85세인 나카소네의 사무실을 찾아간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번에 용퇴를 해주시기 바란다. 은퇴를 하더라도 일할 곳은 많다. 영향력도 남을 것이다. 협력을 바란다’고 정계은퇴를 요청했다. 그는 ‘결코 승복할 수 없다. 정치가를 그만 두는 것은 할 수 없다. (나의) 비례구 종신 1위는 당의 공약 아니냐?’며 일언지하에 내 요청을 거부했다. 나카소네가 출마해 온 비례구의 자민당 공천 후보 6명 리스트에는 나카소네의 이름은 이미 빠져있었다. 

 

내가 사무실을 떠난 후 분노에 찬 나카소네가 기자회견을 열어 ‘총리 총재를 지낸 사람에게 갑자기 폭탄을 던지는 것 같다. 이런 예의 없는 짓은 없다.’면서 ‘노인은 필요 없다는 느낌을 갖게 하면, 전국의 노인의 반감을 산다’며 자신의 강제적 퇴진으로 총선에 역풍이 불 것이라고 저주인지 우려인지 모를 소리를 쏟아냈다.

 

같은 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요청하러 84세의 미야자와 宮沢喜一 전 총리를 방문했다. 그에게 용퇴를 권한 것은 그 때가 두 번째였다. 93년 7월 총선 패배 후 당시 총리이던 미야자와 씨에게 우정대신인 내가 공개적으로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그 때 그는 별 말 없이 깨끗하게 물러남으로써 깔끔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10년 뒤에도 그는 깔끔한 모습 그대로였다. 나카소네와는 대조적으로 나의 요청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사퇴를 권하는 나의 말을 끊고 ‘모처럼 오신 총재 총리에게 창피를 주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그 후에도 나는 종종 공개적으로 정치적 비정함을 드러내곤 했다. 2005년 우정해산 총선 때였다. 우정민영화에 반대하는 의원들(우정조반 郵政組反 우정민영화에 반기를 든 그룹)에게 후보공천을 해 주지 않았다. 그러자, 이들은 탈당을 하거나 새 정당을 창당하여 우정민영화를 핵심 공약으로 삼고 있던 자민당과 각을 세웠다. 나는 우정반대파가 입후보한 지역구마다 우정민영화를 지지하는 후보들(언론은 이들을 ‘자객후보’로 불렸다)을 내세워 우정반대파의 낙선을 도모했다. 그 자객후보 중 당선된 인물들은 총선 직후 구성된 중의원에서 수많은 고이즈미 개혁 법안들이 압도적 지지로 국회를 통과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ifs POST>

 

 <순서>

 

왜 지금 개혁의 리더십인가?

제 1부 제대로 된 잠룡라면

제 2부 대권을 잡고 나면  개혁의 무대는 이렇게 꾸며라

제 3부 모두를 개혁에 동참시켜라

제 4부 논란이 많은 개혁과제를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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