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굴욕,보수의 품격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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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판에 지각변동이 시작되고 있다.대세론이 무너지고 양강축이 솟아오르나 싶더니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조정국면으로 내려앉았다. 팽팽하던 판세에 조금씩 틈이 벌어지고 있다.틈새를 넓히려는 또 좁히려는 수 싸움이 치열해 졌다. TV토론이 회를 거듭하면서 후보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유권자의 결심은 조금만 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유보된 상태다. 선거구호들이 표심을 부른다. 막판 네가티브전이 이브를 유혹한 뱀처럼 유권자의 판단을 시험하고 있다. 이젠 하루하루가 치명적인 승부의 시간이다.
유권자들은 어느 대선보다 혼란스럽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대통령 탄핵이후 이젠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고자 하는데 시간이 별로 없다. 고뇌가 가장 큰 쪽은 보수층들이다. 자신 있게 표를 줄 나의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사표(死票)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내 마음 갈 곳을 잃었다. 어제는 이 후보였다가 오늘은 저 후보로, 내일은 또 어느 후보로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 최적의 후보를 찾는 보수유권자들의 이 같은 심리적 요동은 이미 여론조사에서 보듯 판을 뒤흔들고 있다. 나라 잃고 흩어진 디아스포라처럼 새로운 땅을 찾아 움직이는 노마드처럼 보수층은 지역과 이념의 전통적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선거 구도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스윙 보터, 캐스팅 보터란 이름이 보수에게 붙여지고 있다. 선거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보수의 텃밭 티케이(TK)가 붕괴되고 있다. 역대 모든 선거에서 보수후보에 몰표를 줬던 대구경북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맥을 못 추고 있다. 두 후보 지지율 합이 겨우 10%안팎으로 지리멸렬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새로운 영주가 됐다. 그 아래 부산.울산.경남 피케이(PK)지역에선 문재인 후보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영남은 문(文)과 안(安) 두 후보가 양분한 야당판이 됐다. 보수의 굴욕이다. 길 잃은 보수들이 대통령이 될 사람을 찾아서 그래도 우리 편으로 보는 후보를 찾아서 ‘중도로, 진보로’ 정치적 대 이동을 감행하고 있다. 호남지역 또한 1인1당 독점이 무너진 것도 전례 없는 일이다. 야권 지지층이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를 모두 끌어안고 있다.
이렇게 지각판을 완전히 바꾼 19대 대선은 사상 최초로 영호남 지역 대결과 몰표를 몰아낼 수 있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모두가 외쳤지만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선거혁명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보수의 전략적 선택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지각변동이다.
그 시작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다. 이 여파로 보수정당은 갈라졌고 궤멸에 가까운 몰락 속에 보수층은 길을 잃었다. 보수유권자들은 그래도 명맥이나마 이어가자고 유전(流轉)을 시작했다. 반기문-황교안-안희정으로, 그리고 지금은 안철수 쪽으로 이동 중이다. 차악(次惡)이라 생각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그러나 배신을 싫어한다는 보수이기에 호남정당 안철수 후보로의 이동은 죄책감을 동반한다. 그래서 일부는 그래도 홍준표 후보로 되돌아 가야되지 않느냐로 고민 중이다. 한때 문재인 대세론을 삼키며 역전의 기세를 보였던 안철수 대안론이 주춤하고 있는 이유다. 이제 보수 유권자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최선의 후보가 없기에 누구라도 보수의 선택지 안에 들어와 있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과 후보들은 그들의 전선을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산으로 간 집토끼를 불러들이기 위해 사투 중이다. 홍준표 후보는 이를 낙동강전투라 불렀다. 보수가 정권을 뺏기면 모두 낙동강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지역정서에 불을 붙이고 있다. 새로운 보수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동조가 없는 유승민 후보는 더 절박하다. 안보관이 불안한 문재인후보는 대통령자격이 없고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되면 박지원대표가 최순실이 될 거라며 달아나는 보수를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바른정당 내에서는 유승민 사퇴압박이 시작되고 있고 250억 선거자금을 대출한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이 15%에 못 미쳐 대선비용을 보전 받지 못하고 파산할까봐 전전긍긍이다. 굴욕이다. 보수정당과 후보들이 언제 이런 수모를 겪은 적이 있었던가? 선거 때마다 늘 40%안팎을 유지했던 견고한 지지축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보수정당과 후보들은 중도와 진보로 재편된 이 구도, 보수층 유권자가 스스로 일으킨 이 동남풍을 차단할 뾰쪽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은 익숙한 그 수법 <우리가 남이가>의 지역감정 프레임에 보수층을 가두려 하고 있다.
나가려는데 막으려 하니 결국은 무리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첫 TV토론에서부터 최고 수위의 말 폭탄이 난무했다. 종북좌파, 주적, 호남 2중대, 제2의 이정희…. 과연 좌우를 나누려는 이런 프레임으로 보수층은 결집되는 것인가? 이른바 합리적 보수들은 당혹스러울 것이다. 박수치기보다는 모욕당했다고 느낄 보수가 많지 않을까? 품격 또한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로 보기 때문이다. 일찍이 태극기 집회를 통해서, 또 탄핵재판장에서의 변호인들의 일탈을 통해서 극단의 모습으로 비쳐진 것도 상당수의 보수가 중도로 이동한 원인이 됐음을 알아야 한다.
보수의 가치는 흔히 양날개론으로 대변된다. 좌쪽 날개와 짝을 이루는 민주주의의 균형추이며 자유와 정의, 전통과 품위를 소중히 여기는 것, 지킬 것은 지키고(保守)과 고칠 것은 고치는 것(補修)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금은 바꾸기의 무게 추를 선택해야할 시간이다. 보수가 세상을 바꾸는 기회를 맞고 있다. 지역과 이념의 고질적 대결구도와 이별할 시간이다. 이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세대별 대결구도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내느냐이다. 20-40이 문재인후보 지지로 6070은 안철수 후보 쪽으로 뚜렷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지난 대선서 박근혜대통령 승리를 견인했다가 이제는 대거 중도성향으로 이동한 50대의 표심이 승부를 가를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정치는 정말 생물이라더니 5년 전만 해도 2030의 영웅이었던 안철수 후보가 노년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것은 참으로 낮선 현상이다. 최종 변수는 역시 투표장이다. 누가 투표장으로 나가느냐, 어느 후보가 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끄느냐가 승부를 결정한다. 무엇보다 20대의 변신을 주목해야 한다. 꼭 투표장에 가겠다는 참여의지를 조사했더니 20대가 60대와 함께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60~70%대에 머물던 20대가 85%안팎을 기록했다 하니 이 또한 대역전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 시점까지도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비율 또한 전 연령층 최고치를 보이고 있다하니 20대가 최대의 부동층인 셈이다. 결국 헬조선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후보와 정책을 찾는 중일 것이다. 진보의 이념지형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소신주의, 실용주의의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대 대선은 이렇게 가보지 않은 길로의 선택이다. 그러기에 어렵기도하고 의미도 크다. 이 낯선 길로의 지형을 만들어낸 것은 결국 보수다. 보수에게 길을 묻는 선거다. 보수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안철수 후보는 정당이름을 선거 포스터에서 지웠고 문재인 후보는 보수가 싫어하는 적폐청산이란 말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보수는 무너진 게 아니라 구애의 대상이 됐다. 보수의 힘을 제대로 보여줄 때다. 누구를 반대하기 위해 그 힘을 쓴다면 그것이야말로 보수의 굴욕이 될 것이다. 가장 바른 지도자를 선택하는데 써야할 것이다. 그것이 보수의 가치요 품격에 맞는 역할이다.보 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갈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 정치학자 최창집 교수가 말한 대로 ‘반세기 이상 한국사회를 떠받쳐온 이념과 가치체계의 해체가 시작되는 역사적 사건’앞에 보수는 주체적 결정자로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는 역설적으로 19대선의 승자가 될 수 있다. 비록 보수정당의 후보를 당선시키지는 못할지라도 말이다. 유권자뿐만 아니라 보수정당과 보수후보도 정정당당하게 승리를 위해 싸우지만 아름다운 패배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한다. 보수는 죽어야 부활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가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다. 지금은 더 나은 보수를 준비해야할 때다. 와신상담(臥薪嘗膽),복수의 칼을 가는시간이 아니라 보수의 새로운 길을 닦아야 할 때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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