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조작국」은 없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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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사드에 따른 중국 보복,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등에 더하여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4월 위기설이 한층 고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 문제는 정부와 국책은행의 안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고는 있고 또 중국의 사드 보복 문제나 한국은행의 금리 문제도 다소 소강상태에 있는 느낌이지만 지난 3월 초 바덴바덴 재무장관 국제회의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환율조작국 문제는 다시 불거지는 느낌이다.
바덴바덴 회의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재 기준으로 볼 때 환율조작국이 안 된다고 봐야 맞지만 미국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지정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실제로 지정될 경우 임팩트가 어떨지 가정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으며 오래됐지만 과거 지정됐을 때 사례를 보면 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총재 또한 환율조작국 지정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 경제 두 수장의 이러한 환율조작국을 용인하는 듯한 표현은 여러 가지 점에서 적절하지 못하다.
첫째, 국제규범 어디에도 환율조작국(currency manipulator)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위 BHC법이라 불리는 「무역활성화및진작법(Trade Facilitation and Enhancement Act of 2015, 」 제7절 701조에는 ‘일정 요건을 갖춘 주요교역대상국(major trading partners)에 대하여 심층분석보고서(enhanced analysis report)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을 뿐 그 어디에도 ‘환율조작국’이라는 불명예스런 단어는 없다. 따라서 환율조작국 대신에 ‘심층분석대상국’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물론 과거 종합무역법상에서 한두 번 환율조작국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BHC법안으로 해당 조항이 변경되기 이전의 일이므로 사문화되었다고 봐야한다. 1988년 종합무역법의 해당 조항은 이렇게 되어있다 ;
<Section 3004 (b)>
「The Secretary of Treasury shall analyze on an annual basis the exchange rate policies
of foreign countries, in consultation with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and consider whether countries manipulate the rate of exchange between their
currency and the United States dollar
for purposes of preventing effective balance of payments adjustments or
gaining unfair competitive advantage in international trade.
If the Secretary considers that such manipulation is occurring with respect to
countries that (1) have material global current account surpluses; and
(2) have significant bilateral trade surpluses with the United States,
the Secretary of the Treasury shall take action to initiate negotiations
with such foreign countries on an expedited basis,
in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or bilaterally, for the
purpose of ensuring that such countries regularly and promptly
adjust the rate of exchange between their currencies and the
United States dollar to permit effective balance of payments
adjustments and to eliminate the unfair advantage.
따라서 종합무역법에 따르면 환율조작국이란
<목적> 효과적인 국제수지 (자동)조절을 방지하거나 부공정한 경쟁우위를 얻기 위해서
<방법> 자국통화의 미 달러에 대한 환율을 조작하는 나라로 정의되고 있다.
만약 그러한 환율조작을 자행하는 나라로써
(1) 국제무역상 상당한(material) 경상수지흑자를 기록하고 동시에
(2) 의미 깊은(significant) 대미흑자를 기록하는 경우
재무부 장관은 그를 시정하기 위해 신속하게 양자협상을 개시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2015년 제정되고 공표된 「무역활성화 및 진작법(Trade Facilitation and Enhancement Act of 2015」의 해당 조항은 다음과 같다.
<SEC. 701>
(a) 주요교역대상국 보고서(MAJOR TRADING PARTNER REPORT)
(1) 일반사항 : Not later than 180 days after the date of the enactment of this Act,
and not less frequently than once every 180 days thereafter,
the Secretary shall submit to the appropriate committees of Congress
a report on the macroeconomic and currency exchange rate policies
of each country that is a major trading partner of the United States.
(2) 요소(Elements)
(A) 일반사항 : 위(a)(1) 에 포함되어야 할 사항 :
<i> 일반 주요 교역대상국이라 함은;
(I) that country’s bilateral trade balance with the United States;
(II) that country’s current account balance as a percentage of its GDP;
(III) the change in that country’s current account balance as a percentage
of its GDP during the 3-year period preceding
(IV) that country’s foreign exchange reserves as % of its short-term debt;
(V) that country’s foreign exchange reserves as a percentage of its GDP
<ii> 심층분석대상국이라 함은;
(I) a significant bilateral trade surplus with the United States;
(II) a material current account surplus; and
(III) engaged in persistent one-sided intervention in the foreign exchange market.
(B) 심층분석 보고서의 내용 ;
위 (A)<ii>에서 말한 심층분석보고서에는
<i> 외환시장의 발달과정에 대한 약술과 함께 상세한 외환시장개입의 서술,
<ii> 실질실효환율의 전개과정 및 실질저평가의 정도,
<iii> 자본시장 및 무역규제의 변화분석,
<iv> 외환보유액의 변화과정 등을 기술해야 한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2015년 제정된 BHC법에서조차 환율조작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언론은 둘째 치고서라도 한 나라 국가정책 수장들이 ‘심층분석대상국’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어디에도 없는 ‘환율조작국’이라는 용어를 무분별하게 쓰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G20회의 이후 중국 재무장관은 정책적 불확실성과 선진국 일각에서 강화되는 보호무역주의를 우려한다고 했을 뿐 환율조작에 대한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중국의 ‘환율조작’에 혐의에 대한 트럼프의 맹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재무장관 므누친 조차 ‘심층분석 및 평가 중’ 에 있다고 만 말할 뿐 환율조작국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G20회의가 끝난 후 아소 재무상은 “우리는 환율에 관한 G7 및 G20 합의문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하면서 “나는 므누친으로 부터 그 어떤 압력(push back)도 받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오로지 한국의 기재부장관과 한국은행 총재만이 G20회의 직후 환율조작국의 가능성을 부풀려 언급하고 있는 셈이다.
셋째, 규정상 한국은 ‘심층분석대상국’이 되지 않는다. 미국 BHC법에 규정하고 있는 심층분석대상국의 경우 다음 세 가지 요건을 동시에 다 갖추어야 한다. ①대미무역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이어야 하고, ②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3% 이상이어야 하며 ③ 외환시장 순매입 규모가 GDP의 2%(약 300억 달러)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2011년 및 그 이후 6년간 외환보유액 증가폭이 한 번도 연 200억 달러를 넘은 적이 없으므로 ③번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넷째, 만에 하나 미국이 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의 부당성과 불법성을 강하게 반박하기는커녕 기재부 수장이 앞장서서 ‘양자협의’를 미리 예단하고 나아가 ‘양자협의를 통해 빠른 시간에 해제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는 것’이 방안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렇게 지정하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다섯째, 정부와 외환정책당국은 심층분석대상국 지정에 따른 경제 제재조치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 BHC법안에 규정된 제제조치는 대미투자 불허가, 정부조달참여 제한 및 IMF에 대한 압력감시 요청 등으로 겉보기에 따라 영향이 작아 보일 수가 있다.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그들의 제재조치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들은 예컨대 한미FTA재협상 카드와 같은 더 강한 제재조치를 들이밀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니겠는가.
여섯째, 이러한 정책당국의 입장에 편승하여 진행되는 최근의 지나친 원화강세 환율하락에 대해 ‘큰 우려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언급하는 것은 당국 스스로 외환시장의 안정을 크게 무너뜨리는 발언으로써 앞으로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 아닐 수 없다.
환율조작국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고 또 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것 같이 부풀려 해석하며 나아가 지정에 따른 상대방의 제제가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예단하는 정책수장들의 발언은 정말 문제가 있다. 최고 수장으로서의 품격도 떨어뜨리고 동시에 전적으로 미국편에 서는 인상을 주며, 특히 우리의 전략적 위치를 다 들어내 보여주는 가벼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같은 G20회의를 마치고서도 환율조작에 관련된 언급을 일체 입에 담지 않고 오히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비판한 중국과 일체의 압력이 없었다는 일본에 비해 너무나 유감스럽게 대비되는 대목이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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