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채무는 ‘윤활유’인가 ‘연료유’인가?-20대와 60대의 대조적인 금융활동-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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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채무자는?
다중채무자는 3개 이상의 금융기관(대부업체 포함)으로부터 대출을 이용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여러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하였다는 것은 복합적인 의미는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는 차입자의 능력을 과시하는 징표가 될 수 있다. 여러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중채무는 차입자의 재무 상태가 취약하다는 징표일 수도 있다. 소득이나 수입이 불안정하여 여러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변통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금융이 발달한 요즈음에는 다중채무에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다양한 금융서비스의 이용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봉급생활자들은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하는 것이 현실이고 복수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급전을 융통하기도 하는 데다 직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용협동조합 등을 통한 일시적 자금 차입도 용이하다. 게다가 집을 사거나 자동차를 구입할 때뿐만 아니라 가전제품 등을 구입할 때에도 대출이나 할부금융을 이용하게 된다.
그럼에도 가계부채가 초미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다중채무가 부정적 뉘앙스를 지닌 것은 사실이다. 다중 채무 여부가 차입자의 대출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기초로 여겨진다. 금융기관이나 당국에서는 취약 차주를 관리함에 있어서 다중채무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다. 예컨대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하위 30% 이내) 또는 저신용(신용등급 7~10등급)인 차주(借主)를 취약차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가계부채에 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지만 최근 다중채무자 현황에 관한 자료를 입수할 수 있다. 여기서 인용하고자 하는 자료는 NICE평가정보(주)가 작성한 것으로 2012년 말부터 2018년 9월말에 이르기까지 분기별로 다중채무자의 수, 대출금, 이용 금융기관, 연령별, 소득 수준별 분포 등을 담고 있다.
연령별 소득수준별 다중채무 현황을 분석해 보니…
우선 2012년 말과 2018년 9월말 시점을 대상으로 다중채무자의 수, 대출금액, 일인당 대출금 등의 변화를 소득수준별 연령별로 계산해보았다. 이 결과를 나타낸 것이 다음 그림이다. 세로축은 변화율을 나타낸다. 각 그림의 세로축은 동일하게 설정하였다. 가로 축은 소득 수준을 표시하며 맨 끝은 합계(혹은 평균)을 나타낸다. 다중채무자의 수와 대출금은 그 연령대에서 금융(대출) 활동이 얼마만큼 활발한지 여부를 나타내는 지표로 볼 수 있고, 일인당 대출금의 규모 변화는 대출 건전성을 가늠할 척도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금융(대출) 활동이 활발한 것은 고소득층(연소득 8천만 원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고소득층에서는 다중채무자의 수와 대출금 모두 다른 소득계층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일인당 대출금의 규모가 다른 계층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2천만 원 이상 7천만 원 이하의 소득계층에서는 금융활동이 상대적으로 저조하였다. 다중채무자의 숫자가 적게 늘고 채무액도 상대적으로 적게 늘었다. 그렇지만 일인당 채무액은 고소득층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한편 연소득 2천만 원 이하의 최하위 소득계층에서는 다중채무자의 수가 상당 폭 늘어난 데다 대출금 규모도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이 결과 저소득층의 일인당 대출금 규모가 모든 소득계층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결론적으로 다중채무자의 일인당 대출금 규모로 볼 때, 다중채무자 중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그 대출의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연령별로도 금융활동 면에서 큰 차이가 나타나는데 특히 20대와 60대 이상의 연령대가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관심을 끈다.
먼저 60대에서는 전 소득계층에서 금융활동이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중채무자의 숫자도 크게 늘고, 대출금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중채무자의 수사 대출 규모에 비해 빨리 늘어남에 따라 일인당 대출금 규모는 소폭 감소하였다. 이것만 놓고 본다면 60대의 대출 상환능력은 개선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한편 6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는 신용대출과 기타대출의 활용이 크게 늘어났다.
20대의 경우 전체 다중채무자의 숫자는 2012년에 비해 감소하였고 채무금액도 연령대 중에서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였다. 소득 수준별로는 고소득층은 금융활동이 활발한 반면 저소득층은 위축되는 등 활동의 양상이 극단적으로 갈렸다.
연령별 다중 채무자 변동 상황을 해석함에 있어서 20대와 60대 이상의 연령층은 전체 다중 채무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다. 다중채무 금액으로는 20대가 14조원, 60대 이상이 57조원으로 전체 500조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금융취약계층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몇 가지 특징적 현상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용도가 증가하는 대출의 종류가 연령대별로 달랐다. 상식적으로는 생활이 안정된 60대에서는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을 활용한 금융 활동이 주를 이루고, 소득에 비해 씀씀이가 많은 20대에서는 신용대출이 많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겠다. 하지만 2010년대 금융활동은 이런 상식과는 반대였다. 60대가 신용대출을 크게 늘렸고, 20대가 주택 이외 담보대출 (예적금담보대출 등)을 활발히 이용하였다.
이용 금융기관의 변화에서도 특이점이 발견되었다. 20대 다중채무자는 은행 보험회사 카드회사 등의 이용이 크게 늘었다. 특히 이용자 수의 면에서 다른 금융기관의 이용은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에 비해 60대에서는 보험회사 카드회사 캐피탈 대부업 등으로부터 차입이 상대적으로 활발하였다.
윤활유와 연료유의 쓰임새가 다른데…
이와 같은 다중채무자의 금융(차입) 활동 변화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자료의 내용이 이 의문을 풀기에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한 가지 유추 해석을 해보고자 한다. 근래 다중채무자들, 특히 20대와 60대 이상의 연령의 차입 행태에서 나타난 특징적 변화는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가계가 차입을 하는 목적을 생각해보자. 일시적 자금 부족을 메우기 위함이 대개의 경우이고 일반적이다. 물론 요즘에는 투자 혹은 투기 목적의 차입도 많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이 용도는 논외로 하자. 일시적 차입과 대척에 있는 경우가 생활자금을 차입하는 것이다. 생활자금을 차입하는 것은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지출해야 하는 자금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자금 차입 목적의 차이를 기름의 용도에 비유하여 윤활유와 연료유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윤활유는 기계의 성능을 유지하거나 제고하기 위해 사용된다는 차원에서 필수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그에 비해 기름을 연료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여 소진한다는 의미이다. 일시적 자금 차입은 윤활유에 해당하지만 생활자금 차입은 연료유를 의미한다. 다른 연료(수입 및 소득 등)를 사용하여 열을 낼 수 있는데도 값비싼 기름(부채)을 사용하여 불을 지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차입금을 생활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융의 본질이 아니다. 자금 차입은 어디까지나 윤활유의 역할에 그쳐야 한다. 저소득층의 주택 구입용 대출도 크게 보면 윤활유에 해당한다. 저소득층 등의 차입을 우려하는 이유도 이들이 차입금을 소비하는 데 사용하여 나중에 상환하지 못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바로 윤활유가 아닌 연료유로 사용하는 경우라 하겠다.
물론 윤활유와 연료유를 엄격히 구분할 수는 없다. 사정에 따라서는 그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윤활유가 연료로 바뀌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지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원리는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모든 경제 주체에게 적용된다.
20대와 6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 나타난 금융행태의 특징은 차입금의 상당 부분이 윤활유보다는 연료유로서 사용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20대가 ‘주택 이외 담보대출’을 확대한 것은 금융자산을 축적해야 하는 시기에 금융자산을 담보로 대출 받은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 대출의 용도가 일시적인 자금 수요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모든 소득계층의 금융활동이 왕성한 60대의 경우에도 일시적 자금수요를 위한 차입만을 위해 이와 같은 왕성한 활동을 하리라고는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고령화 추세 등을 반영하여 그 이전에 비해 금융활동이 늘어난 세대가 이 연령대에 편입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하더라도 60대에서 신용대출이나 대부업 등을 통한 대출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은 일시적 자금 수요를 메우기 위한 ‘윤활유’ 활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가계부채에 관한 새로운 자료를 얻었음에도 명쾌한 정보를 얻지 못한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윤활유가 연료유로 바뀌지 않기를 바란다는 사실이다. 특히 금년 한해 내외경제여건이 예상외로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러한 바람은 더욱 강렬하다.
앞으로 가계 대출 및 차입 활동의 동기나 배경 등을 좀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기법이나 통계가 제공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가계부채와 관련한 적절한 대책을 신속히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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