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비르투스(역량), 너무 빈약하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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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속도가 너무 빠릅니까?”
12월 11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고용노동부 업무보고를 받고 난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담당하는 근로기준정책관실을 찾아 던진 질문이다. 문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현장에서 (최저임금 상승을) 체감해 보니 어떠냐?”며 그렇게 물었다는 뉴스를 접하고서 “이제야 그걸 묻느냐? 아직도 몰라서 묻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이렇게 자랑했다. “고용 근로자의 근로소득은 증대됐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16.4% 올림)을 결정할 때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를 자신 있게 설명하라. 긍정효과가 90%다.”
이 때에 비하면 지금 대통령의 기(氣)는 많이 죽은 것 같다. 하긴 삶의 현장에선 아우성이 나오고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율도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으니 풀이 죽지 않으면 이상하다. 문 대통령의 둔하디 둔한 현실감각에도 드디어 경고등이 켜진 모양이다. 대통령이 뒤늦게라도 걱정하기 시작한 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효과가 나는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그의 책임은 가벼워질 수 없다.
대통령의 현실감각, 너무 둔하다
문 대통령이 ‘긍정효과 90%’ 운운했던 지난 5월에도 경제와 민생은 확연히 나빠졌고, 저소득층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걸 당시의 정부 통계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통계청이 5월 24일 발표한 ‘가계소득동향’에 따르면 하위 20%(1분위)인 가계의 올해 1분기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0% 줄어든 128만 6700원이었다. 당시로선 역대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반면 소득 최상위 20%(5분위) 가계의 소득은 월평균 1015만 1698원으로 9.3% 증가해 당시로선 역대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성장이 의도한 것과는 반대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이면서 내세웠던 명분인 ‘양극화 해소’를 비웃듯 양극화는 악화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앞서 발표된 4월 실업률은 4.1%. 2001년 4월(4.1%) 이후 가장 높은 실업률이 기록됐다는 우울한 지표가 역시 통계청에 의해 공개됐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긍정효과가 90%’라고 했으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 아닌가.
대통령이 억지나 다름없는 말을 한지 닷새 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앞으로 2년 간 최저임금이 연 15%씩 인상되면 2019년에 9만6000명, 2020년에는 14만4000명의 고용 감소가 발생할 걸로 추정된다는 보고서였다. KDI는 이처럼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면서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은 (기업의) 비용을 급속히 증가시킨다. 속도 조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권은 이런 충고를 듣지 않았다. 7월 14일에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10.9%. 대통령이 임명한 공익위원들이 노동계 위원 편을 드는 상황에서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소용없다고 판단한 사용자 위원들이 정부 세종청사에서 개최된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 불참한 가운데 이뤄진 결정이었다. 노동계 위원 9명, 사용자 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는 실질적으론 18명이 노동계를 대변하는 일방적인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연히 드러난 날이었다.
문재인 정권 출범 2년 간 29%나 인상된 최저임금이 내년엔 10.9%가 또 오른다고 하자 영세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나를 잡아 가라”며 궐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냉담했다. 상공인과 자영업자 등은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대통령은 “주5일제 근무처럼 (최저임금도) 제도가 정착되면 도움이 된다”며 일축해 버렸다. 문 대통령이 폐기 또는 대폭 수정이 필요하다는 경제학자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강행한 결과 하반기엔 경제와 민생 상황이 한층 더 악화했다. 최근엔 대통령도 “고용과 민생에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이니 더 이상 부연할 필요도 없다.
민노총에만 관대한 대통령
삶의 현장에서 영세상공인들이나 자영업자들, 중소기업인들이 “죽겠다”고 하는 데도 외면해 온 대통령은 ‘떼법’으로 무법천지를 만들어 온 민노총의 요구는 성심성의껏 들어주려고 했다. 문 대통령은 11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협의체 회의에서 탄력근로제를 연말까지 매듭짓기로 약속했다.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현행 최장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늘리자는 합의였다.
정부와 여야는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데 사실상 합의했으나 민노총이 반대하자 대통령은 스스로 한 약속도 뒤집어 버렸다. 탄력근로제 입법에 반대하는 민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 참여를 거부한 것을 의식한 대통령은 “경제사회노동위에서 (민노총과 함께) 탄력근로제를 논의하면 국회에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하겠다”고 했다. 민주노총 눈치를 살피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여당인 민주당은 탄력근로제 확대를 위한 연내 입법을 바로 포기했다. 여당은 내년 2월엔 꼭 입법을 하겠다고 하지만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여당이 2월 입법을 추진할 땐 민노총 요구가 상당히 반영된 안을 들고 나올 공산도 크다.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 하락은 민노총의 터무니없는 요구와 비민주적이고 과격한 행태와도 관련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이런 지적이 잇따르는 데도 대통령은 민노총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내세운 혁신성장은 규제개혁과 함께 노동의 유연성을 담보하는 노동개혁이 이뤄져야 가능하다. 그런데 규제개혁은 말뿐이고, 민주당과 시민단체, 이익집단의 벽에 가로 막혀 있다. 노동개혁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규제개혁은 말하나 노동개혁은 입에도 올리지 않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혁신성장이 가능하겠는가. 듣기 좋은 헛구호에 그칠 뿐이다.
민노총 소속 정규직은 경제가 추락하건 말건, 기업이 골병들건 말건 귀족급 고연봉을 받으면서도 임금과 수당을 올려 달라고 하고 파업 공갈로 떼를 쓴다. 그들은 가족과 친인척에 세습고용 혜택을 받게 하는 등 별별 특권을 다 누리고 있으면서도 만족할 줄 모른다. 민노총 소속 비정규직은 가만히 있어도 정규직을 꿰찬다. 그 바람에 청년들의 취업 기회는 좁아지거나 봉쇄되고 있다. 민노총 가입 노조원은 증가하고, 민노총 위세는 갈수록 커지고 있으니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과 주 52시간은커녕 주 100시간 정도 일해야 겨우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자영업자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비례해서 커지는 게 이 나라의 서글픈 실상이다.
이제야 최저임금 걱정, 너무 늦은 것 아닌가
문 대통령이 뒤늦게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걱정하고 새로 짜인 경제팀이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고치겠다고 하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반길 일이다. 그러나 곧 다가올 내년엔 최저임금이 10.9%가 다시 오른다. 탄력근로제는 확대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로를 지키지 못하는 기업은 형사고발을 당하고 처벌을 받아야 할 판이다. 이젠 비교적 견실한 중소기업도 버티기 힘들어서 비명을 지를 게 틀림없다. 정부가 뒤늦게 사정을 살핀다며 부산을 떨어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다. 무슨 개선책이 나온다 해도 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소기업 입장에선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일 것이다.
운 좋아 탄생한 정권의 실력, 형편없다
문재인 정권은 운(運)이 좋아서 탄생했다. 전(前) 정권이 한심해서 국민이 분노하고 등을 돌리는 바람에 민주당 세력이 집권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의 국정운영도 형편없긴 마찬가지다. 집권 1년 6개월 간 흠결과 자격미달로 낙마(落馬)한 장·차관 후보자 숫자가 박근혜 정부 전 기간을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다. 전문성 없는 ‘낙하산들’을 공공기관에 마구 꽂는 적폐는 과거 정부 때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
KTX 열차 탈선 등 사고가 빈발한 코레일, 국민연금 운용 실적이 ‘역대급’으로 저조한 국민연금관리공단 등 해당 분야에 어떤 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는 이들을 ‘민주당 출신이라서’, ‘문재인 대선 캠프 사람이라서’, ‘코드가 맞아서’ 라는 등의 이유로 공공기관 책임자로 앉히고 있으니 어찌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이런 무자격자들이 꿰찬 공공기관이 한 둘이 아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즐비하니 이것이 신(新)적폐가 아니고 무엇인가.
현 정권의 경제와 민생 성적표가 박근혜 정부보다 훨씬 나쁘다는 것은 각종 경제지표와 통계, 삶의 현장에서의 아우성이 증명하고 있다. 전문 시위꾼이나 민노총 조합원이 아닌 영세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소기업인들이 피켓을 들고 무리를 지어 거리로 나선 것은 지난 정권에선 볼 수 없었던 일 아닌가.
‘탈(脫)원전’의 부조리와 모순도 심각
대통령이 밀어붙인 탈(脫)원전 정책의 부작용도 심각하다. 원자력 발전 축소로 전력 생산 비용은 높아졌다. 많은 흑자를 내던 한국전력은 이제 적자에 허덕이고, 적자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원전 대신 석탄발전이 느는 바람에 이산화탄소 배출과 미세먼지 농도는 높아졌다. 국제환경단체가 “한국은 환경악당”이라며 “문재인 대통령, 석탄 투자 그만하세요”라고 시위하고 나서고 항의서한을 정부에 보낼 정도다.
정부는 원전 축소로 전력 공급이 불안해 질 수 있음을 의식한 듯 중국과 러시아에서 전기를 수입하는 계획도 세웠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은 원전을 정권이 죄악시하는 바람에 원전 산업은 붕괴되고 있다. 관련 기업들은 경영을 축소하고, 사람들을 내보내는 등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알짜 일자리가 사라지고 기업 경쟁력이 죽고 있는 것이다.
안에서 이처럼 멍이 들고 있으니 밖에서인들 온전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 정부 시절 우리는 아랍에미레이트 바라카에 원전을 수출했고, 그 운영권도 우리가 맡았다. 하지만 최근엔 그 운영권이 흔들리고 있다. 아랍에미레이트가 원전 운영에 프랑스를 끌어들이는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문제없다고 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현 정권은 전 정부에서 7000억 원이나 들여 잘 수리해 놓은 멀쩡한 원전을 안전성이 없고 경제성도 없다며 폐쇄했다. 그러고선 밖에 나가 “한국 원전은 안전성도 좋고 경제성도 좋다”며 사 달라고 한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고, 촌극도 이런 촌극이 어디 있겠는가. 외국 사람들을 바보로 아는 모양인데 이 정권에서 원전 수출 실적이 하나라도 나온다면 그건 기적이나 다름없다.
정권은 원전 대신 태양광에 주력하고 있으나 발전 비용은 많이 들고 효율(원전 85%, 태양광 15%)은 떨어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태양광을 산과 바다와 저수지, 도심 건물 등곳곳에 설치한다며 정권 측이 민주당이나 시민단체 출신 등의 인사들에게 보조금을 퍼주고 있으니 ‘태양광은 좌파들의 먹잇감’이란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적폐청산’에 망가지는 검찰과 사법부
과거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을 소득주도 성장처럼 밀어붙여 온 대통령은 과거 문제에 대한 기초적 사실관계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죄’를 단정하는 듯한 발언을 남발했다. 그러면서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기무사의 세월호 관련 활동이나 계엄 문제 검토 문건등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이 단적인 예다. 대통령이 답을 정한 듯 사건의 성격을 규정해 버린 상황에서 하명(下命)을 받은 셈인 검찰이 독립적으로 냉철한 수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적폐인데, 적폐청산을 외쳐온 대통령의 ‘말씀’ 때문에 검찰이 적폐를 저지르고 있으니 이것이 정의이고 공정인가. 급기야 전직 장성(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한 억울함을 항변할 길이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검찰 독립과 중립’ 운운하던 이들이 권력을 잡은 다음 검찰을 ‘충견(忠犬)’으로 부리며 벌이는 과도한 적폐청산 놀음, 그 살벌함과 무도함에 죽음으로 맞서는 이들이 나오면서 정권과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독립이 가능하다고 하면 소가 웃을 일이다.
정권은 대법원과 법원을 정치에 물들게 함으로써 사법부 독립도 훼손했다. 그런데도 ‘사법개혁’ 운운하는 데, 정권 측이 말하는 개혁은 기실은 사법부 ‘코드화’이고, ‘좌파화’일 것이다. 전직 대법관·헌법재판관 등 법조인 200여 명이 김명수 대법원장을 겨냥, “사법부의 정치화, 정권의 시녀화를 자초해 사법부 독립을 근본적으로 침해했다”며 퇴진을 요구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도 ‘사법부의 코드화’를 우려한 결과다.
김 대법원장은 지방법원장에서 단번에 대법원장이 되는 파격과 행운의 주인공이다. 정권 측과 코드가 맞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그를 낙점했다는 게 정설. 그런 문 대통령에게 대법원장은 보은(報恩)이라도 하듯 같은 코드의 판사들을 사법부 요소요소에 배치하고 사법부의 과거를 먼지 털 듯 털고 있다. 이런 사법부가 삼권분립이란 헌법정신에 맞게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법원 안팎에서 나오는 건 당연하다. 사법부를 이렇게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대법원장 책임도 크지만 그를 사법부 수장 자리에 앉힌 대통령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북핵은 진전 없고, 한미동맹은 흔들리고
북한 핵문제는 또 어떤가. 1년을 기다렸지만 핵문제의 본질적 해결과 관련해선 어떤 진전도 없지 않은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을 폐쇄한 게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북한은 그에 대한 검증도 받지 않고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이 완전히 쓸모없게 파괴됐다는 것을 국제사회는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올해에도 핵 능력과 탄도미사일 개발 능력을 고도화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북핵 해결의 입구에 해당하는 핵무기·핵물질·핵시설의 신고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신고할 의향도 내비치지 않고 있다. 성실 신고 여부는 차치하고 신고조차 꺼리는 북한 태도와 관련해 “김정은에게 핵문제 해결 의지가 있다”고 한 문 대통령은 설명을 해야 한다.
북핵에선 큰 진전이 없는데 한미 동맹의 틈새는 많이 벌어졌다. 정부는 부인하지만 미국 조야(朝野)에서 나오는 소리는 한국에 대한 불만, 불만, 불만이다. 핵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북한에 대해 제재의 고삐를 더욱 죄는 미국이 대북제재를 풀자고 하는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를 좋게 보겠는가.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미국을 바라보는 문 대통령에게도 불만은 있을 것이다. 국민은 한미 간 동맹이 더 흐트러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한미 동맹이 굳건하지 못하다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우리 안보도 불안해 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려면 북핵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확고한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북핵은 미국에 맡기고 김정은과의 만남 등 보여주기식 관계개선에만 열중하는 대통령과 정부는 이 문제에 있어서도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적폐청산과 내로남불에 국민 피로감 쌓여
현 정권이 지난 1년 7개월 동안 한 일 가운데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일은 거의 없다. 과거의 잘못은 광정(匡正)하는 건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정권이 몰두해 있는 적폐청산 작업 중엔 도가 지나친 게 적지 않고, 말이 안 되는 것도 많다. 대통령이 펄쩍 뛰며 ‘엄정처리’를 지시한 사안들 가운데 사드 추가 배치나 계엄령 문건처럼 문제 삼기 어렵다고 결론지어진 것들이 있다. 대통령이 유죄를 단정하며 찍은 사람들 중에 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이들도 여럿 있다. ‘대통령이 속단해서 쓸데없이 흥분했다’는 인상을 주는 일들이 이어지면서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 피로감도 쌓이고 있다.
정의를 독점한 양 적폐청산 몰이를 해 온 이 정권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선 으뜸이다. 취임 후 청와대에서 “낙하산을 내려 보내지 않겠다”고 야당 대표들 앞에서 약속했던 문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낙하산 인사를 하고 있다. KTX 열차 탈선 사고로 코레일의 낙하산 사장이 그만 둔 다음날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경험 없는 낙하산을 버젓이 내려 보냈다. 지난 총선 때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사람을 챙긴 것이다.
열차 탈선을 날씨 탓이라고 해서 무경험의 극치를 보여줬던 코레일의 물러난 사장, 경기 고양시 백석역 온수관 파열 사고 당시 ‘웃음 보고’를 해 시민의 분노를 샀던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전문성 없는 낙하산 사장(이 사람은 아직도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에 대한 국민의 불쾌한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또 낙하산을 내리 꽂는 건 국민이 정권의 안중에도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 활동과 관련한 청와대 대응도 ‘내로남불’이다. 특별감찰반에서 감찰 대상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정보 수집을 한 것으로 드러나자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청와대가 오락가락 해명으로 의심을 더 사게 해놓고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이 말을 믿을 걸로 본다면 오산도 큰 오산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야당 처지였다면 이런 엉터리 설명을 순순히 받아들였겠는가.
청와대는 여권 중진인 러시아 대사와 도로공사 사장에 대한 의혹은 감찰 보고서를 받아보고서도 깔아뭉갰다. 두 사람 문제에 대한 청와대 해명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여권 인사들의 문제를 보고했기 때문에 보복을 받고 있는 것”이란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 수사관의 주장은 그래서 그럴 듯하게 들린다. 청와대는 김 전 수사관의 일탈행위라며 꼬리 자르기를 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의혹은 연일 터져 나오고 청와대 해명은 갈팡질팡으로 설득력을 잃고 있으니 사건이 어떻게 청와대 뜻대로 정리되겠는가. 이번 일로 정권의 치부는 드러날 것이고, 정권의 기반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정권의 무능과 내로남불 사례는 이밖에도 수두룩하다. ‘정의’와 ‘공정’을 자랑한다는 정권이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경우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대통령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추락해서 급기야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더 많이 나오는 상황(알앤써치의 12월 셋째주 정례 여론조사 결과 부정평가 49.8%, 긍정평가 46.2%)에 이른 것은 정권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국민이 알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운(運, 포르투나)은 가고 비르투스(역량)은 없고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은 정권의 무능과 부도덕, 표리부동(表裏不同)으로 인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운(運)이 좋아서 집권한 대통령이지만 그 운도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행운의 여신, 이른바 포르투나(Fortuna)가 변덕스럽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그래서 비르투스(Virtus, 역량)를 길러야 한다고 현인(賢人)들은 누누이 강조했다. 포르투나가 등을 돌려 불운이 닥칠 때 그걸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비르투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 비르투스를 문재인 정권은 함양하지 못했다. 인재를 널리 구하지 못하고 ‘캠코더’(캠프, 코드, 민주당)만 쓰는 편협함, 이념에 얽매여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고루함, 허구에 불과한 정책을 밀어붙여 경제와 민생을 추락시킨 ‘선무당’ 식 만용, 적폐청산 몰이를 하면 국민이 언제든 열광할 거라는 오판, ‘우리가 하는 일은 정의요, 선(善)’이라는 오만, 지리멸렬한 야권은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안이함 등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다.
그런데도 정권은 노선과 방향,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생각은 없어 보인다. 정권의 비르투스가 엉망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오만한데다 어리석어서 그럴 터, 이대로 간다면 내년엔 대통령과 정권에 더 큰 위기가 닥칠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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