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송곳'이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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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사회를 진화시키는 큰 힘이 각성 능력이다.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같은 방법만 계속 쓰다가 실패를 자초하거나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는 모두 각성하지 않아서이다. 각성은 “정신을 차리고 주의 깊게 살피어 경계(조심)하는 태도”이다. 그런데 각성을 통해서 스스로 교정하고, 다시 그 교정을 통해서 큰 성취를 내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성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큰 성취를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하기 어려운 이 각성의 고통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각성은 존재의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다. 부분적인 사명감이나 신념이나 확신에 갇혀 있으면 불가능하다. 존재의 전체가 흔들리는 정도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일단 마음의 크기가 크다. 자잘하지 않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어떤 맥락에 서 있는지 혹은 자기 힘의 구성 조건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따른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우리는 맹목적이라 한다. 맹목적이면 성공하기 힘들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말기에 국민의 외면을 받자 권력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스스로 “폐족”이라 자학하였다. 이 “폐족”들이 다 다시 돌아와 문재인 대통령의 권력을 만들었다. 부동산 등과 같은 노무현 대통령 때의 실정을 그대로 반복하였다. 결국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폐족이라 자학했던 기억이 있으면, 각성하여 실정을 반복하지 않아야 할텐데,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세력은 ‘사람들’이 만든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정치”를 하고, “이런 사람들”은 “이런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마천의 이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나 있는 풀을 보면 그 땅이 어떤 땅인지를 알고, 쓰는 사람을 보면 그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
새 정부는 앞으로 어떠할까? 어떤 사람들이 권력을 구성하는 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니다. 박근혜와 이명박 정부 때의 사람들이 그대로 다시 다 돌아왔다. 각성의 세례를 통과한 냄새는 나지 않는다. 그런데, 새 정부 권력에 매우 이질적인 힘이 하나 포함되어 있다. 안철수다. 박근혜 이명박 때 사람들이 대부분인 권력에 이질적인 안철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박근혜 이명박 정권의 재판이 되지 않게 할 유일한 송곳이다. 안철수의 능력 여부와 상관 없이 송곳이라는 점 하나로 의미는 충분하다.
문재인 정권의 약점은 자칭 폐족들 사이에 ‘송곳’을 단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송곳을 알아보고 허용하는 정도의 내면을 갖기란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종이 쪼가리 말고 날 믿어 달라”는 말의 신뢰는 그 말을 한 사람의 내면의 크기가 지켜주지, 목소리의 크기가 지켜주지 않는다. 내면이 커야 각성할 수 있다. 내면이 작으면 찔릴까 봐 겁먹고 송곳을 쉽게 버리려 한다. 내면이 크면, 찔리더라도 송곳을 소중히 여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각성하자.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 싶어도 각성하자.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 시키려는 전혀 새로운 꿈을 실현하고 싶다면, 전혀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는 일 이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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