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무주공산(無主空山)이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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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권력투쟁의 계절이다. 총선과 대선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은 국민의 마음을 두고 벌이는 인정(認定)투쟁이다. 국민의 인정을 받아야 승리한다. 인정투쟁의 형태로 벌어지는 권력투쟁에서는 비전과 정책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정치세력과 정치인은 국가발전과 사회개혁에 대한 자기 나름의 비전과 정책을 앞 다투어 제시한다.
이때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부문이 있는데, 바로 교육이다. 그러나 나의 판단으로는 정치인에게 교육은 계륵이다. 막상 먹으려 들면 먹을 게 별로 없는 영역이다. 교육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상당히 크기는 하지만 교육개혁에 대한 욕망이 그에 비례하여 아주 절실하지는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치인이 교육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교육은 또 생각보다 먹을 게 많은 영역이다. 어찌됐든 많은 국민이 교육의 변화를 원하고 있다.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한 인정투쟁에서 교육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이 완전한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교육에는 주인이 없다. 이전에도 없었다. 어느 당이 집권해야 교육개혁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느 정치인이 권력을 잡아야 교육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받았을 때 독자들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시겠는가?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당, 어느 정치인이 권력을 잡아야 교육문제가 더 잘 해결될 수 있을지 도무지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다른 영역도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그 정도가 교육에 비할 바가 아니다.
교육은 무주공산의 영역이다. 먼저 깃발은 꽂는 사람이 임자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깃발은 비전과 정책이란 깃발이다. 지금까지 교육영역에는 국민의 인정을 받은 만한 깃발을 꽂은 정치세력이 없었기에 그 누군가가 먼저 깃발을 꽂으면 그 깃발이 주는 인상은 국민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각인될 것이다. 그 후에는 다른 정치인이 교육을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해보았자 소용없다. 국민이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기에 그 인정은 쉽게 철회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무주공산의 교육영역에 깃발을 꽂을 수 있는 기회를 제일 먼저 얻은 정치인은 안철수 의원이다.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탈당 이후 정치권은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국민의 관심 또한 안철수 의원의 행보에 집중되고 있다. 최근 안철수 의원의 행보는 2012년의 대통령선거를 떠올리게 만든다. 실제로 탈당 이후 가진 안철수 의원의 첫 기자회견(2015.12.27)은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의원이 대통령후보로서 발표했던 정책비전선언문(2012.10.07)을 연상케 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안철수 의원은 자신이 추구하는 새 정치의 목표와 비전이 우리사회의 총체적 변화라 하며 4개의 담대한 변화를 제시했다. 안철수 의원(또는 그의 참모)이 표어로 압축하여 홈페이지에 올린 것을 그대로 옮기면 그것은 ‘공정성장, 교육혁신, 격차해소, 튼튼한 안보’다. 교육은 두 번째로 언급되었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12월 27일의 기자회견을 통해 교육부문에 확실한 깃발을 꽂았는가? 필자의 판단으로는 부정적이다. 물론 단 한 번의 말과 행위로써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의원은 교육영역에 자신의 깃발을 꽂을 최소한의 교두보 정도는 확보했는가? 그 역시 부정적이다. 기자회견을 주의 깊게 지켜본 사람들조차도 안철수 의원이 그날 말한 교육개혁의 내용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용 자체가 나빴다는 얘기는 아니다.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정권을 잡아 우리사회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정치인의 말이 아니라면 아주 좋은 말씀이라고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는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의 인정을 받겠다고 나선 정치인이다. 단순히 좋은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날의 기자회견은 사회의 총체적 변화를 약속하며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는 자리였다. 내년의 대통령선거 때까지 지속적으로 움켜잡고 나갈 수 있는 뚜렷하고 명확한 교육개혁의 핵심 메시지가 있어야 했다. 있었는가? 없었다. 물론 ‘수직적 관료적 기계적 교육시스템’을 ‘수평적 창조적 디지털 교육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을 핵심 메시지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말에서 교육개혁의 어떤 구체적 청사진을 떠올린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평적이란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창조적 디지털 교육시스템’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을 실행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안철수 의원(또는 그의 참모)이 표어 형태로 정리한 것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공정성장, 교육혁신, 격차해소, 튼튼한 안보.
교육혁신이란 말만 뭔가 다르지 않은가? 공정성장, 격차해소, 튼튼한 안보, 이 3개의 표현에는 어떤 방향성이나 내용이 있다. 하지만 교육혁신이란 표현은 그렇지 않다. 변화라는 의미 외에 아무런 내용성이 없다. 공정성장, 격차해소, 튼튼한 안보와는 현저히 다르다. 단순히 안철수 의원이나 그의 참모들이 부주의하게 요약해서 그렇게 된 것일까? 애초에 교육개혁에 대한 그의 진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안철수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박근혜대통령의 창조경제가 전혀 창조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당연한 비판이다. 세간의 비판대로라면 창조경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안철수 의원이 말하는 ‘수평적 창조적 디지털 교육시스템’은 어떨까? 안철수 의원과 그의 정책참모들은 과연 ‘수평적 창조적 디지털 교육시스템’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국민들로 하여금 교육개혁에 대한 안철수의 청사진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
수평적 창조적 디지털 교육시스템이라는 메시지는 좋은 말을 여러 개 모아놓았지만 교육개혁의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다. 박근혜대통령의 창조경제란 말처럼 그 또한 그에 대해 말하면 말할수록 내용이 더 애매해질 것이다. 논의가 진행될수록 그 실천방법이 명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중구난방이 될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그날 교육영역에 자신만의 깃발을 꽂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슨 대단한 잘못을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안철수 의원만이 아니라 다른 그 누구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다. 아마 그것은 교육개혁에 대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일이 애초에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에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나의 이 아쉬움은 교육의 변화를 간절히 원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교육에서 비전과 정책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는 정치세력이나 정치인이 없다는 것은 우리교육의 변화 가능성이 그만큼 희박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국민과 국민의 대표가 비전과 정책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교육이 바뀔 수 있겠는가?
교육은 무주공산이다. 먼저 깃발을 꽂는 자가 임자다. 정치세력들의 치열한 경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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