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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희망으로 죽음에 도전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1월21일 21시39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11분

작성자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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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희망으로 죽음에 도전한다

 

 

산은 내 운명

산은 운명이다.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산을 걷는다. 걸으며 추억을 떠올린다. 산은 그리움과 중첩된다. 산은 어느새 사람의 얼굴을 묻어버린다. 추억도 묻어버리고 감정도 묻어버린다. 그렇게 걷다보면 내가 산인지 산이 나인지도 잊어버린다. 그냥 걷는다, 무념의 상태로 접어든다. 모든 것을 잊게 하는 산. 왜 오르고 걷나? 걷는다는 것은 고통의 자기소화다. 걷지 않으면 고통이 자신을 지배한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걷는다. 그것이 살 길이다. 힘들고 지친 이들이 올레길을 걷는다. 8백 킬로 산티아고 긴 여로를 두세 달씩 걸려 걷는 이유다.

 

불가에서는 용맹정진이란 이름으로 삼천 배를 한다. 빨리하면 7~8시간, 느린 사람은 12시간 이상이 걸린다. 물론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절을 오백 배 할 무렵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보이는 눈물이, 때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눈물이 줄줄 흐른다. 부처 앞에 매달려 엉엉 울고 싶어서인가? 평소에 꽁꽁 묶어두었던 자존심과 가식을 종교의 힘을 빌려 그때만큼은 살짝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일까? 일천 배 넘어설 무렵 자정이 다가오고 팥죽으로 요기를 한다. 절의 계단을 내려올 때면 무릎을 구부릴 수가 없어 옆으로 게걸음을 걷게 된다. 기도에 참가한 이들은 다시 정진한다. 모두들 가슴에 말 못할 사연 하나씩은 품고. 

 

성철 선사는 자신을 만나기 전 삼천 배하고 오라고 하셨다. 포기하고 싶은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 삼천 배 마치고 오든지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해석컨대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에서 자신을 만나라는 말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삼천 배가 끝나면 스님을 만날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스스로 해답을 찾았을 것이기에 말이다. 사람의 산은 물질일 수 있으며 사랑일 수 있으며 돈과 명예일 수 있다. 불자들이 만나고 싶어 했던 성철은 그것 모두 내려놓고 오라고 하신다. 산악인이 만나고 싶어 하는 부처는 산이다. 그들에게 산은 산일뿐이다. 명예도 사랑도 권력도 아니다. 그중 그들의 도전 대상은 산 중에서도 가장 높고 험한 히말라야다. 

 

우에무라 나오미와 박영석

한국의 히말라야 원정은 1970년대 시작되었다. 김정섭 대장이 이끌던 마나슬루 원정대는 3차에 걸친 원정 모두 실패하고 그는 두 명의 친동생을 잃었다. 고난의 역사였다. 1976년 에베레스트 원정 준비를 하던 훈련대가 설악산 죽음의 계곡서 눈사태를 맞았다. 최수남 대장을 비롯한 3명이 사망했다. 히말라야 땅을 밟기도 전에 죽은 것이다. 그러나 산악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드디어 1977년 고상돈 대원이 세계 최고봉 8848미터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이후 한국의 히말라야 등반 역사는 새로 쓰이기 시작했다. 난이도가 가장 높은 K2 정상은 장봉완 등반대가 밟았다. 

 

험난한 K2 성공에 이어 8천 미터급 히말라야 14좌 봉우리는 차례로 완등 되었다.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김재수, 김창호에 이어 여성으로 세계 최초로 오은선이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지금도 히말라야의 등반사는 새로 작성되고 있다. 아무런 보상도 없는 산에 왜 도전하는가?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는 말을 우리는 익히 들어 안다. 왜 오르는가? 설산은 외경(畏敬)의 대상이었고 도전의 대상이었다. 등반은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다. 그랑드조라스, 마터호른, 아이거 등 알프스의 3대 북벽과 요세미티 직벽 하프 돔 등은 암벽 등반가들의 승부욕을 자극시킨다. 남미 안데스 파타고니아의 경이롭게 신비한 설벽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워 죽을지라도 오르고 싶어진다. 

 

우리에게 히말라야 등정은 실패의 역사다. 성공의 기록은 수많은 실패 끝에 주어진 신의 작은 선물이다. 인간이 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산의 여신이 인간에게 잠시 등정을 허락한 것일 뿐이다. 엄홍길은 22년 동안 38번 도전 끝에 16좌를 완등했다. 등정 후 산악인들은 동상 걸린 발가락과 손가락을 잘라내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아픔과 실패 없는 성공은 애당초 없는 일이다. 실패는 성공의 디딤돌이다. 실패 없는 삶이란 없다. 실패를 가슴에 안고 묵묵히 걷는다. 정상을 향해. 정상은 지존(至尊)의 가치이기에 아름답다. 세속의 가치가 아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산악인들의 정상은 숭고한다. 정상에 도전하는 그들의 가치가 순수하다. 숭고한 그들 산악인의 이름을 떠올린다. 우에무라 나오미와 박영석. 나오미는 맥킨리 정복 후 하산 도중 사망했다. 박영석은 난공불락 안나푸르나 남서벽에 세계 최초 직벽 루트를 개척하려다 실종되었다. 오대양 육대주의 최고봉을 오른 나오미는 유빙과 얼음으로 뒤덮힌 북극의 알래스카 대륙을 개썰매와 두 다리에 의지해 걸어서 완주했다. 그 기록이 ‘안나여, 저기가 코츠뷰의 불빛이다’이다. 안나는 그의 썰매 대장 개의 이름이며 코츠뷰는 그가 가야할 목적지다. 나오미의 ‘내 청춘 산에 걸고’는 한국 산악인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그의 책과 모험의 기록을 보며 성장한 이가 박영석이다. 

 

엄홍길과 히말라야

최근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가 흥행 고공행진 중이다. 이 영화는 휴먼 원정대 엄홍길 대장의 실화다. 그의 후배이자 등반 파트너 고 박무택 대원이 등반대장으로 참가한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하산 도중 사망했다. 설맹(雪盲)으로 오도 가도 못하다가 설벽에 동사한 채로 매달려 있었다. 그는 그의 시신을 수습하러 원정대를 조직한 것이다. 시신이 있는 곳은 8700미터 이상의 고지였다. 정상 등반보다 더 힘든 시신 수습이었다. 구조원정 자체가 죽음을 담보한 것이었다. 누구도 선뜻 원정대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나 산악 동지들은 다시 뭉쳐 히말라야로 향한다.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영화에서 기자가 묻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의 등반은 무엇이냐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동료를 구하러 구조에 나선 백준호 대원의 행동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등반이라고”. 14좌 완등이나 미답봉 세계 초등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다. 죽을 각오로 아니 죽을 줄 알면서도 동료를 구하러 나선 산행을 최고의 등반이라고 말한다. 백준호는 탈진한 상황에서 박무택이 조난당했다는 무전연락을 받고 산을 다시 오른다. 영화 40도의 추위에 시속 50미터를 넘는 초강풍과 눈보라 속에서의 야간 산행은 자살행위였다. 본인은 내려가야만 산다. 죽을지 뻔히 알면서도 구조에 나선다. 그 역시 사망했다. 죽음은 산사나이들의 피보다 진한 우정 앞에 한낱 거추장스런 단어일 뿐이었다. 

 

등산은 가장 숭고한 행위다. 보상이 없다. 명예도 따라주지 않는다. 동료들의 죽음을 딛고 등정에 성공한 엄홍길은 부채의식이 있다. 그는 그의 부채를 휴먼 원정대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세르파들을 위해 사천 미터 팡보체 마을에 학교를 세우고 자식들이 교육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는 자일 파트너 박무택과의 약속 때문에 부러진 발목에 주사를 맞아가며 16좌를 완등하고 동료의 시신을 찾아 나섰다. 고산 등반을 더 이상 하지 않지만 그는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하고 산악인으로서 모범적인 사회봉사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희망으로 죽음에 도전한다

엄홍길은 살아서 산의 가치를 말하였지만 죽음으로써 등산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 이들이 우에무라 나오미, 박영석 등이다. 박영석은 14좌 완등, 남극탐험, 북극탐험 등 산악계 그랜드슬럼을 달성한 후에도 끊임없는 도전을 시도했다. 그는 그의 영웅적 등반 성공을 토대로 세속적 명예를 충분히 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거부했다. 탐험에서 돌아오면 또 다시 길을 나섰다. 마침내 산에서 죽었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의 신념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의 역사 그 자체였다. 그의 시신은 안나푸르나의 어느 계곡 크레바스에 빠져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동지라고 부른다. 옆에 있는 친구를 동료하고 부른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동지나 동료는 때로는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회적 가족일 수 있다. 이들과 함께하는 삶이 우리의 사회생활이다. 곁에서 어른들로부터 배우고 후배들을 이끌면서 함께 보다 살기 좋은 세상 만들기에 동참한다. 사회 정의와 공동의 선을 모색한다.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만인의 공동선을 위해 비판도 하며 서로 사랑하면서 세상을 산다. ‘사회적 가족이라 부르고 싶은 동지’ 사이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상의 가치’가 같아야 한다. 가치관의 공유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후 그의 ‘화합과 통합’의 가치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여전하다. 정치권의 노선대립과 정파분열, 정치꾼의 사리사욕으로 혼탁하다. 노사갈등, 노노갈등이 만연하다. 대립과 투쟁의 시대에 화합과 통합의 정신을 생각하며,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아우를 수 있는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현실이 어렵고 답답할지라도 희망이란 단어를 기억하자. “살아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는 우에무라 나오미의 말을 기억하자. 박영석, 박무택, 백준호가 가슴 속에 품었던 ‘히말라야’를 생각하며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죽음에 맞서는 이들을 기억한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치욕이다. 산사나이들이 멋진 것은 자일로 서로의 생명을 묶고 죽더라도 끝까지 함께 간다는 것이다. 산 자의 기억과 추모 속에 이들의 죽음은 우리들에게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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