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의 무서운 독성(毒性)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소[牛]인가 뱀인가
훌륭한 자질의 정치가가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어왔음은 존중되어 마땅합니다. 뭇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으며 자부심을 갖아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뛰어난 능력이 많을 때 그 반작용으로 해악도 클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조물주가 사람에게 평등한 존엄을 주셨다 하더라도 인간사회에는 사악함도 스며있습니다. 뛰어난 능력자한테 도사리는 무서운 독성을 경계하며 몇 마디 적어볼까 합니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젖이 되지만 뱀이 마시면 독이 되니까요.
삶과 일의 결과는?
선천적으로 지능이 높거나 재능이 빼어나다면 그만큼 삶과 일의 성취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京セラ) 창업자는, 사고(思考)력, 열의(熱意), 그리고 능력이 어우러져 ‘삶과 일의 결과’가 나타난다고 설파합니다. 그의 경험에서 우러난 발상입니다. 간단히 곱셈으로 나타내면,
삶과 일의 결과 = 사고력X열의X능력 (#)
이 됩니다. 위 (#)식은 좋은 사고력과 열의가 있고 능력이 출중하면 그만큼 높은 수준의 삶과 일의 결과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능력이 많은 사람한테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방향이 잘못되어 버리면 엄청난 마이너스(負)의 영향력을 끼친다는 점입니다. 얼마나 건전한 사고력(또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삶과 일의 결과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위의 (#)식과 관련하여 이나모리 씨는 열의나 능력이 0점에서 100점까지의 점수라 한다면, 사고력은 -100점에서 +100점까지 있다고 합니다. 사고력의 한쪽 자락이 마이너스(-) 100점까지 있다고 함은, 삶과 일의 결과를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음을 깨우쳐줍니다. 달리 말해, 열의와 능력이 어떠한 사고력과 결합되느냐에 따라 약성(藥性)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독성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적 자질이 뛰어나 민주화 발전에선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경제운용의 방향타를 잘못 이끌어 한국경제를 위기에 빠뜨렸었습니다.
지배관계의 정당성
정치관계는 결국 사람이 사람을 따르도록 하는(복종시키는) 지배관계입니다. 어차피 세상은 혼자가 아니고 조직을 이루어 지내게 됩니다. 조직이 잘 돌아가려면 지배의 정당성이 확립되고 그 지배에 복종하는 합의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명저에서 지배의 정당성 근거로, ‘전통, 합법, 카리스마’라는 세 가지를 듭니다. 부연하면, 옛 관습으로부터 신성시되어 온 전통에 따른 지배, 법규제정을 통한 합법성에 의거한 지배, 개인의 카리스마적 자질에 의한 지배라는 세 가지입니다(『職業としての政治』, p.11). 일본은 카리스마성은 약하지만 국가나 조직을 중시하면서, 옛 관습으로부터 신성시된 천황제 전통과 법규제정의 합법성에 의한 지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기독교 사상 및 합법성 계약규범에 기초한 지배가 이루어지는 사회입니다.
한국은 전통 왕조도 없어졌고 계약사회의 성격도 약한지라, 일본처럼 전통이나 규칙의 준수의식도 높지 않고 미국과 같이 계약규범을 매우 중시하는 사회도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위 세 가지(전통, 합법, 카리스마적 지배)가 짬뽕되어 있는 듯하지만, 굳이 특징을 든다면 카리스마적 지배를 선호하는 듯 합니다. 한국사회를 구제해줄 카리스마 정치가의 출현을 막연히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카리스마에 의한 지배는, 이유를 조목조목 따져가며 차분한 논리로 풀어가기 보다는 ‘그냥 저질러 버리는’ 식의 위험도 도사립니다. 그러다 카리스마적 자질이 부족하다 싶으면 그 정당성을 의심하며 반기를 들고 자신이 꿰차앉겠다는 욕심도 부립니다.
애와 어른을 가르는 기준
언제부턴가 저는 애와 어른을 가르는 기준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더라도 자기중심적이고 남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애 수준이고, 많이 어리더라도 약속을 잘 지키며 남에 대한 배려를 잘하는 사람은 의젓한 어른이라 보고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다른 것은 소홀해도 괜찮다’는 면죄부가 주어져 왔기 때문인지, 한국엔 유명대학 출신의 ‘나이든 애들’도 많아졌습니다. 공부는 사람능력의 하나인데 점수따기 병폐가 만연된 가운데 정치와 학벌이 미묘하게 얽혀 있습니다. 정치가가 품격을 갖추어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실행하지 못하면서, 유명대학 간판을 입신출세의 평생 기득권으로 향유합니다.
돈키호테와 같은 허영심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누구에게든 어느 정도 허영심이 자리합니다. 한데 ‘우쭐의식’이 크면 세상이 겉돌아 갑니다. 가끔은 우쭐의식을 내던지고 겸허함을 보일 때 엄청난 능력으로 거듭날 수 있겠습니다만, 대개는 그간 살아오면서 세워왔던 자존심에 금이 갈까 무척 두려워합니다. 깜냥이 아닌 정치가가 허영심에 들떠 국민의 자존심이나 명예를 훼손시킬 때는 부아가 치밉니다. 엉덩이에 뿔이 난 못된 송아지를 보는 격입니다. 베버도 위의 책에서 “국민은 이익의 침해는 그냥 넘어가더라도 명예의 침해, 그 중에서도 독선에 의한 설교조의 명예훼손은 단연코 용납하지 않는다”고 피력합니다(p. 84).
약성(藥性)이 독성을 넘어야
남을 배려하는 품성일 때가 어른이라 하더라도, 애와 어른의 구별이 힘든 곳이 정치세계입니다. 정치는 심정적 품위를 중시하는 윤리와는 그 영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공적인 폭력을 동원하여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이라는 특수한 수단을 갖고 운영됩니다. 열정과 판단력이 요구됨은 물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지게되는 복잡한 영역이 정치입니다.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권모술수나 잔인한 수단도 이용되기에, 유치해 보이기도 하고 겁나고 몰인정하게 비춰지기도 합니다. 정치의 주된 일이 이해상충의 조정이다 보니 손해보는 측은 정치가를 악(惡)으로 치받곤 합니다. 경쟁관계가 심해진 요즈음 각박함이 앞서는지라 협조관계를 이끌어내기가 더더욱 어렵습니다.
사회가 분화되어 가면서 모두를 휘어잡는 카리스마 정치도 힘들어집니다. 어느 지도자가 좋은 의도로 ‘나를 따르라’며 열정을 호소해도 건성으로 치부되기 일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살이에서 진득하게 경청할 여유도 없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각자가 밀치고 나오며 자기주장을 하는 듯 보이지만 넘치는 정보 속에 귀가 엷어져 있어 주변상황에 쉽게 흔들립니다. 정치무대는 선(善)과 선이 상봉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반목과 질시가 툭 삐져나오기도 하고 비협조와 불복종으로 삐딱하게 판을 틀어버리기 쉬운 삶의 현장입니다. 그런 질척한 삶의 현장이지만 좌절하지 않고 약성(藥性)이 독성을 넘을 수 있도록 심지있게 고뇌하는 자가 성숙한 정치가일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