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한국 경제와 글로벌 대기업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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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7년 3만 달러를 넘는데 이어 2019년이면 G7국가인 이탈리아를 따라잡는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2019년 34,268달러로 이탈리아의 33,388달러보다 많아진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20년에 가면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36,750달러로 일본의 38,174달러에 근접, 잘 하면 2020년대 초반 일본을 추월할 기세라는 게 IMF의 예측이다. 영국의 글로벌 싱크탱크 경제경영연구센터(CEBR)는 2030년에 가면 우리나라가 GDP 규모에서 세계 7위로 올라설 것으로 내다봤다. 15년 후면 G7국가 중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와 캐나다도 제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다.
반면 국내를 돌아보면 영 딴 판이다. 2~3%대의 낮은 성장률이 5~6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년 연속 1% 안팎에 머물면서 일본식 장기침체 또는 디플레이션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8% 안팎까지 낮아졌다지만 집집마다 자녀들이 취직을 못해 아우성이다. 또한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는 50대 초중반의 중년들이 음식점 등 자영업에 대거 진출, 제 살 깎아먹기로 공멸(共滅)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식상할 정도이다. 일찍 은퇴한 아버지와 취직 못한 자녀들을 쳐다보는 어머니의 한숨소리가 한두 집 건너 들린다고 해도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1960년대 초반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이후 요즘처럼 국민들은 물론 기업들의 사기와 자신감이 떨어진 적이 없는 것 같다. 무엇이 우리 경제와 사회를 이처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급격한 성장에 따른 성장통(成長痛)으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의 성장세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우리 경제와 사회, 정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자에게 세계경제의 판도를 하나의 표로 보여 달라고 하면 내놓는 것이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이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이다. 1993년의 경우 미국 기업이 161개, 일본 기업이 128개인 반면 중국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22년이 지난 작년의 경우 미국 기업은 128개로 감소하고, 일본 기업은 54개로 반토막 아래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중 중국 기업은 제로에서 무려 98개로 미국에 근접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추월한데 이어 2012년에는 글로벌 500대 기업 수에서도 일본을 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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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500대 기업은 전투수행능력에서 항공모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전투의 성패는 항공모함의 수와 성능, 지휘력 등에 달려있을 것이다. 아울러 항공모함에 딸린 전투기와 구축함, 잠수함 등과 같은 중소기업들이 얼마나 대기업인 항공모함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서로 도와 가느냐에 따라 함대 또는 경제 전체의 경쟁력이 좌우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500대 기업 수는 1993년 12개에서 2015년 17개로 5개 늘어났다. 미국과 일본이 크게 줄어든 것에 비하면 선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구 800만 명의 스위스가 12개, 인구 1,700만 명의 네덜란드가 14개 보유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앞으로 우리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스위스와 네덜란드는 이들 글로벌 대기업들을 발판으로 1인당 GDP가 각각 8만 달러와 5만 달러를 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500대 기업이 17개라지만 업종을 보면 에너지(정유, 전기, 가스 등),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전통제조업(10개)에 치우쳐있다. 나머지는 전자업이 3개, 유통∙무역업과 금융업이 각각 2개씩이다. 반면 스위스와 네덜란드의 글로벌 500대 기업에는 전통제조업보다 금융, 의약 및 화학, 식품업종이 훨씬 더 많다. 스위스의 경우 금융업이 4개, 의약∙화학업이 2개, 식품업이 1개, 호텔∙레저업이 1개를 차지하고 있다. 네덜란드 또한 금융업이 4개, 식품업이 2개, 의약∙화학업이 1개, 소비재생산업이 1개로 앞으로 부가가치가 크게 늘어날 분야에 주로 포진하고 있다.
G7에 속하는 선진국이면서도 1인당 소득에서 우리나라에 추월당할 처지의 이탈리아를 살펴보자. 고령화와 정치 불안 등 여러 가지 다른 요인이 있겠지만 글로벌 대기업이 몇 개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이탈리아의 글로벌 500대 기업은 9개로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업종 또한 금융업 4개를 제외하면 자동차, 정유, 전력, 유통, 통신업에 각각 1개가 있을 뿐이다.
2015년 전 세계 기업간 인수∙합병(M&A)은 4조6,000억 달러(5,400억원)로 이전 최대치였던 2007년의 4조3,000억 달러를 넘어 사상최대치를 기록했다. 세계 1위와 2위 기업이 합병하거나 2위 기업이 3~4위 기업을 합병, 1위로 올라서고 있다. AB인베브(1위)와 사브밀러(2위)는 합병을 통해 세계 맥주시장의 3분의 1을 장악하게 되었다. 화이자와 앨러간의 합병은 세계 1위 제약사를 탄생시켰다. 에너지기업 로열더치셸이 BG그룹을 인수한 것은 저유가에 대응하는 동시에 엑슨모빌과의 1위 다툼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글로벌화의 진전과 저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대기업들의 이 같은 합종연횡, 즉 M&A는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으로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초대형 글로벌 기업들이 나타날 것이고 각국은 이들 초대형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결론은 한 나라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글로벌 대기업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전통제조업을 지키는 동시에 금융과 의약∙화학 등에서도 신성장동력, 즉 글로벌 대기업을 키워내야 하는 이유이다. 지난해 7조원이 넘는 기술수출계약을 맺은 한미약품이 대표적인 예이다. 영국의 CEBR도 한국 경제의 강점이 제조업에서 기술산업으로 옮겨가는 가운데 ‘친기업 성향(business is good for the economy)’을 가진 유권자와 공무원, 정부가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아울러 거대시장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등을 노릴 수 있는 식품과 화장품 등에서도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아울러 항공모함 혼자서 싸우는 것이 아니므로 전투기와 구축함 등의 역할을 수행할 경쟁력 있는 글로벌 중소기업들도 함께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경제가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넘어 4만~5만 달러시대를 열면서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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