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은 이제 가상화폐에 대해 단호한 결정을 내릴 때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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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거래소에 ‘기획 사기’ 행태도 벌어지고, “Bitcoin 거래의 95% 이상이 위장”
- 가상화폐가 법화(法貨)를 대체한다면 중앙은행의 독점적 발행권 침해가 아닌가?
- 가상화폐는 과연 ‘화폐’ 인가? 투기 ‘자산’ 인가? 원초적 의문은 끝없이 이어져
- 정부, “가상화폐” 빙자한 범죄 행태를 더 이상 방관하면 속수무책에 직면할 것
2009년 1월 무렵 익명의 창안자가 인류 최초의 가상화폐(중앙은행이 아닌 민간이 발행한 가치의 전자식 표시; digital representation of value) ‘Bitcoin’이 세상에 출현한 지 이제 10여 년이 지나가고 있다. 이후, 수 많은 가상화폐들이 속속 등장했고, 현재 전세계에서 거래되는 가상화폐만도 800여 종목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종목의 시가 총액 합계는 무려 1,773억 달러(약 186조원 상당)에 이른다는 발표도 있다. 종목별로 살펴보면 최상위 종목인 Bitcoin이 934억 달러, Ethereum이 179억 달러, XRP가 138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 3개 종목의 시가 총액이 전체 가상화폐 시가 총액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CoinMarketCap; 2019. 4. 22)
가상화폐가 출현한 배경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충격으로 중앙은행이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기존 통화 및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 및 반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다.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P2P 형식 네트워크를 통한 지급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일찌감치 도입되어 이제 거의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래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전문 거래소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와 함께, 가상화폐와 관련된 범죄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 발표로도 지난 2015년~2017년 6월까지 기간에 적발된 가상화폐와 관련된 각종 범죄 건수가 무려 714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투자 모집 사기 및 유사 수신 행위 등이 42%, 자금세탁 거래 등이 30%, 해킹 및 컴퓨터 사기 행위가 27%를 차지한다. 범죄 행태도 고도로 지능화되고 복잡 · 다양화되고 있어, 이전에는 주로 마약 밀거래나 랜섬웨어 등 음성적(陰性的) 범죄에 활용되었으나, 최근에는 사기 · 횡령 등 다양한 범죄에 활용되는 등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게다가, 가상화폐 거래 자체가 익명성을 띄고 있어 관련 범죄를 적발하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알려진다.
한편, 가상화폐 시장이 급격히 확장되면서 과연 가상화폐가 ‘화폐’ 본연의 실체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가, 하는 원초적 의문을 비롯하여 태생적 한계에서 오는 심각한 부작용에 대한 논란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 와중에, 정작 시장 규율이나 제도 정비는 태부족하여 심각한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美 CoinWise社의 충격적인 폭로; “Bitcoin 거래 95%는 위장(僞裝)”
지난 4월 초, 美 CoinWise Asset Management 社는 전세계 81개 가상화폐 거래소를 대상으로 매매(賣買) 거래 상황을 분석한 결과를 美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했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의 ‘위장(僞裝)’ 거래 실상을 폭로하는 내용이었다. 의혹이 제기된 위장 수법은 매수/매도를 기계적으로 맞추어, 자사 구좌에서 매매를 반복해서 외형을 부풀린 것으로, Bitcoin 종목의 경우에 실제 거래된 것은 공표되는 거래량의 약 1/20에 불과할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해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심지어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거래소들끼리 짜고 서로 상쇄되는 매수/매도 거래도 많았다. 이는 가상화폐 업계의 신뢰를 근본에서 뒤흔드는 것이다. Coin-Wise社가 밝힌 하루 거래량 60억 달러 중 실제로 일어난 고객 거래는 2억7,300만 달러에 불과하고, 이를 근거로 추산하면 위장 거래는 공표된 거래량의 95% 이상이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권위를 인정받아 온 CoinMarketCap(MC)이 집계하는 거래량 데이터도 각 거래소가 고의로 부풀린 결과를 집계해 온 셈이다.
CoinWise社가 거래소들의 거래 데이터 위장(僞裝) 관행을 조사한 목적은 Bitcoin ETF 인가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투명성이 높은 거래소를 선정하여 거래 데이터를 ETF 가격에 반영하면, SEC가 지금까지 거래 데이터 투명성 결여 및 시세 조작 우려 등을 이유로 Bitcoin ETF 승인을 거부해 온 태도가 변화할 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SEC는 Bitwise社 및 VanEck社의 Bitcoin ETF 신청 심사 결과 발표를 연기했고, Bitcoin ETF 승인에 대해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 가상화폐 종주국이던 중국 및 일본이 단호한 조치를 취한 경위
중국은 불과 얼마 전까지 가상화폐의 본거지로 불릴 만큼 가상화폐 채굴 및 거래가 성행했다. 당시, 중국은 전세계 Bitcoin 채굴의 70%, 거래량의 90%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인들 사이에 가상화폐 투기 광풍이 불어 시장 버블 우려가 높아지고, 사기 등 범죄가 만연하면서 중대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자, 중국 정부는 약 2년 간의 ‘시장 축소’ 캠페인 끝에 ‘전면 금지’ 수준의 강력 규제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는 원래부터 가상화폐를 규제하는 법령을 제정하지 않고, 가상화폐를 법화(法貨)로 인정하지도 않아 은행 시스템에서 지급 결제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았다. 단, 투자자 보호 및 금융 리스크 관리를 위해 행정 조치를 통해 규제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2013년에 Bitcoin을 “가상 자산(virtual commodity)”으로 정의하고, 투자자들이 자유로이 온라인 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리스크가 커지자 2017년 9월, 가상화폐 거래를 단속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주요 내용은 ① ICO 행위 불법화, ② 가상화폐 거래 플랫폼 규제 강화, ③ 금융기관들의 직접 혹은 간접으로 ICO 참여 금지 및 가상화폐 거래 구좌 개설 금지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어서 2018년 1월에는 ④ 가상화폐 채굴(mining) 사업 규제를 강화했고, 드디어 금년 4월 초에는 國家發展改革委員會(NDRC)가 가상화폐 채굴을 ‘전면 금지’ 함으로써 가상화폐의 공급을 원천 봉쇄하는 강력 조치를 취했다.
한편, 가상화폐 거래에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을 유지해 오던 일본도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불법 유출[도난] 사건 등 범죄 행위가 잇따르자, 최근 들어 ‘거래소’를 중심으로 규제를 대폭 강화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여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4월 초 일어난, 아직도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Bitcoin 가격 급등 사태다.
일본 금융청은 ‘암호 자산[가상화폐]’을 둘러싼 사기(詐欺) 및 악질 상행위에 대한 주의 경보를 발령하는 동시에,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규제 강화에 적극 나서서, 관련 ‘자금결제법’ 및 ‘금융상품거래법’ 등을 개정하는 중이다. 주요 내용은, 가상화폐를 법령 상 정식으로 ‘암호 자산’으로 개칭하고, 거래소들에게 고객 수탁 자산을 신뢰성이 높은 방법으로 관리하도록 의무화하고, 권유 광고 행위에 대한 규제 강화, 부당한 시장 가격 조작을 금지하는 등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다.
■ 美 SEC 및 대형 금융기업들이 가상화폐 시장에 주는 혼란스러운 시그널
가상화폐 투자자 혹은 시장 관측자들은 시장 현황을 이해하기 위해 美 증권거래위원회(SEC)나 주요 상품거래소 또는 대형 금융기업들의 가상화폐에 대한 기본 인식 자세나 실제로 대응하는 방향에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기 일쑤다. 따라서, 이해 당사자나 관계자들은 이들의 행동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선, 美 SEC는 기본적으로 투자자 보호, 공정하고 규율 있는 효율적 시장을 유지하고 자본 조달을 촉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정부기관이다. 그리고, 근년에 많은 미국 투자자들이 시장에 직접 참여하고 있고, 美 거래소들이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게 되자, 투자자 보호 및 시장 규제 중요성을 더욱 중하게 인식하고 있다.
최근 SEC의 정책 방향과 관련하여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바로 ‘Bitcoin ETF’ 승인 여부이다. 실제로, NYSE를 통해서 Bitwise社, CBOE를 통해서 VanEck社가 제출한 2 건의 Bitcoin ETF 승인 신청에 대해 SEC가 결정 시한을 재차 연기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SEC가 이처럼 신중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감안, Bitcoin ETF 승인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고, 2019년 내에 Bitcoin ETF 승인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美 SEC는 종전부터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향해 수시로 경고를 발령해 왔다. 특히, ICO를 내세워 자금 조달을 계획하는 기업들 주식에 유의할 것을 환기시키고, 일부 관련된 기업 주식 거래를 정보 공개 불충분을 이유로 중지시키기도 했다. SEC가 가상화폐 관련 기업들이 불법 부당한 이익을 추구한다고 의심하는 경로가 바로 시장 조작(pump-and-dump, market manipulation)이다. 주로 시가 총액이 작은 종목을 대상으로 거짓 정보를 흘려 가격 상승 혹은 하락을 유도한다고 보고 있다.
한편, 최근 Cboe Global Markets (시카고옵션거래소)는 새로운 만기의 가상화폐 선물(先物; futures)상품을 더 이상 제공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Cboe社는 2017년 12월, 사상 처음으로 Bitcoin 선물을 상장했고, 뒤따라, 경쟁 거래소 CME(시카고상품거래소)도 같은 상품을 상장하자 투자자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Bitcoin 가격이 사상 최고로 폭등하도록 촉발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정통 대형 금융기업들의 가상화폐에 대한 자세 변화도 시장에 중요한 시그널을 제공한다. 美 최대 금융기업 JPMorgan은 가상화폐 시장에 대단히 혼란스러운 신호를 보내고 있다. 다이먼(Jamie Dimon) 회장은 2017년에 Bitcoin은 사기(詐欺)일 뿐이고, Bitcoin을 거래하는 직원을 보기만 하면 바로 해임할 것이라고 말해 유명세를 치른 적이 있다 (그는 뒤에 이 발언을 취소했다). 얼마 후 Bitcoin 적정가치(fair value)는 2,400달러라고 발표해 Bitcoin 보유자들의 큰 원성을 산 적도 있다.
그런 JPMorgan社가 美 달러화에 1 對 1로 연계된 자사(自社) 가상화폐 ‘JPM Coin’을 발행할 것이라고 발표해서 시장에서 ‘멍청한 생각(Wet Noodle)’ 이라며 냉랭한 반응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발표에 맞춰서 시장에는 기대감이 높아져 Bitcoin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한편, Goldman Sachs도 한 때 가상화폐 중개 전담 데스크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가 이내 동 계획을 취소하고 만 전력이 있다.
■ 가상화폐의 본질적인 ‘실체’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최근, 국내에서 열린 한 포럼(‘분산경제포럼’ 2019)에서 대표적인 가상화폐 부정(否定)론자인 루비니(Nouriel Roubini) 뉴욕大 교수와 가상화폐 이더리움(Ethereum) 창업자 부테린(Vitalik Buterin)이 가상화폐의 본질을 두고 불꽃 튀는 논쟁을 벌였다. 종전의 토론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이론가들의 본질 가치에 대한 의문 제기와, 현업 종사자들의 낙관적 옹호 주장이 맞붙는 평행 대결 양상이 반복된 것이다.
루비니(Roubini) 교수는 종전 지론대로 가상화폐는 ‘사기(詐欺)’라고 주장했다. 기존 금융 시스템이 가진 문제점들과는 별도로, 지금 가상화폐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세 조작, 자금 세탁 등 불법 행위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경고도 했다. 그가 지적하는 것은 ‘脫중앙화’, ‘분산계정 처리’를 표방하는 가상화폐가 실제로는 일부 극소수에 중앙화 되어 있어 시장이 이들 소수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블록체인 기술의 탁월한 장점으로 꼽히는 ‘익명성’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한다. 금융 거래에서 익명성이 필요한 주체는 대체로 범죄자들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정부도 익명성 뒤에 숨어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를 허용할 수는 없고, 오히려 자신을 보호하려면 실명을 드러내고 거래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가상화폐 옹호론자인 부테린(Vitalik Buterin)씨는 가상화폐는 국제 송금 등 자금 이체 거래에 우수한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중앙화’ 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간들의 금융 거래 과정을 검열하는 등, 기업 경영이나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커다란 문제라고 반박한다.
한편, 이런 논쟁과는 별도로, 중요한 현실 문제로, 가상화폐 운영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 역시, 확장성(Scalability), 분산화(Decentralization), 안정성(Safety)이라는 3 가지 과제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는 소위 “삼각 딜레마(Trilemma)”에 있다는 지적이 부각되고 있다. 지급 절차에 태생적 한계가 내재되어 있어, 소수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변동성이 커지고, 가치도 불확실해서 화폐의 본질적 기능인 ‘교환 매개’, ‘가치 척도’,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일상적으로 이용될 길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 한국은행의 독점적 화폐 발행권과 관련한 입장도 명확히 세워야
여기서 좀 생경한 감이 있으나, 우리나라의 화폐 발행 및 통화 관리와 관련하여 법률로 독점적 책임을 보장받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가상화폐에 대한 명확하지 않은 자세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한국은행의 업무를 정한 ‘한국은행법’ 제 47 조에는 “화폐의 발행권(權)은 한국은행만이 가진다”고 정해져 있다. 따라서, 한국은행 이외에는 개인 혹은 법인 어느 누구도 화폐를 발행할 수가 없고, 만일 이를 어겨서 ‘다른 화폐’를 발행하면 법령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화폐 단위는 ‘원’으로 한다”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은행권은 법화(法貨)로써 모든 거래에 무제한으로 통용된다고 정해 놓아 무한 신뢰의 통용성을 부여했다. 한편, 우리나라 형법에는 통화 유사물(類似物)의 제조, 수입 또는 수출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조항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거의 모든 가상화폐들은 국적(國籍)도, 발행 주체도 불명한 거래 대상이지만, 화폐라는 이름을 붙여서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이는 한국은행의 독점적 통화 발행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히 있을 뿐 아니라, 은행 등 허가된 채널을 통해서만 거래되는 통화의 교환[환전] 및 대외 지급 결제[송금] 행위가 정체가 불투명한 사설(私設) 채널을 통해 규제도 허술한 경로로 국내는 물론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일, 적법한 허가나 인증 절차 없이 가상화폐 형태로 임의의 가상 채널을 통해 해외로 이체된다면 이는 분명히 현행 법령을 위반한 것이고 엄연히 불법 외화 유출인 것이다.
한편, 가상화폐 창안자들을 포함하여 옹호자들은 당초부터, 민간들이 자유로이 창안해내는 가상화폐(들)이 궁극적으로 각국의 현행 ‘법화(Legal Tender)’를 구축(驅逐)하고 보편적인 교환 매개 수단 역할을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을 신뢰하고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경우가 태반일 거라는 생각이다. 이는 다분히 한국은행의 독점적 통화발행권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고, 더욱 확산되어 많은 종목의 통화가 뒤섞여 유통되면, 필경 엄청난 대혼란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가상화폐 거래 및 이를 중개하는 거래소들을 단순히 인터넷을 이용한 통신판매 채널 위상(位相)으로 규제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가 법령으로 정하여 중앙은행에 부여한 독점적 통화 발행권을 대체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선언하며 도전하고 있는 대상들을 생산, 거래하는 주체들을 이처럼 소극적으로 안이하게 대응해서는 도저히 안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명확한 규준’과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야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상화폐 투자 실태는 공식 집계가 없어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최근 한 금융 소비자 보호 단체가 조사한 결과, 서울 · 수도권 및 6개 광역시에 거주하는 만 25~64세 성인의 7.4%가 현재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대상 지역 인구 3,586만명(통계청; 2017년 12월)에 대입하여 계산하면 우리나라 가상화폐 투자 인구는 대략 265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와 함께, 가상화폐 시장 규모도 급격히 확대되어 조사 시점인 2018년 1인 당 평균 투자액은 전년 대비 무려 64%나 증가한 693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산출하면 총 투자 규모는 약 20조원에 이른다. 다른 통계에서는 가상화폐 시장의 하루 거래 대금이 이미 코스닥 시장을 상회한다는 보고도 있다.
한편, 많은 선진국들은 이미 가상화폐에 대한 기본 인식을 “암호 자산” 이라고 확정하고 시장 규제 방안을 진지하게 고심하고 있고, 앞서 소개한 것처럼 실제로 규제 강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주로, 가상화폐 거래를 철저히 감시할 시스템 구축과 함께 ‘거래소’에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하는 등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국제금융 규제 기구인 바젤(Basel) 위원회도, 최근, 각국 금융 감독 당국에 Bitcoin 등 ‘가상자산(crypto assets)’ 및 이들이 거래되는 플랫폼이 금융 시스템 리스크를 증가시키고 있으므로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칠 잠재적 위험성을 감안하여 이에 대한 건전한 감독 체계를 강화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우리 정부 당국이, 제도권 금융기관의 수신/여신 거래 수준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명확한 준칙을 체계 있게 정립하고, 가상 공간에서 매매/예탁 영업을 하는 거래소 운영을 정밀 감시하여 투자자들을 보호할 최소한의 시스템을 갖추게 하는 데 지극히 태만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가령, 가상화폐가 (아직은) 장래에 화폐로써 기능할 것을 기대할 아무런 실체가 없고, 단지 가격 변동성을 걸고 사고/파는 투기적 가상 ‘자산’에 불과하다면 이는 ‘카지노’ 게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굳이 당분간 이를 허용하려 하면 오히려 ‘사행(射倖) 산업’에 준해 규제하는 것이 마땅할 일 아닌가?
■ 우선 불법 · 방만 경영이 횡행하는 거래소를 정비할 것이 급선무
우리나라에는 현재 약 200여 개의 거래소가 운영되고 있다고 추정된다. 현재는 요건을 갖추어 ‘통신판매업자’로 등록하면 누구나 가상화폐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실체가 분명치 않은 거래소에서 유사 수신 행위 등이 판을 치는가 하면 고의적인 시장 조작으로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자금을 편취하는 사기(詐欺) 행위도 빈발한다. 마약 거래나 자금 세탁 등 범죄에 예사로 동원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거래소에서 온갖 불법이 횡행하는 형편이다.
이제라도 정부 당국은 규모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든 가상화폐 거래소의 운영 실태를 일제히 점검하여 불법 행태들을 발본 색출하여 이를 단호히 척결하고, 한시 바삐 정통 금융 시스템에 준하는 “암호 자산 거래소 운영에 관한 규정 및 지침”을 제정하여 모든 거래소를 당국의 철저한 감시 · 감독 하에 두어야 할 것이다.
주지하는 바이나, 일국의 통화는 바로 주권(主權)의 상징이다. 그리고, 일상 통용하는 통화[지폐]는 중앙은행(궁극적으로 국가)이 소지자에게 써 준 차용증서(IOU)와 다름이 없다. 가상화폐가 향후,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화(法貨)’를 대체할 잠재성을 가진 것으로 인식한다면 더 더욱, 모든 ‘거래소’를 최소한 금융 시스템에 준거하여 통제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사족 한마디. 여태까지 암흑 속에서 부풀어 오른 가상화폐 시장은, 마치 악성 종양이 한꺼번에 터져 온 몸으로 번지면 치명적일 수 있는 것처럼, 자칫 잘못 건드리면 금세 파열될 임계(臨界) 상황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 가상화폐 시장 정비에 대응하는 접근법에서는 ‘충분한 완충(緩衝)장치’를 제공하면서 ‘섬세(纖細)한 절차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투기 열기로 잔뜩 팽창되어 있는 시장 버블을 서서히 냉각시키면서 순차적으로 사그라들게 만들어갈 지혜로운 묘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이미 촌각(寸刻)을 지체할 수 없는 시급한 과제로 다가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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