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의 한국 대통령 전 상서(前 上書) <23> 사회적 합의가 있는 정책을 택하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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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25년’ 중에 딱 한번 일본경제가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거센 당내 저항을 극복하고 5년 5개월의 총체적 구조개혁으로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한 고이즈미 내각(2001~2006년) 때가 바로 그 때였다.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개혁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장래를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대통령에게, 고이즈미가 편지로 전하는 충언을 한번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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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성역 없는 개혁’이어야 한다.
여당의 집권 기반이 취약하여 고통을 수반하는 개혁을 벌일 때가 아니라는 정치적 현실론, 경제가 어려워 구조개혁을 추진할 상황이 아니라는 경제적 상황론에 밀려 한번 성역(聖域)을 인정하면 개혁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개혁은 아무도 감히 손댈 수 없었던 성역을 겨냥해야 한다. 개혁의 타깃으로 종래의 성역, 오랜 무풍지대를 겨냥해야 하는 것이다.
2차 대전 후 오랜 안정 성장 속에 변혁을 꺼리는 일본 같은 나라에서도 ‘성역 없는 개혁’에 관해서는 객관적인 사회적 합의가 있기 마련이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그런 성역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또 다른 것에 앞서 성역을 국가 의제로 삼음으로써, 개혁 논의의 실질적, 도덕적, 정치적 우위를 선점해야 한다.
어느 나라의 어느 때이건, 해결이 시급하고도 절실한 국가 과제가 무엇인지, 또 그 과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민과 정부와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정색을 하고 그 국가과제의 해결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그 개혁대상 부문이 국가가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 부문으로서 정치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역’이기 때문이다. 또 성역으로 대우 받아온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부문의 개혁에 대한 반대가 심하고 또 정치적 영향력도 커져서, 정치적 타격을 감수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감히 국가 개혁 과제로 다룰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내 개혁 과제들은 대부분 90년대 ‘잃어버린 10년’ 불황 속에서 오래 동안 사회적 논의가 있었고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합의에 이른 것들이다. 다만, 추진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그 필요성을 부처나 국회가 인정하면서도 개혁 추진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예가 하시모토 개혁의 과제들이다.
내 개혁의 큰 줄기는 이미 하시모토의 6대 개혁(행정개혁, 재정구조개혁, 금융시스템 개혁, 사회보장구조개혁, 경제구조개혁, 교육개혁)을 통해 정책적 결정까지 나와 있었다. 고이즈미 개혁의 캐치프레이즈까지 하시모토 개혁에서 따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개혁에 성역 없다’거나, ‘관에서 민으로’ 또는 ‘국(중앙)에서 지방으로’라는 고이즈미 개혁의 키워드들도 모두 하시모토 개혁 논의 때 이미 나온 것이다. <주 : “도시재생, 부실채권정리, 지방분권 등 대부분의 개혁 과제는 고이즈미 정권이 착수한 것들이 아니다. 하시모토 6대 개혁으로 시작하여, 오부치, 모리 정권 등이 조금씩 관료들에게 맡겨 준비해 왔던 것들이다. 장기불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해 왔다. 고이즈미의 공적은 참신한 정책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모두를 대신하여 결단을 내리고 (개혁 추진을) 지시 내린 것은 아닐까?” 기자의 눈, ‘고이즈미개혁이라는 것은 무엇이었나’, 마이니치 신문 2006년 5월 12일 자.>
개혁추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경제상황이 나빠져서 또 구조개혁에 대한 당 내외의 개혁 저항세력에 의해 그 추진이 좌절되어 왔던 것이었다.
국가를 위한 진정한 개혁의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무수한 불특정 국민에게 이로운 것이지만 특정 지역민이나 개별 부문이 원하지 않는 정책을 택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개혁의 리더십은 또 정책 전문가가 추진의 필요성을 강변하는데 관료나 국회의원이 추진을 바라지 않거나 꺼리는 정책을 택하는 데서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Center Pin 핵심 정책을 정하라
모든 바람직한 정책, 모든 듣기 좋은 정책을 한꺼번에 구상하고, 기획하여, 국민과 국회를 설득하고 추진하여 마무리까지 할 수는 없다. 많은 걸 하려고 할수록 그 실현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걸 알면서도 (총선이나 대선의 공약 등에 자주 등장하듯이) 모든 걸 동시에 하겠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적 리더십이나 내각에 대한 최소한의 지지기반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주요한 정책, 중요한 개혁과제 간의 경중(輕重)과 우선순위를 정해 해당 정부 조직과 관련 부들에 그것을 인지 시켜 놓아야 한다.
개혁의 선택과 집중을 위해, 모든 개혁의 추진으로 이어질 개혁 과제, 소위 ‘센터 핀(center pin)’ 과제를 정하라. 나는 매해 개혁의 center pin 정책 과제를 정했다. 2001년은 골태방침과 특수법인(공기업) 개혁을, 2002년은 부실채권정리와 긴축재정, 2003년은 도로공단 민영화와 ‘3위1체(지방재정)’개혁, 2004년 가을부터는 우정민영화 기본방침 책정 그리고 2005년에는 우정민영화를 최우선 국가과제로 정하고, 그 개혁과제 추진이 여타 개혁과제 추진을 선도하도록 했다.
Center pin의 center pin 정책은 역시 우정민영화였다. 우정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된 것을 신호탄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개혁지지 세력으로 물갈이를 하여, 우정민영화 법의 국회 통과를 시작으로 세출세입 일체개혁, 정책금융기관 통폐합 등 여타 잔존 개혁과제와 법을 일사천리로 국회 통과시켰다.
리더는 누가, 언제 묻더라도 ‘지금의 center pin은 OO이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순서> 왜 지금 개혁의 리더십인가? 제 1부 제대로 된 잠룡이라면 제 2부 대권을 잡고 나면 개혁의 무대는 이렇게 꾸며라 제 3부 모두를 개혁에 동참시켜라 제 4부 논란이 많은 개혁과제를 택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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