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소통의 ‘형식’은 합격, 정권성공은 이제 ‘내용’에 달렸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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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20여 일이 지났다. 출발이 산뜻했다. 그 중심에는 무엇보다 ‘신선한 소통의 형식’이 있다. 출범 초 대통령이 국무총리 내정자와 비서실장을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직접 소개했다. 국민들이 보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대통령이 수석비서관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고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커피 잔을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신문과 TV로 보도됐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백악관이나 웨스트윙 같은 미국 정치 드라마에서 보면서, 국민들이 부러워했던 장면이다. 많은 국민들이 환호했고, 지지율은 80%를 넘어섰다.
‘쇼’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지난 수 년 동안 신선함도, 혁신도, 하다못해 ‘소통을 위한 쇼’라도 해보려는 노력마저 보여주지 못했던 보수의 입장에서는, 정말 ‘심각한 위기감’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필자도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 계속 잘 하면 당분간 보수는 정권을 다시 찾아오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대부분의 정권은 출범 초에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다. 우리나라의 과거 정권들도 그랬다. ‘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전 정부가 소통에 관한한 유례없이 닫혀 있었던 터라, 국민들은 개방적이고 소탈하며 겸손해 보이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더욱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외딴 관저에 주로 머물면서 국민과의 대화인 기자회견을 거의 하지 않고, 빈번히 토론해야할 장관이나 수석비서관들과도 대화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지지 않았던가. 그런 모습의 대통령을 지켜보면서 답답해했던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신선한 소통의 형식을 목격하고 기대감을 높여갔다.
소통의 형식을 정하고 운영하는 수석비서관의 명칭도 아예 ‘홍보수석’에서 ‘국민소통수석’으로 바꿨다. 일방적인 홍보가 아니라 진정한 소통을 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자리에는 윤영찬 수석이 임명됐다. 동아일보와 네이버 출신이니,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기성의 대중미디어와 새로운 시대의 주류인 인터넷 미디어를 모두 아는 인물을 소통 책임자로 앉힌 셈이다. 잘 하면 소셜 인터넷 시대에 맞게 소통의 틀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겠다는 기대도 생겼다.
게다가 청와대 비서실의 비서관급 이상에 대한 인사를 한창 하던 때, 이호철-양정철씨가 모두 해외로 나갔다. 소위 ‘3철 측근 전횡’을 우려하는 민심을 대하는 문 대통령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지는 결정이었다. 이 장면에서는 중도와 보수층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월 본란의 칼럼(‘대통령의 소통과 정치 선진화‘)에서 ’소통의 틀‘을 바꾸자고 강조했었던 필자가 볼 때도 소통의 형식은 지금까지는 합격점이었다. 물론 앞으로 더 시도해볼 만한 소통 방법들은 많다. 대통령이 공언한대로, 참모들과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며 수시로 소통해야 한다. 지시가 아닌 토론 말이다. 일본 총리실처럼, 국민이 대통령의 동선과 그가 만난 사람들의 명단을 언론을 통해 알 수 있는 형식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 메르켈이나 캐머런처럼, 대통령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국민과 만나기 위해 슈퍼마켓과 지하철을 자주 찾으면 좋겠다. 오바마나 아베처럼, 현안이 있으면 언론에 수시로 나와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는 형식도 만들면 좋겠다. 선진국의 최고 정치인들은 그렇게 한다.
여기에 더해, 소셜 인터넷 시대에 걸 맞는 형식도 갖춰 가면 금상첨화다. 청와대의 언론 브리핑을 매일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그 파일을 국민이 언제든 열어볼 수 있게 인터넷에 올려놓고, 일부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 회의 등 청와대의 회의도 역시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올려놓는 것이 좋겠다. 모두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소셜 시대의 소통 형식들이다.
’소통의 형식‘에서 합격점을 받았지만, 본격적인 승부는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소통의 내용‘이다. ’형식‘이 정권 성공의 필요조건이라면, ’내용‘이야말로 정권 성공의 충분조건이다.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이다. ’냉엄한 현실‘은 벌써 시작됐다.
우선 총리와 장관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암초‘를 만났다. 문 대통령이 5대 인사원칙, 즉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문제가 있는 사람은 고위공직자 임용에서 원천 배제한다는 공약을 내걸었었는데, 몇몇 후보자가 여기에 해당이 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것이다. 야당이 반발하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선거 캠페인과 국정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만큼 ’현실‘은 만만치 않다. 의도와 패기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구체적인 정책에 들어가면 ’현실의 무게‘는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당장 비정규직 문제, 부동산 대책 등 경제 정책들이 구체화되고 시행에 들어가면, 어떤 암초가 드러날지 모른다. 내신과 수능의 절대평가 같은 교육공약도 민감한 화약고다. 현실은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경제사회 분야의 정책은 그나마 조금 낫다. 결과가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으로 귀결되더라도, 국민들이 5년, 10년 함께 고생하면 다시 ’복구‘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보는 다르다. 안보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지금의 북한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의 북한과는 또 다르다.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과거 노무현 정부 때처럼 동맹파와 자주파가 국가의 노선을 놓고 충돌한다면, 그 정도는 아니라도 의도치 않은 국내외 요인으로 한미동맹이 흔들려 안보가 위기에 빠진다면, 그 파장은 심대할 것이다. 경제와는 달리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안보와 경제사회 현실은 심각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진보는 물론, 중도와 보수의 국민 모두 지금 바라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소통의 ‘형식’을 잘 만들어가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그 틀을 통해 지지층뿐만 아니라 중도와 보수 국민의 목소리도 경청하며 ‘내용’까지 잘 채워 ‘통합의 정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민심은 냉정하고 무섭다. 소셜 인터넷 시대에는 더 그렇다. 잘 할 때는 ‘환호성’도 크지만, 실망하면 ‘비난’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이 소셜 인터넷 시대의 민심이다. 해법은 ‘겸손’에 있다. ”나는 다르다“, ”나는 모든 문제를 단칼에 완벽히 해결해낼 수 있다“라는 오만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좋은 의도’나 집권 초기라는 ‘힘’을 믿고 오버하면 결국에는 냉정한 민심과 냉혹한 현실에 의해 좌초되기 마련이다.
문재인 정부, 소통의 ‘형식’은 갖추었으니, 이제 ‘내용’을 겸손한 자세로 채워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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