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의 편지> 다시는 지리산 종주하지 않을 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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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망설였다. 해마다 순례하는 맘으로 강행했던 지리산 종주였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워 망설였다. "좋아라"며 따라 나서던 제자들까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래서 간만에 집 아이와 가기로 했다. 학위취득 후 귀국한 2000년 초 초등 저학년이던 딸, 아들과 종주를 한 게 가족 종주는 마지막이었다. 이십대 초반 아들을 보름간 구워삶아 종주 길에 나섰다. 이대 등산반 서클 활동했던 딸아이는 선일정이 있어 따라 나서지 못했다. 아마 핑계인듯...(민주 아빠다. 억지로 강요는 않는다)
관측 이래 최악의 더위라는 8월초 새벽 4시 기상해 남부터미널에서 첫차를 타고 원지에 도착했다. 중산리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라면과 김밥으로 아침 겸 점심을 때웠다. 버스를 1시간 쯤 타고 중산리 지리산 입구에 도착하니 12시 반. 이어 가파른 산행을 시작했다. 로터리 산장-법계사를 거쳐 악전고투 끝에 저녁 6시 40분쯤 천왕봉에 도착했다. 1915m 천왕봉은 물안개 속. 덜덜 떨며 누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기야 이 불볕더위에, 누가, 미쳤다고 천왕봉 오겠는가? 인증 샷도 제대로 못 찍었다.
산에는 밤이 빨리 왔다. 대피소에서 전화가 왔다. 혹시 사고가 나지는 않았는지 점검차원이라고 한다. 7시 반 캄캄한 어둠속을 헤치며 장터목산장에 도착했다. 사람이 없이 산장 4호실 35인석 방을 아들과 단둘이 차지하는 행운(?)을 누린다. 너무 늦어 컵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양치는 구입한 1천 5백원 짜리 작은 생수로, 세수는 물휴지로 대충 닦고 골아 떨어졌다.
이튿날 새벽 4시 기상해 천왕봉 일출 보려 했으나 다리가 천근만근 결국 포기한다. 전투식량에 물을 부어 아침식사로 대신했다 양치, 세수는 전과 동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아이가 밥먹기를 꺼려했다. 워낙 불결한 화장실, 더러운 모포, 피크닉 테이블에 덕지덕지 말라 붙은 반찬 찌꺼기, 구세대인 나도 견디기 힘들었다. 7시에 장터목 출발해 세석-벽소령(공사중) 거쳐 열시간만에 연하천 도착했다. 전투식량 저녁 취침. 세수, 양치는 전과 동. 다리가 덜덜덜 떨린다.
사흘째, 오늘이 드디어 종주 마지막 날이다. 오늘만 버티면 된다. 새벽잠을 깬다. 연하천의 별빛은 내 생애 최고의 풍경으로 기억된다. 대학시절 연하천에서 별을 보며 윤동주의 "별을 헤는 밤'을 얘기하던 내 젊은 날의 친구(여친?)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러나 짙은 구름 탓에 별구경은 포기했다. 진한 아쉬움 속에 연하천을 출발해 뱀사골-노고단을 거쳐 성삼재에 도착. 구례구를 거쳐 자정에 귀경했다. 당초 구례에 가면 밥도 제대로 먹고 사우나부터 하려고 했으나 빨리 집에 오고 싶어 모든 것을 포기했다. 배낭무게 때문에 사흘 내내 같은 옷을 입었더니 집에 오자마자 냄새난다고 식구들이 야단이다.
힘들게 지리산 종주 다음날 나는 문득 깨달았다. 첫째, "there's no place like home," 둘째, 지리산 종주는 이제 내 인생에 더 이상 없다. 셋째, 이러다가 내년 여름이 되면 또 지리산 종주하겠다고 밤잠을 설쳐 댄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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