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 어떻게 볼 것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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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는 코로나 사태를 이유로 의대정원 증가와 불과 몇 달 전 지난 국회에서 폐기되었던 공공의대 설립을 다시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정원 증원이나 공공의대 설립은 적어도 대통령이 3번은 바뀌어야 효과가 나타나고 실효성도 의문시되는 착시적인 정책으로, 의료 불균형과 공공기관 의사 구인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정치적 공약에 불과하고 세금 낭비의 요소가 너무 크다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2003년 정부는 의사과잉 배출을 염려하여 41개 의대 총 3,253명이었던 의대 정원을 현재의 3,050여 명 정도로 감축시켰다. 일부 언론에서는 의약분업 투쟁 이후 의사단체의 압력으로 정원 축소가 되었다고 보도하였으나, 이미 2001년 보건복지부의 보고서에 의사 과잉공급의 우려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의사단체를 매도하는 집단은 정원감축도 의사의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하여 아주 저속하게 비난하고 있으나, 실상 정원 감축의 주체는 의사 배출 과잉을 우려하던 정부였다.
그러던 정부가 이제 와서 갑자기 의사가 부족하다는 논리를 들고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선거공약을 동력 삼아 의과대학 신설을 희망하는 도시는 5곳이 넘는다. 부실한 학교 운영으로 폐교된 서남대는 전라북도 남원에 있었고, 전라남도 목포와 순천, 그리고 경상남도 마산 등은 익히 의대 설립 요구로 잘 알려진 도시이다. 이외 충청권과 부산에서도 새로이 의대 설립을 주장하는 지역이 생겨나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의사 수 통계… 미래 의사 수요추계(推計)도 부정확
정부의 갑작스런 의사 부족의 근거는 OECD국가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 평균 3.4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가 2.3명, 일본 2.4명, 미국 2.6명, 캐나다 2.7명인데 반하여, 유럽 국가는 4.0명 이상을 보유한 나라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구 소련권 국가들의 의사 보유율은 매우 높지만, 우리나라는 OECD 평균에 비하여 수치상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평균치에 의한 비교는 매우 세심한 주의(caution)와 회의(scepticism)를 바탕으로 잘 살펴 보아야 한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가 제시한 의사 수의 신뢰성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의사 인력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면허관리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면허관리기구는 의사 인력에 대한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 가능한 체제를 구축 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의사의 은퇴나 사망 등에 대해 집계된 자료가 없어 자세히 살펴볼수록 혼란스럽기만 하다.
가령 한 해는 의사ㆍ한의사 국시 합격자 수가 3,482명이었는데 전년도 대비 증가는 4,820명으로 국시 합격자보다 무려 1,338명이 더 진입하였다고 제시하지만, 이 인력이 어디서 진입하였는지 설명이 안 된다. 또 다른 해는 국시 합격자가 4,613명이었는데 전년 대비 161명이 증가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 해 유난히 많은 의사, 한의사가 단체로 은퇴를 하거나 사망하였다고 가정한다 해도 이들의 입학 연도는 의대, 한의대 정원이 2,000여 명 정도인 1970년대로 이 역시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결과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의사 수 증감분은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신비로운 자료이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필요 인력을 추계한다 한들 정확한 수치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미래의 의사 추계는 현재의 상태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하기 때문에 이에 활용한 근거 자료 중 하나라도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과는 매우 다르게 나온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약 6건 정도의 의사추계 보고서가 존재하는데, 어느 것 하나 과학적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보고서들이다. 일반적으로 의사추계에서 15년 이상의 먼 미래에 대한 추계일수록 추계치와 실제간 오차가 매우 클 확율이 높아 결과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런 연유로 최근 발표된 2050년 의사추계의 보고서는 통계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결과물이다.
의사 수 적정성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 수의 적정성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마다 의료제도와 의료 환경, 그리고 인구분포와 국토면적, 의료수준, 기대치, 보건학적 특성, 구매력 등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고, 그 나라 정부의 보건의료 발전계획에 따라 매우 달라 질 수 있기에 의사 수의 적정성은 한 특정 국가가 세우는 보건의료의 발전계획에 바탕을 두어야지 단순한 OECD 평균치가 적정성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4.0명을 넘어가는 스웨덴의 경우 주치의 초진 대기가 길어짐에 따라 초진 환자에 대해 1주일 이내에 진료하도록 하는 법적 조치를 하였다. 또한, 외과 환자의 1/3 이상이 수술대기 기간이 60일 이상 걸려 이 역시 법으로 두 달 이내에 해결하도록 조치하였다.
의사 수 2.3명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상상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하루에 서로 다른 3개 과의 전문의 진료도 가능하다. 그리스는 2007년에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5.2명을 초과하였으며, 현재 6.0명을 돌파하여 의사 과잉공급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심각한 도시 집중으로 인한 의료의 편중 현상과 공공의료기관 의사 구인난이 가속되어 당시 인구 1,100만에 무려 6,000개의 공공의료직이 공석이 되었다.
2020년 7월 일본의 노동후생성은 2022년부터 의대 정원 감축을 결정하였다. 2007년부터 ‘의사 편재(偏在) 현상’을 타개하고자 매년 1,200명씩 의대 정원 증가를 추진하였으나, 2015년 조사에서 도시와 비도시 간의 의사 편재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 하루 1,000여 명의 신규환자를 경험하면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증원이 아닌 감소를 결정한 것은 단순한 정원 증가는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정설을 다시 뒷받침하여 준다. 즉, 과잉 배출된 의사는 다시 대도시로 집중되어 편재 현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는 서울에 의사가 편중되었다고 주장하며 ‘지역의사제’를 추진 중이고, 의대 졸업 후 10년을 지역에서 복무하는 조건을 걸었다. 10년 의무 복무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될 우려에 대해서도 유사한 10년 복무 의무를 부과한 사례인 군법무관 관련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한 예를 들며 자신 있어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법무관은 사법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별도의 시험이지만, 의사시험은 지역의사로 별도의 시험을 시행하지 않는다.
또한, 법무관과 같이 군인의 신분이 아닌 민간인으로서, 직업 선택권의 침해도 분명 존재한다. 지역의사제 정원으로 선발된 의사는 전문의 훈련에 세부전문의나 공중보건에 대한 별도의 훈련이 추가된다면 10년 동안 최소 인턴ㆍ레지던트 5년 이상의 과정을 거쳐야 전문의로서 지역배치 의사가 될 것인데, 실제 지역배치 기간은 길어야 약 4년 정도로 보인다. 이후 자유의 몸이 된다면 다시 도시로 이동할 것은 분명하다.
의사가 지역에 잔류하기를 꺼리는 이유는 우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데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 큰 이유이다. 또한, 가족의 동의, 자녀 교육의 문제뿐만 아니라 동료 없이 혼자 근무하는 경우 상대적으로 자기 계발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당직근무 등 점차 실력 없는 의사로 퇴보하는 현상에 대한 두려움 등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의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모든 직종,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OECD 의사 수 평균’이라는 숫자가 한 나라 정책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인구대비 의사 수가 많은 유럽의 경우 좋은 전문의를 양성하는데 의대 졸업 후 약 10년의 기간이 요구된다. 우리나라보다 교육수련 기간은 길고 실제 전문의로 근무하는 기간은 짧다는 특성을 보인다. 이들 나라의 전공의 근무시간은 주당 45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의사의 평균 휴가는 5주이고 이외 각종 사유로 4주가량 휴무도 가능하다.
반면, 우리나라 전공의는 이제서야 법으로 주 80시간 근무와 연간 통상 1주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이러한 사실들이 OECD 의사 수 평균이라는 숫자가 한 나라의 정책 목표가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음에도 우리 정부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부디 정치권이 내세운 선거공약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6명으로 우리나라보다 의사 수가 많다. 그럼에도 가정의학전문의 초진 대기 평균이 4주이고 전문간호사나 의사보조를 초진으로 만나는데도 약 2주가 걸린다. 많은 주(州)에서 취약지 의사확보 목표가 인구 3,500명당 한 명으로, 취약지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의과대학 신설이나 정원증가를 압박하지도 않는다. 정원이 증가하면 정부는 증가분에 해당하는 전공의 교육비를 준비해야 하는데, 결코 적은 예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호주, 캐나다, 스웨덴 등 광활한 영토를 가진 나라에서 이야기하는 취약지와 우리나라의 사정은 너무나 다르다. 지금도 취약지라고 공보의를 배치한 지역 중에도 차를 타고 10분이면 의원이나 병원에 도착하는 곳이 많이 있다. 솔직히 일부 도서 지방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 취약지가 존재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분명 취약자는 있으나 취약지는 없어 보인다.
1970년대 공공의대 설립 운영한 타이완의 실패, 타산지석 삼아야
공공성으로 무장된 의사를 양성한다는 공공의대 설립에는 약 3,000억~5,000억 원이 소요될 것인데, 이런 예산이 있으면 우선 보건의료 현안 개선을 위해 집행되어야 할 것이다. 타이완은 이미 1970년대 공공의대를 설립하여 운영해 왔으나 15년 만에 일반의대로 전환하였다. 공공의대 출신이 지역에 잔류하는 확률이 일반의대를 졸업한 학생보다 불과 1% 정도밖에 차이를 보이지 않아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타이완 공공의대 학생들이 직업 선택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였으나 지역 의무복무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아 학생들이 패소하였다. 그럼에도 이 소송은 공공의대 역시 지역 불균형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타이완 양명대학 졸업생의 입장에서 공공의대는 실패한 정책으로 공공의대와 같은 의대설립은 절대로 권고하지 않는다.
선진화된 의사추계 제도를 갖고 있는 호주의 경우 GDP 성장 2%대에서는 의사인력 증원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두환 정권에서 8%대 성장을 보이다 대통령 교체 때마다 1%씩 성장률이 감소하다가 결국 문재인 정권에서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의료비는 꾸준히 증가하여 GDP의 8%를 넘었다. 미국은 17%를 초과하였고 일본을 포함한 다른 선진국이 10~11%대인 점을 감안한다면, 일본의 정원감축 이유가 의료비에 의한 적자재정의 악화 우려란 점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경제 역성장과 인구감소 시대…의대정원 확대보다 적절한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먼저
현 정권은 경제 역성장과 인구감소의 시작이라는 적절하지 않은 시대에, 빨라야 2033년에서 2035년 이후에나 효과를 보기 시작하고 성공 여부도 불확실한 정책을 마치 현 상황에 대한 유일한 개선책인 것 마냥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적절한 의료전달체계 수립, 그리고 적정 노동 보상 등 오랜 기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개선책이 우선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공공성 강화를 위한 최우선책은 선진국과 같이 의사양성을 위한 교육에 대해 공공의 투자가 뒷받침되는 것이다. 양적인 확대보다는 질적 제고가 우선인데, 현재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학생 임상실습, 인턴, 전공의 교육으로는 부정적인 양적 증가의 후유증을 감당할 수 없다. 현재의 전공의 제도는 불필요한 전공의 과잉배출을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전문의 과잉배출로 자신이 전공한 과목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에 미용, 비만 등 다른 비보험 분야로 진출해 도시 집중을 더욱 가속화 시키기도 한다.
공공의료기관이나 지방 중소병원의 구인난을 근거로 의사 부족을 주장하기 전에, 이들 기관이 보다 더 의사에게 매력적인 직장으로 바뀌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고 이런 사안은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공공병원에 대한 신뢰나 인식도 반드시 개선 시켜야 한다. 이런 분포의 불균형 문제를 단순히 양적 증가로 해결하려는 정책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지난 한 세기 여러 나라의 사례에서 잘 증명되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의료의 본질에 우선하는 우리 정치의 광풍 … “씁쓸하다”
끝으로 현시점에서 고소득으로 오랜 세월 살아온 선진국들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단순 숫자로만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다시 주장한다. 최근에서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선 우리나라가 앞 선 선진국들과 비슷한 보건의료 수준이 되도록 성급히 상승시키려는 것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일본이나 미국이 의사 인력 증가로 인한 국가재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간과하지 않는 점은 우리 정부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데올로기가 의료의 본질에 우선하는 우리 정치의 광풍을 제어하기 힘들어 보이는 것도 씁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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