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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 대해부 <제2부> 가중되는 경제혼란과 제2차 뉴딜 (2) 위협받는 FDR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7월30일 09시00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7

본문

 <18> 위협받는 FDR    

 

(집권 2년 뉴딜정책의 경제성적)

 

1933년 3월 집권하고 2년이 흐르는 동안 연방정부의 지출은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1929년 연방지출을 100이라고 했을 때 1932년 연방지출은 88에 불과 했으나 1933년에는 107, 1934년에는 141로 확대되었다. 집권 이후 엄청난 연방정부의 지출증가에도 불구하고 경제실적은 미미했다. 1934년 불변 GDP는 1929년의 63.9%에 불과했고 소비는 87.4%, 내구재소비는 60.1%에 그쳤다. 투자는 더 침체하여 53.0%에 불과했으며 설비투자는 43.9%, 주택투자는 32.4% 밖에 되지 못했다. 공공부문을 제외하면 투자는 몇 년째 뒷걸음 치고 있었다. 당연히 고용상황이 나아질 리가 없었고 노동현장의 불만은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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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중간선거)

 

결렬한 파업이 전국적으로 벌어지던 1934년 11월 6일에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은 겉보기로는 공화당에 대해 1932년 선거보다 더 큰 승리를 한 것 같은 결과가 나왔다. 하원에서는 313석에서 322석으로 9석이 늘었고 공화당 하원 의석수는 117석에서 103석으로 줄었다. 상원의원도 민주당은 60석에서 69석으로 9석이 늘어 난 반면 공화당은 35석에서 25석으로 줄었다.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2/3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하원선거에서 민주당이 얻은 득표는 1932년 선거의 54.5%에서 1934년 53.9%로 0.6%포인트 떨어졌고 반대로 공화당은 41.3%에서 42.1%로 0.8% 포인트 오히려 증가했다. 1934년 선거에서 하원의석수는 민주당이 1932년 보다 9석, 상원의석수는 10석이나 더 많이 가져갔으나 국민들의 득표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 떨어진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 보다 FDR에게 더 위협적이었다. 총체적으로 FDR에 대한 지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다. 집권 이후 2년 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FDR정부였지만 경제적인 성과는 미흡했다. 1933년 실적은 참담했고 1934년은 1933년에 비해서는 경제성장률이나 수출증가율이 개선되었지만 1929년 수준에 비하면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1933년 말 부터 1934년 내내 전국에서 심각한 파업이 연이어 터지면서 1935년부터 경제성장률과 수출증가율이 하락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집권 민주당 내에서도 FDR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부각되고 있었다. 

 

(빚어지는 불만 : 타운샌드와 싱클레어와 코글린)

 

FDR의 뉴딜정책에 대한 비판은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터져 나왔다. 먼저 공화당 및 민주당 내 보수진영에서는 FDR정책이 헌법을 초월하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개입하는 폭군이라고 비판했다. 경제에 관한 주법 우선 원칙을 뒤흔드는 초헌법적 발상으로 가득 찬 법들이라고 비판했다. 미국공산당에서는 FDR을 히틀러에 비유하기도 하면서 파시스트 정권이라고 몰아붙였다. 

다른 한편으로 진보진영에서도 FDR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쏟아 부었다. 대표적으로 업톤 싱클레어(U.Sinclair)와 타운센드(E.Towsend)와 코글린(E.Coughlin)이 FDR을 대신할 정신적 지주로 부상하였다. 싱클레어는 유토피아적 환상을 가지고 협동적 공동체(cooperative commonwealth) 주의를 펼쳤는데 주된 내용은 주 정부가 생산과 유통시설을 장악하여 가난을 없애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1934년 선거에서 민주당 캘리포니어 주지사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공화당 후보에게 참패를 당하였다. 

 

타운센드는 의사출신으로써 노령연금계획인 타운샌드 계획(the Townsend Plan)으로 유명했다. 즉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월 $200을 지급하자는 것이었다. 지급조건으로는

 

  · 반드시 은퇴자여야 하고

  · 범죄경력이 없어야 하며

  · 30일 이내에 지급된 돈을 다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싱클레어나 타운샌드 보다도 더 강력한 비판은 코글린(Charles Edward Coughlin) 신부였다. 캐나다 출신으로써 디트로이트 지역에서 활동하던 코글린은 인종차별주의와 함께 부패하고 탐욕스런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의 온상을 양성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최근 발달하기 시작한 라디오 방송을 활용하여 전국적으로 설교를 하기 시작했는데 방송사가 그의 설교가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방송을 중단하자 자금을 모아서 방송을 하여 전국적으로 수 백 만 청취자를 갖게 되었다. 1932년 대선에서는 FDR을 적극 지지했었다. “루즈벨트가 아니면 멸망(Roosevelt or Ruin)“ 이라거나 ”뉴딜은 그리스도의 딜(Christ’s Deal)”이라고 하면서 지지의 뜻을 보였다. 1934년 1월의 의회 청문회에서는 의회가 FDR의 프로그램을 지지하지 않으면 미국은 프랑스 혁명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혁명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심지어 “하나님이대통령 루즈벨트를 지도하고 있다(God is directing President Roosevelt)고 까지 칭찬했다.   

 

코글린이 FDR에 대한 지지를 거두기 시작한 것은 1934년 노동자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 즉 사회정의 국가연맹(the National Union for Social Justice, NUSJ)를 설립하면서 부터이다. 이 단체의 지도부는 FDR의 지원정책들이 대부분 금융 자본가들을 위한 정책일 뿐이며 실질적으로 근로자들에게는 해악을 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그는 연방준비제도를 국유화하고 통화공급을 민간금융기관 주도로부터 빼앗아 국민을 위한 통화정책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기본적인 일자리 보장과 기본소득 보장, 기간산업의 국유화, 부유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노조에 대한 정부의 권익보호, 공익을 위한 사유재산 제한을 주장했다.  

 

(휴이 롱Huey Long 이라는 강력한 도전)

 

FDR에 대해 비판적인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정치적으로 매우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휴이 롱(Huey Long, 1893-1935)이라는 정치인 때문이었다. 그는 35세 나이에 루이지아나 주지사를 거쳐 연방 상원으로 일하던 민주당 개혁파의 상징과 같은 인물로 엄청난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1934년부터 모두가 왕이라면서 “부를 나누어 갖자(Share Our Wealth, SOW)‘라는 대중운동을 펴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5백만 명 이상이 동조한 SOW운동의 골자는 다음과 같았다. 

 

   · 급속 누진소득세 부과

   · 과다한 부의 몰수

   · 가구당 $5000 주택구입, 차비용 지급

   · 개인 당 매년 $2500 지급

   · 근무시간 단축

   · 가구 교육비 지원

   · 고령자 지원증대

 

휴이 롱은 타운샌드와 싱클레어와 코글린이 주장하는 것을 한데 뭉친 것과 같은 파격적인 정책구호를 펼치면서 같은 당의 현직 대통령인 FDR을 부자들의 요트(누르마할이라는 이름의 요트)나 얻어 타고 다니는 넋 나간 사람으로 맹렬히 비난했다. FDR의 경제적 성과도 미흡한데다가 대중적인 지지도도 높았기 때문에 193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롱은 강력한 도전자가 될 것은 분명했다. 실제로 FDR의 참모들은 민주당 경선에서 롱이 낙선하여 독자 출마하더라도 400만 표 이상은 충분히 득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정도면 1912년 대선에서 독자 출마하여 400만 표를 얻은 테디 루즈벨트와 비교될 만한 경쟁자였고 그렇게 되면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유리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FDR이 대선을 앞두고 1935년에 더 근본적이고 더 과감한 제2차 뉴딜정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 뒤에는 이런 정치적인 배경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계속>

 

 ◈ 뉴딜(the New Deal) 정책 대해부

<제2부> 가중되는 경제혼란과 제2차 뉴딜

 

(1) 노사분규와 전국적 파업

<15> 1933년의 경제 : 아무것도 나아짐이 없이 가중되는 노사분규 

<16> 상품신용공사(The Commodity Credit Corp., CCC, 1933년 10월)

<17> 확산되는 전국적인 파업 : 1933년 – 1934년

 

(2) 위협받는 FDR

<18> 위협받는 FDR 

 

(3) 제2차 뉴딜

<19> 1935년의 제2차 뉴딜(상)

 

(4) 사회보장법과 증세법

<19> 1935년의 제2차 뉴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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