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을 이해하기 위한 세 가지 키 워드;the Lucas Critique, Crisis Opportunism, 그리고 Fireside Chat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한국판 뉴딜 구상이 발표될 즈음에는 여러 모로 관심이 컸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경제는 2010년대 들어 활기를 잃기 시작하였고 현 정부 들어 그 추세가 더욱 현저해졌다. 여기에다가 예상치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우리 경제는 더욱 심한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난국을 벗어나기 위한 획기적 방안이 수립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한국판 뉴딜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막상 한국판 뉴딜의 최종 계획이 발표되고 나서는 세간의 관심이 급격히 떨어지고 말았다. 대통령의 국회 개원 연설 등을 통해 관심을 이어가고자 하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치적으로 서울시장의 유고라는 크나큰 사건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국 경제의 장래를 결정하는 큰 계획인 한국판 뉴딜이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은 의아하기 그지없다.
한국판 뉴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약화되고 있는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앞으로 경제정책의 수립과 집행과 관련하여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취지에서 한국판 뉴딜 최종 계획 발표 직후의 언론 반응 등을 살펴보았다. 신문을 검색한 결과 언론에서는 계획의 주요 내용 및 보고대회 개최 등에 관한 사실을 충실히 전하면서도 직간접적으로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기사들을 다수 싣고 있었다. 이하에서는 한국판 뉴딜의 주요 내용을 간단히 기술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종합한 다음, 비판적 시각이 형성된 배경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한국판 뉴딜의 주요 내용>
정부는 7월 14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하였다. 발표 자료에는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으로 대전환’이라는 부제도 달렸다. 제목으로 보아 매우 야심차고 담대한 정부의 포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판 뉴딜이 완성되기까지의 경과를 간단히 살펴보면 지난 4월 22일 ‘제5차 비상경회의’에서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국판뉴딜 정책 추진 구상을 피력하였다. 당시 의도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위기 탈출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이어 정부는 5월 ‘「한국판 뉴딜」 추진 방향’을 제시하였다. 당시에는 디지털 경제 촉진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그 이후 6월 1일의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는 그린 뉴딜이 새롭게 추가 되었고 고용안정망 강화 방안도 부가되었다. 그리고 최종안에는 사람투자 항목이 추가되었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의 내용을 주요 10대 과제로 요약하였다. 그것은 데이터 댐 구축, 지능형(AI) 정부 구현, 스마트 의료 인프라 구축, 그린 스마트 스쿨 조성,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구축, 국민안전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 스마트 그린 산업단지 조성, 그린 리모델링, 그린 에너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등이다. 투입 예산은 총 114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중에서 현 정부에서 49조원을 투자하고 후임 정부가 65조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한편 한국판 뉴딜을 통해 190만 개에 달하는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도 포함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표 참조).
<한국판 뉴딜에 대한 비판적 시각; the Lucas critique>
한국판 뉴딜 정책 최종안 발표 직후 언론에서 제기한 문제점이나 비판적 시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의 정책들을 재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가장 눈에 띄었다. 과제들 대부분이 정부 안팎에서 이미 거론된 사업들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스마트 그린 산업단지를 확대하고 전기와 수소차를 보급하는 방안은 이미 정부가 수차례 발표했던 사업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 정책을 답습한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획기적 정책 내용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무릇 뉴딜 정책이라고 하면 나라의 명운을 바꿀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실상은 기존 정책을 답습하는 내용을 구성되었다. 이런 점에서 실망감이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민간의 역할에 관한 논의나 배려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민간부문의 투자가 불가피하다. 최종 계획 발표 단계에서 민간에서 일부 관련 의견을 제시하였지만 보고서는 정부 정책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디지털 변환은 앞으로 경제 전반에 걸쳐 진행될 것이다. 이는 정부 단독으로 할 수도 없거니와 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과제이다. 하지만 보고서를 보면 정부 주도의 낌새가 매우 강하다. 정부가 직접 투자하겠다는 식이다. 그에 더하여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을 위한 조직체계에 관한 구상도 발표하였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정점으로 뉴딜 당정 추진 본부, 한국판 뉴딜 관계장관회의, 실무지원단 등이 운영될 전망이다. 반면 민간의 활동을 촉진하거나 지원할 목적의 규제 완화나 새로운 제도의 도입 또는 개선에 관한 논의는 전혀 없는 상태이다.
셋째, 내용이 치밀하지 못하여 구체성이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많았다. 정권 하반기에 5개년 계획을 제시함으로써 일관된 추진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하였다. 소요 예산 규모 및 고용 효과 등을 비교적 상세히 나열하였지만 그 근거는 하나도 제시되지 않았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자금 조달계획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디지털 변환으로 초래될 고용 감소에 대한 대책이나 고려도 찾아볼 수 없다. 범용 기술을 단순 활용하는 것을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라는 용어로 포장하였다는 비판도 있었다. 중·고등학교의 낡은 기기를 교체하는 것을 교육인프라라고 표현한다든지, 미래 성장 동력 확보라고 치부하였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6월 23일 '2020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판 뉴딜에 대해 그 계획이 부실하거나 효과가 불확실하다고 밝힌 바 있다.
넷째, 경제적 효과가 별로 없는 정책들을 되풀이 하고 있다. 재정 투입 위주로 정책을 짜는 것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특징이다. 금번 한국판 뉴딜도 투입 예산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다. 일반인들마저 금전살포식 재정정책은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많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재정 투입 계획만 제시하고 자금 동원 방법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앞으로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특히 최근 부동산 재산세가 크게 오른 것과 맞물려 이러한 의구심은 더욱 증폭될 여지가 있다. 그 외에도 사회안전망 확대, 취약 계층에 대한 온정적 정책 등이 결코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적극적 방책이 아니라는 점도 대개의 사람들은 인식하고 있다. 그런 정책들은 경제 위축에 따른 불가피한 수동적 방어적 대응 수단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런 내용들을 뉴딜의 주요 근간으로 삼으면서 위기 탈출을 도모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와 연관하여 정부가 경제안정화정책과 경제성장정책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지금처럼 돈을 풀어 경기를 유지하는 정책은 경제안정화 정책이다. 경제성장정책이 결코 아니다. 이는 단기 일시적으로 유효한 정책이다. 이를 경제성장정책으로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돈 풀기를 지속하는 것은 장기 경제성장에는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인플레이션이나 자산가격 상승, 아니면 환율 불안 등 다른 심대한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정책은 제도를 개선하고 경제운용방식을 변경하는 한편 과학기술을 장려하고 인적자본을 키우는 등의 노력을 지칭한다. 코로나 충격으로 인한 저성장의 문제에 대하여 재정지출 확대로 일관하고 있는 반면 장기 경제성장 정책 수단은 강구되지 않고 있는데 한국판 뉴딜에서도 이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엄청난 의미의 용어들이 난무함으로써 오히려 그 의미가 퇴색하고 말았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은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의 설계”라고 하였지만 과연 그럴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이라고도 하였지만 무엇이 바뀌는지 예상할 수 없다. 반면 보고서의 내용이나 정책 집행방식은 옛 것을 그대로 따르거나 더욱 강화하는 모양새이다. 말과 실체가 전혀 일치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앞의 문제들을 종합하면 한국판 뉴딜은 그 실현 가능성에서 크게 의심을 받고 있다고 하겠다. 디지털 경제를 추진하면 우리나라가 세계 선도국가가 되는가? 정부주도형 투자 정책, 혹은 사업정책으로 세계 선도국가가 되겠다는 것인가?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언론들의 분석이나 반응을 전제로 할 때 현재 제시된 정책으로서는 우리나라가 새로운 발전 기회를 얻게 되리라고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한국판 뉴딜에 대한 언론의 해석은 루카스 비판(the Lucas Critique)을 연상케 한다. 1970년대 이전 경기 하강에 대응하여 정책 당국이 확장적 경제정책을 시행하였는데 Lucas는 이를 비판하였다. 당시 신봉되던 케인즈 경제이론에 의하면 불경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통화를 확대 공급하면 물가가 오르고 실질임금이 감소함으로써 기업이 고용을 확대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돈을 풀더라도 성장률이 높아지거나 고용이 늘지 않았다. 이에 관해 Lucas 교수가 해석을 내 놓았다. 구조적 불황에서는 노동자들이 물가상승을 예상하여 높은 임금을 미리 요구함으로써 실질임금이 하락하지 않고 그에 따라 고용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고 분석하였다. 현재 우리 정부는 케인즈식 경제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에 비해 경제주체들은 그 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주체들은 Lucas의 시각과 마찬가지로 정부 정책의 효과를 미리 예상하여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판 뉴딜정책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 crisis opportunism>
한국판 뉴딜이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게 된 배경을 해석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등을 통해 국난을 극복한 것은 기적이었다. 그 전례가 금번 코로나 사태 와중에서 재연되었다. 마스크 대란 등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큰 혼란을 야기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사재기 등 혼자 살겠다는 이기심을 발휘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국민은 위대한 특질을 보유한 선진 국민임을 다시 한 번 검증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이 보여준 모범은 극히 예외적이다. 사실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개별 경제주체들은 다양한 자구책을 강구한다. 일반적인 경제주체들의 경우 자신이 먼저 살겠다고 온갖 수단을 강구하기 마련이다. 예금인출사태가 대표적이고 생필품 사재기도 이러한 행동의 일종이다. 금번 코로나 위기에서 각국에서 이런 류의 행태가 다양하게 발생된 것은 익히 알고 있다. 이러한 개별 경제주체의 생존을 위한 개별적 행동은 난파선을 탈출하는 쥐의 행태로 비유되곤 한다. 각 주체들이 이러한 행태를 하면 할수록 그 체제는 일찍 붕괴되고 만다.
이와는 달리 사회 지도층이나 권력을 잡은 정치인들은 생존의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위기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즉 위기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 여건을 형성하는 계기로 삼거나 그동안 추진하는 게 불가능하였던 정책을 밀어붙이는 기회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기득권층이나 집권세력의 이러한 행태를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 혹은 위기 편승주의(Crisis Opportunism)라고 한다.
재난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기조를 신봉하는 미국이 9.11 사태 등을 겪으면서 국가안보 업무나 군사 작전 등을 외주화하는 등 상업화하고 그 이면에서 이권을 챙긴 것을 비판하기 위하여 Naomi Klein이 2007년 그의 저서에서 사용하였다.
위기편승주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Robert Higgs가 사용한 말이다. Higgs에 따르면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무슨 정책이든지 신속하게 추진하는 것이 일차적 덕목으로 꼽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는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는 등의 방책을 강구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쉽게 추진하지 못하였던 정책, 예컨대 현금을 대량으로 살포하는 정책도 쉽게 추진하고 심지어는 해외 군사 작전도 과감하게 전개하기까지 한다고 보았다.
한국판 뉴딜은 Higgs가 얘기하는 위기편승주의의 결과로 해석된다. 대통령의 구상에서부터 최종안이 발표될 때까지 채 3개월도 경과하지 않았다. 이 기간에 새로운 정책을 구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적으로 기존 정책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종전에 논의되었던 여러 정책들을 그럴싸한 용어와 틀로 포장하는 데 치중하였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 기득권의 이해가 작용하면서 그들이 선호하는 정책이나 기존 정책 기조를 강화하는 쪽으로 내용을 점차 보완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
이 해석에 의하면 한국판 뉴딜은 윤리적 측면에서 그 정당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일반 국민들은 범상치 않은 절제된 이타적 행동으로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는 초석을 놓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정부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관계자들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이기심을 마음껏 발휘하였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한국판 뉴딜 정책의 성공을 위한 제언; fireside chats>
언론에서 제기된 한국판 뉴딜의 문제점과 단점을 일일이 보완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일 것이다. 그 대신 한국판 뉴딜이 앞으로 나름대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전제 조건을 생각해보는 게 앞의 비판을 다소나마 수용하는 방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뉴딜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뉴딜이라 말을 사용하는 순간에 엄청난 일을 추진하고 획기적인 과업을 달성하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 이러한 강박 관념으로 인하여 한국판 뉴딜에서 거대 구호들이 난무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뉴딜의 본질은 정책의 대담성이나 혁신성 등 그 내용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책집행방식에서 뉴딜의 본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로 되돌아가보자. 수많은 뉴딜정책 중에서 성공한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엄하게 평가하는 사람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루즈벨트 대통령은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4차례에 걸쳐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올라서는 데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성과로 인하여 루즈벨트 대통령이 높게 평가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뉴딜 정책의 추진이 이러한 성과를 가져왔다고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성공은 거창한 정책, 즉 뉴딜보다는 진솔한 소통에 기인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33년 3월 12일의 라디오 연설, 일명 노변담화(fireside chats)였다. 1933년 3월 4일 토요일에 취임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3월 6일부로 전국의 은행에 대하여 영업을 정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예금인출 사태가 되풀이되고 은행들이 도산하는 은행위기에 대한 최후의 대응책이었다. 그리고 3월 9일 비상은행구제법(Emergency Banking Act)을 제정하여 은행 정상화 기틀을 다진 다음 이에 입각하여 3월 13일 건전 은행들부터 영업을 재개하기로 하였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이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이 라디오 연설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은행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예금을 인출하면 은행들이 존립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나서 예금주들이 불필요한 자금을 인출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정부가 취한 일련의 정책들을 소상히 설명하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현금공급 계획, 은행들의 영업 재개 기준 등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 정책의 성공 여부는 국민들의 협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특히 국민들이 소문 등에 휘말리지 말고 정부를 신뢰할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다. 정부와 국민은 일체감을 형성하여야 한다는 진솔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으로 연설을 마무리하였다.
그 다음날 3월 13일 은행의 업무가 재개되었지만 예금인출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그간 인출하였던 현금이 은행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하였다. 당시 가장 시급하였던 은행위기가 사실상 종식되었다. 이로써 국민들은 루즈벨트 대통령 및 그 정부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현실 상황을 설명하고 정책 수립 배경과 의도를 직접 전달한 것이 그 이후의 여러 뉴딜 정책을 추진하는 추동력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뉴딜이라서 성공하였다고 보아서는 절대 안 된다. 뉴딜 이전에 국민들의 신뢰를 얻음으로써 뉴딜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수많은 뉴딜 정책 중에서 나중에 폐기되는 등 실패한 정책도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루즈벨트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는데 그 지지는 이 노변담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노변담화의 의미를 지금 우리나라에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정부는 그동안 정부 밖의 수많은 조언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책기조를 변경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 경제는 코로나 사태 발생 이전에 이미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여야 했다. 그리고 그에 관해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널리 정책적 공감대를 얻고 형성하는 것이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기 이전에 선행되었어야 했다. 코로나 사태의 피해가 적었던 것을 종래의 경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것에 연유한다고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경제 현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어느 정책을 동원하여도 민간 경제주체들은 독자적 예상에 의거하여 나름대로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다. 지금 한국판 뉴딜에 대한 관심이 싸늘하게 식은 배경을 음미해봐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판 뉴딜 정책(다른 경제정책들도 포함하여)이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개관적으로, 그리고 국민들과 같은 시각에서 경제 상황을 인식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납득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안이라 생각된다. 이것이 전제되어야 민간 경제주체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의사결정을 스스럼없이 내릴 것이고 그 결과가 우리 경제의 회복력으로 가시화되면서 뉴딜정책이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경제정책 집행방식에서 어느 정도의 변화를 시도해보기를 기대해본다.
<ifsPOST>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