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21) 느티나무와 팽나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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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에 걸쳐 참나무를 다루었습니다. 참나무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공원이나 원래의 자연이 조금이라도 보호되고 있는 아파트단지 근처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역시 산에서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나무들입니다. 저는 이런 참나무들을 감히 우리나라 나무들 중 ‘산속의 왕’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생활하는 주변, 즉, 사람들이 생활하는 가까운 곳에 심는 나무들 중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나무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질문에 감히 느티나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느티나무는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있어서 오히려 대접받지 못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모든 공원에서 그리고 모든 주거단지 안에서 느티나무는 절대로 빠지지 않는 나무입니다. 차량보다는 사람들의 왕래가 더 잦은 작은 길의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도심의 넓은 길에는 느티나무가 지나치게 울창한 가지를 드리우는 성질 때문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더욱이 우리나라 어느 산이나 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인 느티나무이지만, 오히려 그렇게 흔하기 때문에서라도 저 같이 나무에 빠져 있는 사람 외에는 별로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꽃이나 열매를 맺지 않고, 잎 모양도 길고 갸름한 타원형으로 평범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평범하고 흔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 셈입니다.
그래도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이 느티나무를 참으로 사랑했나 봅니다. 남한 땅 어디서나 마을 정자나무의 대다수는 느티나무가 차지하고 있고, 마을의 길흉사 때 모여서 기원하는 장소인 성황당을 지키는 나무로도 느티나무를 심었습니다. 저는 2016년 6월 안동 하회마을에 들렀을 때 우연히 가게 된 삼신당에서 600살이 넘었다는 느티나무를 지극히 모시고 있는 모습에 놀란 바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이 오래 된 절을 방문했을 때 크고 멋진 고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셨다면 아마도 십중팔구 느티나무일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저는 해남의 대흥사를 들렀을 때 뿌리가 연해진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의 모습을 보고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느티나무가 사랑받았을까요?
느티나무는 높이 자라면서도 가지를 참으로 넓게 펼쳐서 큰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동네 한 가운데에 이른바 정자나무로 심어서 온 마을 사람을 다 모이게 하는 마을회관 구실을 하기에 참으로 적합하였고, 그 큰 실루엣 때문에 마을 입구의 이정표 노릇을 하기에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시골길을 달리다가 차를 세우고 멋진 느티나무 사진을 찍은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분당 아탑역 광장 한 가운데 있는 200년 넘은 느티나무일 것입니다. 아마도 분당이라는 신도시를 개발할 때 모든 것을 갈아엎으면서도 이 나무의 신령스러움은 보존하고 싶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덕분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 나무 그늘에 만들어진 벤치에 앉아 쉬는 장소가 되고 있지요. 아마도 느티나무가 당산나무 역할을 하는 이유도 바로 이렇게 오래 살기 때문에 신령스런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식물학자 임경빈 선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1000년 이상의 나이를 먹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어 노거수로 보호되고 있는 나무들이 64그루로 집계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느티나무가 25그루로 가장 많다고 합니다. (2등이 은행나무로 22그루)
이렇게 나이 많고 거목이 된 느티나무는 겨울에도 그 벌거벗은 모습인 나목의 아름다움을 자량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문화재청에서는 이런 노거수들을 관리하려는 목적으로 그 역할들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습니다.
- 당산목(堂山木) : 제를 지내는 산제당·신당·성황당 등의 배후에 위치한 나무
- 정자목(亭子木) : 서당·정자·향교 등의 음영수로 심은 나무
- 풍치목(風致木) : 촌락의 풍치·방풍 또는 부락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심은 나무
이런 분류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과거 우리 조상들은 노거수들을 마을들에서 주민들이모여서 함께하는 행사들 중 가장 경건한 부분을 상징하거나 보호해 주는 신령스런 나무들로 받들고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지금의 아파트단지에 심어져 있는 느티나무들은 그런 경건한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저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느티나무가 전통적으로나마 남한 땅의 북쪽, 즉 수도권과 중부지방에서 대접받던 나무라면, 영호남 지방 즉, 남쪽 지방에서는 팽나무가 그 역할을 하여 왔던 것 같습니다. 비록 수도권에서도 종종 이 나무를 만날 수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특히 호남 지방에서는 느티나무가 수도권에서 하던 역할, 즉, 당산목, 정자목, 풍치목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나무가 바로 팽나무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난 가장 멋진 팽나무들은 원불교 영산성지 부근을 호위하듯이 서 있는 우람한 나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에 대해 그다지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남쪽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 중에는 어릴 적에 이 나무에 대한 추억을 말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분들은 나무의 크기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작긴 하지만 달콤한 맛을 주는 이 나무 열매를 따먹던 추억을 얘기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팽나무의 열매를 잘 관찰하지 못하다가 서울숲에서 나무 높이의 다리 위를 지나면서 아주 가까이에서 노랗고 빨간 열매를 볼 수 있었습니다.
팽나무는 이런 거목들 중에서는 조금 특이하게 생겼는데 잎 모양이 좌우 비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제가 나무를 알아갈 때 이 잎 모양이 가장 좋은 시금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등걸이 쉽게 갈라지며 터지는 느티나무에 비해 큰 나무로 자라서도 비교적 매끈한 등걸을 유지하는 것도 이 나무의 특징이지요.
박상진 선생은 저서 ‘궁궐의 우리나무’에서 남쪽 바닷가에 가면 갯냄새 나는 포구 부근에 이 나무를 흔히 심었는데 바닷바람에도 잘 견뎌서 그렇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는 팽나무를 포구나무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저는 최근 해남의 땅끝 전망대에 갔을 때 그곳에서 포구나무라고 할 수 있는 팽나무를 만났습니다.
팽나무도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다음으로 세 번째로 많은 노거수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고 합니다.
느티나무와 팽나무는 참나무 6형제를 구분하고 싶은 분들 정도하면 꼭 구분해 낼 줄 알아야만 하는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에서 느티나무와 팽나무를 찾아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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