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멈출지 안다는 것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요즘 들어 ‘멈춘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몇몇 정치인, 유명인이 안타까울 정도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다.
‘언제 멈출지를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루돌프 줄리아니 전 미국 뉴욕 시장. 그가 과거의 명성을 잃어버리고 잇따라 망신을 당하며 추락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로 트럼프의 대선 불복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줄리아니는 지난 11월 기자회견장에서 ‘대선 조작’을 주장하며 뺨에 ‘검은 땀’이 흘러내리는 장면이 TV에 생중계되고 사진으로 찍혔다. 염색약이 땀에 녹아 흘러내린 것으로 보이는데, 그 땀을 닦는 모습이 애처로운 느낌을 주었다. 12월 초에는 선거 불복 청문회에서 발언하며 방귀를 뀌는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또 체면을 구겼다.
앞서 11월 7일에는 대규모 선거 부정을 폭로하겠다면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장소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외곽 공업지대에 있는 ‘포시즌스 랜드스케이핑’이란 조경회사 주차장 구석이었다. ‘포시즌스 호텔’이 아니었다. 옆에는 성인용품 가게가 있고, 근처에 공동묘지와 교도소가 있는 곳이었다. 기자회견 도중 바이든이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기자들은 우르르 바이든 캠프쪽으로 떠났고, 줄리아니는 기자들 없이 기자회견을 마무리해야 했다. 모두 ‘몰락한 줄리아니’의 모습을 보여준 장면들이다.
사실 줄리아니는 미국의 ’영웅’이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로스쿨 졸업 후 연방 검사로 일을 시작했는데, 특히 1980년대에 뉴욕 남부 관할 연방 검사로 마피아 소탕 작전을 지휘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 명성을 기반으로 뉴욕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1994년에서 2001년까지 107대 시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범죄조직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며 뉴욕의 치안을 크게 안정시켰다. 1980년대 뉴욕지하철 범죄를 줄이기 위해 그래피티를 지운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s) 이론'(경미한 범죄를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이론)을 뉴욕 경찰에 도입해 '범죄 도시 뉴욕'의 이미지를 바꿔놓기도 했다.
줄리아니는 또 ’9.11 리더십‘으로도 유명했다. 2001년 9.11 테러가 터지자, 당시 전립선암으로 투병 중이었던 그는 항암제를 먹어가며 사태 수습을 지휘해 미국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때 '미국의 시장', '9.11을 극복한 리더십'으로 명성을 날렸던 줄리아니는 언제부턴가 '좌충우돌하는 애처로운 모습의 옛 정치인'으로 보이게 됐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면 이런 저런 혐의로 연방검찰청의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로 전락해 있다.
‘언제 멈출지’를 몰랐던 줄리아니와는 달리, 그와 비슷한 경력의 마이클 블룸버그는 그래도 지금까지는 언제 멈출지를 아는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의 창업자이자 CEO인 그는 줄리아니의 뒤를 이어 2002년 108대 뉴욕 시장에 당선되며 정계에 진출했다.
필자는 그를 보면 ‘블룸버그의 불펜’ 사진이 떠오른다. 블룸버그는 시장에 당선되자 기존의 시장실 대신 2층의 넓은 홀을 시청 직원 51명과 함께 사용했다. 자신이 사무실 중앙에 앉고 제1 부시장이 1,2미터 떨어져 바로 옆에 앉았다. 책상도 다른 직원들과 같은 크기였다. 그 공간이 ‘블룸버그의 불펜‘이다. 그는 그 불펜에서 직원들과 함께 지내며 보고도 받고 회의를 진행했다.
이런 개방형 소통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한 블룸버그는 3연임에 성공했고, 2013년까지 ‘연봉 1달러’만 받으며 9.11 테러 이후의 뉴욕을 재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 시장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블룸버그는 이후 줄리아니와 마찬가지로 대선주자 급으로 부상했고, 실제로 대선 도전에 나섰다. 2016년에 무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검토하다가 불출마를 선언했고, 2020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의 후보 경선에 참여했다가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며 중도하차했다. 그리고 바이든의 승리를 위해 대표적 경합주인 텍사스, 플로리다, 오하이오 주에 1억 달러(1200억 원)의 자금을 쏟아붓기도 했다.
대통령이 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블룸버그는 ‘언제 멈출지를 아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멈췄고, 남은 막대한 경선 자금을 반(反)트럼프라는 자신의 신념대로 바이든 당선을 위해 쓰며 나름대로의 ‘명분’도 얻었다.
성공적인 경력(연방 검사와 CEO), 성공적인 뉴욕 시장직 수행, 그리고 대선 실패라는 인생 역정은 비슷했지만, 2020년 현재 줄리아니와 블룸버그는 이렇게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줄리아니와 블룸버그의 모습을 보며, 생각은 자연스레 한국의 유명 인물들에게로 미친다. ‘언제 멈출지를 모르는’ 듯 보이는 국회의원, 장관, 시민단체 명사, 종교인, 교수들... 그건 그들 개인의 불행이자 사회의 불행이다.
1937년부터 70년 넘게 하버드대생 268명의 인생을 추적 연구하는 ‘그랜트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하버드대 의대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자신의 책('Adaptation to Life') 마지막 장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나는 연구대상자들 대부분에게서 성공한 것이 건강한 것으로 보이는 한 가지 이유는 이들이 언제 멈출지를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멈출 것인지를 알고 적절한 시점에 멈추는 것.
그건 개인의 인생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해서도, 사회가 건강하게 지속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덕목(德目)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