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해결책과 우리의 전략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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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나는 지구의 오한(惡寒)
지난달 14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20년 지구 표면 온도가 1951~1980년과 비교해 평균 1.02℃ 높았다며 2016년과 더불어 역대 가장 더운 해였다고 발표했다. 더 심각한 것은 더워지는 추이인데, 최근 7개 년이 가장 더운 7년이었고 계속 기록이 갱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10년간(2010년~2019년) 매년 1.5%씩 증가했기 때문에 현재 증가 추세가 지속될 경우 국제사회가 2015년에 합의한 파리협정에 의한 지구 기온상승 억제 2℃ 및 장기목표 1.5℃를 훨씬 넘는 3.2℃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심지어 기후위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지구가 회복할 수 없는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하는 전문가는 기후위기가 생태계, 사회, 경제 시스템을 무너뜨려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역이 많아질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지구 기온 상승이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하고 싶다면 사람의 온도를 생각해 보면 안다. 인간의 체온이 2~3℃만 높아져 39도에 육박한다면, 잘 먹지도 못하고 어지럽고 오한(惡寒)이 나서 정상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해 진다. 올해 들어 5일 간격의 폭설과 갑작스런 혹한을 겪으며, 지구가 열이 올라 오한이 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상청은 주기적으로 눈이 내리는 것이 기상학적으로 가능하나 이번처럼 간격으로 폭설이 오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하면서 북극의 찬 공기가 내려와 불안정성을 높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1℃ 밖에 안 올랐는데도 기후위기로 불리는 지구적 기후변화 영향이 이렇게 가시적인데, 2℃를 넘어 3℃가 넘게 오를 경우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오한을 넘어 인공호흡기를 달 지경에 이르거나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 마저 들었다. 사람이 고열에 시달리면 모든 일상을 멈추고 병원에 가거나 집에서 쉬는데,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손실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열 발생을 미리 막는 것이다.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지만 평상시에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영양 식사 및 위생 수칙을 지키며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다. 지구도 마찬가지다. 고열이 나기 시작하면 그 손실이 너무 크고 감당이 안 되기에, 그 전에 기존 국가의 경제구조나 기업의 경영전략 및 개인의 생활패턴을 바꿔야 한다.
국제사회의 해결책과 선진기업의 대응
많은 국가들이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탄소의 순배출량을 제로화)을 선언하면서 규제 및 정책 강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EU의 탄소국경세(탄소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의 상품을 규제가 강한 국가로 수출 시 세금 부과) 도입 논의 본격화 및 자동차 배출규제 상향 그리고 플라스틱세 신설 등 환경규제 강화 추세에 있고, 미국은 바이든 취임 이후 파리협정에 재가입하는 등 기후위기 해결사로 국제사회에 다시 등장하려고 준비 중이고, 중국도 지난 9월 탄소중립 선언 후 올해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탄소배출권거래시장을 여는 등 국가별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졌다.
이는 글로벌 시민사회, 기업, 학계가 협력하여 작년 초 발표한 36가지 해결책(Exponential Roadmap 1.5)의 실현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파리협약 목표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 현재 온실가스 배출의 절반을 줄여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36가지 부문별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결국 실행은 정책, 금융, 기술에 달렸다고 결론지은 바 있다. 2021년은 국가별 정책 의지로 보나 금융계의 투자 성향으로 보나 기술혁신의 속도로 보나, 기 제시된 해결책의 실현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필자가 2020년 12월 Roundtable on Governance for Climate Action에 Exponential Roadmap의 창립자이자 공동저자인 Johan Falk와 함께 토론자로 참여했는데, 실행과 확산에 토론이 더 집중된 것도 같은 이유다. Roundtable이 열릴 즈음에 영국의 총리도 기술, 금융, 경제를 동시에 잡을 10가지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해상풍력(에너지) 그린수소(산업), 전기차(수송) 금융상품정보공개 등 해결책의 실행을 예고한 바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2020년까지는 선언이 있었고 2021년부터는 실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위에서 제시된 해결책의 실행은 주로 누군가 투자(혹은 개발)하고 제조(혹은 건설)하고 판매(혹은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관계자 중 기업의 역할이 크다. 그럼 선진 기업은 어떤 형태로 실행을 시작하고 있을까? 크게 5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포트폴리오변경 유형이다. 탄소배출이 많은 자산을 매도하거나 반대로 청정자산을 매입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한전인 Iberdrola는 750억유로 재생에너지에 투자하여 2019년 32GW에서 2025년 60GW로 확대할 예정이고 이를 통해 순이익이 34억유로에서 50억유로로 증가할 전망이다. 85%는 미국과 유럽에 투자하고 인수합병보다는 유기적 성장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둘째, 비즈니스모델 변경 없이 청정에너지를 구입하는 것이다. 즉 RE100에 동참하는 것이다. RE100은 기업이 생산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자발적인 약속이다. Apple, Google, Walmart 등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 RE100 참여 기업이 급격히 늘어 RE100을 선언한 기업이 300개에 육박한다.
셋째, 새로운 저탄소 제품에 대한 투자를 통한 시장 선점이다. 6개 덴마크 대기업들은 해상풍력으로 수소를 생산하여 선박, 트럭, 항공기 등에 적용할 계획이다. 전세계 최초 대규모 그린수소 생산시설을 ’23년부터 단계적으로 운영하여, 3GW 규모 해상풍력으로(연간 85만톤 CO2 감축) 수소를 생산할 예정이다. 넷째, 기업경계를 넘어 전후방으로 탈탄소화를 촉진한다. 즉, 기업 스스로 뿐만 아니라 고객사나 협력사의 탄소감축도 함께 도모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한전인 ENGIE는 고객사인 유타대학교 캠퍼스 건물 81개 및 시설의 에너지효율성 개선을 통해 2017년까지 에너지 비용 약 2,700만 달러 절약했고 고객의 기후행동계획(‘50년까지 탄소제로화)에 기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탈(脫)탄소사회를 위한 혁신적 기술개발이다. 빌게이츠는 제프베죠스, 손정의, 마윈 등과 함께 2016년 Breakthrough Energy Ventures를 설립, 2018년부터 저장, 수송, 농업, 건물, 에너지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래기술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벌써부터 기업가치를 높게 인정받은 기업도 많다. 테슬라는 2010년 상장 직후 주가가 5불선에서 머물더니 2013년부터 2019년까지는 50불을 횡보하다가 2020년 들어 500불을 훨씬 넘어섰다. 작년말 유럽에서는 덴마크의 석유공사였던 Orsted가 글로벌 오일메이져인 BP의 시가총액 보다 커졌고, 미국에서는 재생에너지 유틸리티 회사인 Nextera의 시가총액이 ExxonMobil을 넘어서는 등 2년 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탄소중립의 난이도
우리 정부도 2020년 12월, 2050년까지 탄소의 순배출량을 제로로 하는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경제구조 저탄소화, 저탄소 산업생태계 조성,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전환 등 3대 정책 방향 아래, 석탄발전 축소 등 에너지 전환 가속화, 고탄소 산업구조의 혁신, 친환경차 보급 확대, 순환경제 활성화, 기후대응기금 조성, 탄소중립위원회 설치 등 10대 과제를 제시했다.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한 경제구조 대전환의 밑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재정제도 개선 및 녹색금융 활성화, 기술개발 확충, 국제협력 등을 통해 탄소가격 시그널 강화 및 효과적인 탄소감축 이행 지원 등 탄소중립 실행을 위한 인프라도 강화할 예정이다. 정책캘린더로 탄소중립 시나리오 마련(~’21.6), 핵심정책 추진전략 수립(’21), 국가계획 반영(’22~’23) 순서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코로나는 2주 후, 주택문제는 2년 후, 에너지 문제는 20년 후에 정책 효과가 나타난다"는 어느 교수의 말처럼 장기실행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시나리오와 상세추진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모든 이해관계자가 협력해야만 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숙제임을 인지하고 출발해야 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 및 관련서비스의 GDP비중은 65%인 만큼 디스플레이, 조선, 반도체 는 세계 1위, 석유화학은 4위, 자동차철강은 6위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이면에 철강/석유화학/시멘트/반도체/디스플레이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제조업의 70%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에너지다소비 산업구조 및 에너지믹스 등을 감안할 때 2050년 탄소중립은 도전적인 과제이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배출량이 2018년(728백만톤)을 정점으로 감소할 전망이라고 해도 타 국가들에 비해 정점 이후 탄소중립까지의 기간은 촉박한 상황이다. EU는 60년, 일본은 37년인 반면 한국은 한국 32년에 불과하다. 정부도 탄소중립 전략 이행이 일자리 감소 등 기업과 국민에게 줄 고통과 부담도 우려될 것이고, 산업계에서도 비상한 경영환경에서 속도를 조절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개인도 화석연료에 젖어 있는 편리한 생활습관을 버리고 불편함을 감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우리가 추진하고 말고를 결정하기 어려운 글로벌 대세이고, 미국이 글로벌 기후리더로 복귀하면서 탄소국경세 등 기후위기 대응실행에 동참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즉, 동참하지 않으면 투자, 수출, 해외 자금조달, 기업신용등급 등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 있는 만큼, 대외의존도가 높은 개방형 통상국가인 우리나라는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대세에 대해 동참하지 않을 선택권이 없어 보인다. 후세에 대한 도리나 미래 아이들을 위한 책임은 차치하고, 당장 우리 세대에 국가경쟁력부터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골드러시에는 청바지와 삽을 팔아야
그러나 적어도 필자가 지난 27년간 몸 담아온 우리 기업은 잘 해낼 것이라는 희망을 여기저기서 발견한다. 풍력발전설비 세계1위 기업인 덴마크 Vestas나 전기차 시가총액 세계1위인 Tesla와 국내 기업간 경쟁력의 차이가 나는 것은 잘 알고 있고 단기간에 따라 잡기 쉽지 않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전기차의 핵심부품은 배터리이고 풍력발전설비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후판(철강)이 필요한데, 국내 기업이 이미 글로벌 톱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와 동일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는 태양광발전설비,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배달하기 위해 필요한 케이블과 전력변환장치, 폭증하는 해상풍력발전소 투자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해양플랜트건설 등도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이미 글로벌 수준이다.
한 조선사 관계자가 “철을 바다에 띄우는 기술이 뛰어나니 배를 바다에 띄우는 것과 같이 풍력발전소를 바다에 띄우는 것이다.”하고 한 말에 자신감이 베어 있다. 단기적으로는 이미 글로벌 톱 수준인 상술한 기업들이 글로벌 탄소중립 시장에서 확실히 자리매김 해야 장기 성장동력 마련도 수월해 진다. 19세기 미국 골드러시 당시 청바지, 삽, 곡괭이 시장을 선점하는 것과 같다. 탄소중립이라는 불편한 숙제가 국제사회에 던져지지 않았다면, 7대 메이저 석유회사가 주도해 온 글로벌 에너지시장을 한국 기업들이 주도하는 상상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이 상상을 실현할 탄소중립이라는 기회가 온 것이다. 탄소중립 추진전략은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지속가능한 달성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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