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 상식과 합리성에 기초한 건설적 논쟁을 위하여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2월21일 17시10분

작성자

  • 옥동석
  •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메타정보

  • 0

본문

우리 정치권의 기본소득 논의는 숨 가쁘게 진화하고 있다. 2020년 1월 기본소득당이 출범할 때만 하여도 정치권은 기본소득 개념을 이해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코로나19의 경제위기로 모든 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이 현금으로 지급되면서 기본소득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였다. ‘재난지원금’에 ‘기본소득’ 명칭까지 붙여지자 기본소득의 당위성은 일반 국민들의 의식 속으로 급속히 파고들었다.주1) 

주1) 재난기본소득의 명칭에 대한 논란은 옥동석, “재난기본소득, 과연 보편성이 있는가?”, News Insight, 국가미래연구원, 2020. 2. 2 참조.

 

경제위기와 무관하게, 평상시에도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에게 현금성 지원을 당연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정치권의 논의는 기본소득의 개념과 당위성을 넘어서고 있다.

2020년 6월 보수 야당인 국민의힘도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채택하면서 기본소득의 재원방안을 정치권 최초로 공개하였다.주2)

주2) 이 공약의 의의에 대해서는 옥동석, “기본소득 공약, 정치혁신의 계기로 삼자!”, News Insight, 국가미래연구원, 2020. 8. 30 참조.

 

윤희숙 의원은 기존의 ‘근로장려세제’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기본소득을 제안하였는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연금 등으로 대략 21조원의 재원을 제시하였다. 기본소득당 등 진보 측에서는 이 방안을 기본소득이 아니라고 맹비난하였으나, 이들은 재원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연한 트집에 불과하였다. 특히 전문가와 학자들 사이에서는 음(陰)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로 알려진 ‘근로장려세제’가 기본소득과 동등하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주3)

주3) 두 제도의 동등성에 대해서는 옥동석, “기본소득·기본자산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News Insight, 국가미래연구원, 2020. 11. 26 참조. 

 

2021년 2월에는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들 사이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불붙기 시작하였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국민생활기준 2030’이라는 이름의 ‘신복지제도’를 제안하며, 기본소득은 미국의 알래스카 주정부 외에는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다고 비판하였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지구상에서 기본소득제도를 성공리에 운영한 나라가 없다”고 거들었다. 이러한 비판에 직면하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월 7일 페이스북에서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을 성취하며 세계를 선도할 수 있다”며 자신의 기본소득 재원방안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였다. 

 

이재명 지사는 “우리나라의 복지관련 지출은 OECD 평균의 절반 정도인 11%로 … 200조원 가량 복지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재원조달 방안을 단기, 중기, 장기로 구분하여 제시하였다. ①단기적으로 예산조정을 통해 26조원을 확보하여 1인당 연간 50만원을 지급하고, ②중기적으로는 조세감면의 절반을 폐지하여 마련한 50조∼60조원으로 1인당 연간 1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며, ③장기적으로는 특별회계를 설치하고 기본소득에 대한 목적세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10년 이상을 목표로 하는 목적세에서는 탄소세, 데이터세, 로봇세, 토지세를 추가로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상식과 합리성에 기초한 건설적 논쟁을 기대한다”고 부연하였다. 

 

이재명 지사가 기본소득의 개략적 재원방안을 제시한 것과 달리 이낙연 대표의 ‘신복지제도’는 아직 그 재원방안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는 ‘신복지제도’가 민주당의 비전임을 강조하면서 그 이름을 ‘국민생활기준 2030’이라 명명하였는데, 이는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의 철학을 이어가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신복지제도’는 국민들의 일상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분야에서 –소득, 돌봄, 의료, 주거, 고용, 교육, 문화, 환경, 안전 등- 국가가 책임지고 이루어야 할 ‘최저기준’과 중장기적 목표로서 지향할 ‘적정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복지정책의 공약이 그 재원방안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수십년 간의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15년 전 2006년 8월에 발표하였던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이 실패하였던 결정적 이유는 구체적 재원조차 없이 희망사항만 잔뜩 열거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는 40∼5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재정전망 하에서 복지재정을 설계해야 한다는 반성이 나타났던 것이다. ‘비전 2030’이 당시 언론에서 ‘허황된 계획’, ‘세금폭탄’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장기재정전망의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기여를 한 셈이었다. 

 

이제 우리는 15년 전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기본소득의 재원은 재정문제이기에 국가재정의 장기적 상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반드시 함께 검토해야 한다. 더구나 이재명 지사는 우리나라의 복지지출이 OECD 절반에 그치기에 복지재정을 200조원 가량 증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국무조정실 사회보장위원회는 “현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경우, 2060년이 되면 고령화로 인해 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분야를 중심으로 공공사회복지지출이 빠른 속도로 증가해 GDP 대비 29%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이미 수년전 공식 확인하였다. 인구변화만으로 복지지출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고 연금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본소득까지 도입하여 미래세대의 부담을 또다시 가중시켜야 할 것인가?

 

전세계 유례가 없는 고령화로 인해 우리의 복지지출 증가는 국가재정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에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2015년 장기재정전망에서 “일반재정부문은 강력한 세출구조조정을 지속할 때 지속가능하고, 사회보험부문은 현 제도 유지 시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평가하였다. 또한 국회예산정책처도 2020년도 장기재정전망에서 “현재의 재정여력은 충분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급격하게 축소”되어 “현행 제도 유지 시 장기적으로 재정이 지속가능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경고하였다. 우리 사회의 전문가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전망한 결과가 이러한데, 과연 우리는 이 사실과 기본소득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우리는 기본소득의 주요 플레이어들에게 이 질문을 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기본소득당, 국민의힘, 이재명 지사에게 그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보다 세부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집단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어떤 예산을 감축하고 어떤 조세감면을 폐지할 것인지- 또 경제와 국가재정에 –특히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에 대해- 어떤 장기적 영향이 있을 것인지 명확하게 분석할 수 있도록 자세한 정보를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낙연 대표에 대해서는 자신의 ‘신복지제도’에 얼마의 재원이 소요되고 또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 자세히 밝힐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러한 질문과 답변은 이재명 지사가 요구한 것처럼 ‘상식과 합리성에 기초한 건설적 논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건설적 논쟁은 우리의 정치를 선진화하는 멋진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희망을 위하여 필자는 작년 8월에 쓴 글의 일부를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싶다. 

 

“정치적 공약은 그 재원 등 각종 수치들을 명확하게 드러낼 때 그 내용이 분명해진다. 정치적 공약은 모호한 수사(修辭)들로만 구성될 수 없다. 수치의 계산을 통해 정당들은 훈련될 것이고, 모호하고 어렴풋한 희망이 정당의 공약으로 자리 잡는 일이 뿌리 뽑혀 나갈 것이다. 정치적 논쟁에서 각종 수치 계산을 통해, 정당 간의 차이는 물과 기름의 이념적 차이가 아니라 저울 눈금과 같은 정도(程度)의 차이로 전환될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의 문명화를 위해서는 각종 공약의 재원방안을 국민들이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때 비로소 공약의 현실성을 판단하여 포퓰리즘을 극복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에 대해 자신들의 공약에 대해 그 재원방안을 반드시 명확하게 밝힐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안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도 정치중립적인 평가보고서를 반드시 수반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그 역할을 법률안 소요비용을 분석하는 국회예산정책처에 기대해 볼 수 있다.” 주4)

주4) 옥동석(2020. 8. 30), 앞의 글.

 

​ 

0
  • 기사입력 2021년02월21일 17시10분
  • 검색어 태그 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