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원전 추진의 위험성과 불법성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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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직원들이 감사원의 원전 관련 감사를 앞두고 삭제한 파일 목록이 공개되면서 북한에 원전 건설을 추진 했는 지와 관련한 의혹이 일고 있다. 어떤 내용이었기에 공무원이 해당 파일을 삭제했는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1월 31일 산업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파일은 단순한 검토자료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야당에서는 이적행위라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고 청와대는 법적 조치를 강구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1. 대북 원전 추진의 위험성
대북 원전 추진과 관련한 사실관계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그 내용이 산업부의 발표대로 북한 비핵화에 발맞추어 원전을 제공한다는 일반적인 계획일 수도 있고, 그보다는 조금 더 자세한 원전 제공 관련 절차적 또는 기술적 내용일 수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본다면 우리 정부가 북한의 요청에 따라 원전기술 일부를 북측에 제공하려 했던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한국형 원전기술이 북한에 지원될 경우 대한민국의 안보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핵무기의 원료인 핵물질 생산과 핵잠수함 원자로 제작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 원자로는 핵무기에 사용되는 핵물질 생산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아니다. 적은 양이나마 재처리한 플루토늄을 계속해서 생산할 수 있고 이는 다시 우리를 겨냥한 핵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하고 실질적인 검증을 통해 핵무기 생산 역량을 폐기하기 전에 원전을 제공하는 것은 북측에게 핵물질 생산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늘날 북한에 원전이나 원전기술을 제공하는 데서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문제점은 북한이 건설 중인 핵잠수함의 소형원자로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8차 노동당 당대회에서 핵잠수함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단계에 있다고 한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그 핵심 기술인 소형원자로 제작이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이 1986년부터 가동해온 5 메가와트(MW) 원자로는 기술적으로 낙후된 모델이다. 신형 핵잠수함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평이다. 따라서 북한은 기술적으로 발전한 원자로가 필요하고, 한국형 원자로 관련 정보가 제공된다면 우리에 대한 위협으로 되돌아올 북한의 핵잠수함 건설을 돕는 일이 된다.
2. 대북 원전 추진의 불법성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핵이나 대량상살무기와 관련된 물자를 북한에 지원하는 것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이다. 하지만 북한에 원전을 제공하겠다는 계획 자체만으로는 불법이 아니다. 이미 1994년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제네바합의(agreed framework)’에 의거, 북한 함경남도 신포지역에 2기의 경수로를 제공하는 계획이 2006년까지 추진된 전례가 있다. 만일 북한과 비핵화 협상이 다시 진행될 경우 북측이 전력난 해소를 위해 원전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원전 제공 문제가 다시 부각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계획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그 조건으로 해야 하며,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복귀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총 10개에 달하는 대북제재가 만들어지면서 북한에 원전 관련 기술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불법화되었다. 따라서 대북제재위원회의 승인 없이 관련 기술이 북에 전달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NPT 회원국인 한국이 북한에 핵 관련 기술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조약상 의무에 따라 북한이 NPT 회원국으로 복귀하고 이에 따른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보장조치를 수용해야 한다는 조건도 충족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무시한 대북 원전 지원은 국제법상 불법행위다.
마찬가지로 국내법적으로도 대북 원전 지원은 단순한 검토의 경우 별다른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북한 비핵화 진전에 따른 보상 계획 차원의 검토라면 정책적 차원에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뒤늦게 산업부가 단순한 내부 검토자료라고 발표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 내용이 북한 비핵화 진전과 무관하게 또는 북한을 비핵화로 유인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원전 지원을 검토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국제법적으로 불법행위에 해당하며, 국내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일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력난을 호소하며 원전 지원을 요구했고 정부가 비밀리에 이를 검토했다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대한민국 형법 제99조 이적죄의 대상은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害)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한 자이다. 북한은 대한민국 헌법상 여전히 불법단체이고 정전체제에 있어 우리의 적이다. 따라서 핵잠수함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원전기술이 북한에게 합법적인 절차 없이 건네졌다면 이는 이적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 북한에 실제 정보가 건네지지 않고 그런 계획만을 수립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위법행위다. 이적죄는 그 미수도 처벌하기 때문이다. 만일 정부에서 합법적인 절차 없이 북한에 원전 기술 제공을 검토했다면 이를 지시한 자와 작성한 자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대북 원전 지원 문서의 삭제가 엄중한 사안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따라서 철저한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하다.
작금의 상황에서 문제가 커지는 이유는 합법적인 내용의 문서라면 왜 해당 공무원이 감사를 앞두고 시급히 삭제했을까 하는 점이다. 의심이 가는 부분은 더 존재한다. 파일 자체의 관리도 정상적이지 않다. 공무원들의 관행상 업무 파일은 일반명사로 관리한다. 그런데 이번에 삭제된 파일을 보면 핀란드어로 북쪽을 의미하는 ‘뽀요이스(pohjois)’라는 마치 암호와도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더구나 그 제작 시기도 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라는 점에서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북한의 요구에 따라서 합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원전 건설이나 원전 관련 정보 제공을 검토한 것은 아닌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이유다.
대북 원전 제공 의혹이 단순한 해프닝인지 아니면 심각한 문제인지는 그 사실관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특히 후자라면 있어서는 안 되는 불법행위를 정부가 한 것이고, 나아가 적극적인 은폐시도까지 한 것이 된다. 따라서 불필요한 의혹을 털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철저한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하다. 산업부가 발표한 자료의 원문을 공개해야 하고 또 다른 자료가 있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관계 파악을 누군가가 방해한다면 이 역시 국가 기강을 훼손하는 잘못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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