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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의 정치경제학…비난받을 이유 없지만 여론 감안해 운용의 묘수를 둬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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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1월25일 11시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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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3월 하순, 성도이엔지의 주가가 급등했다. 그해 3월 23일 성도이엔지의 주가는 3만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사나흘 만에 5만원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러자 29일 공매도가 발생했다. 우풍상호신용금고가 4만5000원에 34만주를 매도했다.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해 곧 하락할 것으로 본 것이다. 자기가 갖고 있는 주식을 팔았으면 공매도가 아니다.  하지만 우풍은 성도이엔지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한 것이니 공매도다. 

 

공매도는 두 가지다. 주식을 남에게 빌려서 매도한 후 나중에 주식을 사서 갚는 건 차입공매도다. 하지만 우풍은 주식을 빌리지 않았다. 이처럼 빌리지 않고서 미리 주식을 매도한 후 나중에 어떻게든 채워 넣는 건 무차입공매도다. 여기서 사달이 났다. 당시 성도의 주가 급등은 그 회사 대주주들의 주가조작 때문이었다. 우풍은 그런 사실을 모른 상태에서 공매도를 했다. 

 

문제는 성도의 대주주들이 우풍이 공매도한 주식을 모두 사들이면서 발생했다. 주가가 하락하긴 커녕 외려 급등했다. 연일 상한가를 치면서 4월6일 8만3천원까지 올랐다. 우풍 입장에선 난리가 났다. 큰 손실을 보는 건 자명했다. 4만5000원에 매도한 주식을 8만3000원에 사서 갚아줘야 했으니.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성도의 주식을 살 수가 없었다. 유통주식수가 작았기 때문이다. 발행주식수는 145만주인데 대주주들이 갖고 있는 주식이 70%나 돼 실제 유통되는 주식은 40만주 남짓이었다. 결국 우풍은 주식을 못 샀고 성도이엔지주식은 한국 증시 사상 처음으로 결제 불이행 사태를 빚었다. 또 성도의 대주주는 주가조작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주식은 거래정지 됐으며 우풍은 도산했다. 이후 무차입공매도는 불법으로 금지됐다. 차입공매도만 할 수 있게 됐다.

 

이 사례에서 대부분 주목하는 건 공매도의 부정적 기능이다. 무차입공매도로 결제불이행 사태가 터졌다는 점이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더불어 주목해야할 건 공매도의 순기능이다. 공매도를 통해 주가조작이 발각된 것이다. 

 

요즘 공매도 논란이 뜨겁다. 공매도를 계속 금지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올 정도다. 정치권에서도 핫 이슈다. 여야 모두 한목소리로 공매도 금지 지속을 외친다. 공매도는 독(毒)이라는 정치인도 있다. 

 

지금은 ‘공매도 금지’ 중이다. 지난해 2월 중순 코로나19로 주식 시장이 급락하자 정부가 3월 13일 상장주식 전 종목을 대상으로 6개월간 공매도를 금지했었다. 이어 6개월 더 연장했다. 다시 연장하지 않으면 3월에는 풀어야 한다. 그런데도 최근 정부는 2월 중에 정확하게 결정하겠다느니, 공매도의 제도 개선을 전제로 공매도를 재개하겠다고 한다. 공매도 금지를 3월에 풀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공매도 금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가가 급락했을 때도 공매도를 금지했다. 그해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8개월간이었다. 2011년에도 3개월간 공매도를 금지했다. 특히 금융주는 2008년 10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무려 5년간 공매도를 금지했을 정도다.  

게다가 공매도 금지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강하다. 코로나19로 공매도 금지조치를 취한 나라는 많지 않다. 선진국 가운데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정도다. 그나마 지난해 3월부터 두 달 정도만 금지했다. 우리처럼 1년인 나라는 없다. 공매도 규제도 우리가 더 강하다. 

 

왜 그럴까? 이런 식으로 금지할 거면 아예 공매도 제도 자체를 없애면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그 얘기는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공매도 거래 비중은 선진국 자본 시장에 비해 매우 낮다. 2019년 기준 공매도 거래대금의 비중은 미국과 일본은 40%인데 반해 우리는 4.6%다. 이런 상태에서 공매도를 금지한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매도를 금지하는 건 증시 안정화 때문이다. 공매도가 주가 급락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풍상호신용금고가 성도이엔지를 공매도한 건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해서였다. 그래서 공매도를 하면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누군가가 어떤 회사 주식을 공매도한다고 하자. 다른 투자자들이 그걸 보고 회사가 심각한 모양이라고 오해를 하고 주식을 투매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주가가 하락한다. 그걸 노리고 투자자들이 공매도를 하는 거다. 투자자들의 투매심리를 자극하여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고 시장을 불안정하게 한다. 

 

물론 개인투자자들은 피해를 본다. 그런 사례가 제법 있다.

2012년 셀트리온, 2016년 한미약품 공매도가 그렇다. 셀트리온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악성 루머를 퍼뜨리면서 공매도를 했고, 한미약품은 기관투자자들이 내부자 정보를 활용해 공매도를 한 경우다. 둘 다 개인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은 큰 이익을 봤고.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된 까닭이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공매도는 개별 주가에만 영향을 미칠 뿐 증시 전체를 교란하지 못한다. 심지어 개별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그게 공매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반대로 주가하락이 공매도의 원인이라는 연구도 있다. 만일 공매도가 주가를 확실히 떨어뜨린다면 테슬라 주가가 엄청난 공매도에도 불구하고 급등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테슬라를 공매도한 투자자들이 지난해 401억 달러(약 44조3000억 원)의 손실을 봤다지 않는가. 

 

이뿐만 아니다. 공매도가 증시의 불안을 가속화하지 않는다는 연구도 꽤 있다. 공매도 금지로 주가가 올랐다고 하자. 그래도 문제다. 주가가 올랐다면 공매도 금지가 길어질 때 주가에 거품이 잔뜩 끼기 십상이다. 그다음은? 주가 급락은 필연이다. 공매도가 아니라, 공매도 금지가 증시 불안의 원인이란 의미다.

 

공매도 제도 자체를 없애지 못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순기능이 많아서다. 공매도는 주식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공매도가 없다고 하자. 기업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주가에 반영되지 못한다. 대신 차익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에 의해 과대평가된다. 당연히 주가 거품이 생긴다. 거품은 터질 수밖에 없고, 수습할 수 없는 위기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공매도는 이런 우려를 줄여준다. 기업 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주가가 오른 주식이 공매도의 공격목표다.

 

순기능은 또 있다. 투기세력이 날뛰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투기세력이 작전으로 주가를 끌어올린다고 하자. 하지만 이 주가는 곧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매도 투자자는 그걸 예상하고 주식을 미리 팔기 때문이다. 성도이엔지 사례가 단적인 증거다.

 

그런데도 왜 공매도 논란이 이렇게 뜨거울까? 개인투자자들의 반발 때문이다. 경제적 합리성보다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한 포퓰리즘적 이유가 크다는 얘기다. 공매도는 재원이 들지 않는 복지정책이다. 재난지원금처럼 대규모의 예산이 소요되는 것도 아니고, 일자리나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정치권은 공매도를 금지할 인센티브가 크다는 얘기다. 나중에 터질 거품은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건 개인투자자들의 정치적 지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거품이라는 폭탄돌리기가 일어난다. 

 

물론 공매도가 동학 개미들의 피눈물이란 의견이 전혀 일리 없는 건 아니다. 개인투자자들이 불만을 가지게끔 정부가 원인 제공을 했다. 공매도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는데도 금융당국은 제대로 적발하지 못했다. 적발하더라도 처벌이 약했다. 지난 연말에 정부가 처벌을 강화한 이유다. 이제는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게 됐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문제도 개선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를 이용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국민연금 등의 기관투자자들이 개인에게 주식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 빌려주는 기간도 짧다. 그래서 전체 공매도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본의 경우 25% 정도 되는데 우리나라는 1% 정도다. 99%가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이다. 

 

공매도는 제도 그 자체만 보면 선(善)과 악(惡),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중립적이다. 문제는 운용이다. 자동차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세게 밟아선 안 되는 이유다. 자동차가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공매도 금지도 마찬가지다. 공매도가 그렇게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다만 개미들의 불만이 무시돼선 안 된다. 정책은 여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미들을 달래는 정책도 같이 펴야 한다. 제도를 더 개선해야 한다. 전 종목을 금지할 게 아니라 몇몇 종목으로 한정하는 것도 검토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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