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택정책> (20,끝) 새로운 주택정책 체계의 모색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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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주택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주택정책 체계를 모색함에 있어서 이런 현실을 충분히 감안하여야 한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정책 체계를 설계하는 대신 종전에 간과한 부분을 새로운 정책의 틀에 반영하고 고쳐나가는 실용적인 접근법을 택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앞에서 게재한 글에서 현행 주택정책의 문제점들을 다각도로 살펴보았다. 그것들을 염두에 두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앞으로 적용하여야 할 주택정책의 틀, 즉 주택정책의 목표, 수단, 그리고 정책집행방식 등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이하의 논의는 주택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최근에 벌어진 것과 같은 주택시장의 혼란을 더 이상 야기하지 않는 주택정책의 체계를 모색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앞으로 무리 없는 주택정책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정책과제들을 생각해보는 데 논의의 초점을 맞출 것이다.
1. 주택정책의 몇 가지 유형
사람마다 주택구입 여력(housing affordability)이 다르고 그에 따라 각기 다른 주택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최상위 소득계층에서는 주택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반면 최소한의 생활 기반마저 갖추지 못한 주거취약계층은 주택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와 같이 주택구입 여력에 따라 당면하는 주택문제가 달라진다. 주택정책은 이와 같이 사람들의 주택구입 여력에 따라 달리 집행되어야 한다.
주택구입 여력의 차이를 아래 그림 하단에 표시하였다. 주택 구입 여력은 소득수준에 비례한다고 보고 그에 상응하는 소득수준도 같이 표시하였다. 주1)
※ 주1) 주택 구입 여력은 소득 이외의 다른 요소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만큼 아래 그림은 어디까지나 일종의 예시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리고 아래 그림의 상단에는 각 소득계층이 직면하게 되는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택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예시적으로 표시하였다.
이 그림에 따르면 주택 구입 여력에 따라 주택정책의 유형이 몇 가지로 나누어진다. 다른 나라 사례를 통해서도 주택정책의 유형이 여럿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주택정책은 크게 보아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주택 소유 촉진 정책과 경제적 약자(저소득층)의 주거 안정 지원 정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편 시장에서 형성되는 주택가격을 직접적으로 통제 혹은 관리하고자 하는 나라는 찾기 힘들었다. 그림에 (시장)으로 표시된 부문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간여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그림은 2007년 정책당국(재정경제부 등 2007)에서 작성하였다. 당시 정부는 주택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면서 서민의 주거안정을 지원하는 쪽, 즉 위의 그림에서 협의의 주택정책에 해당하는 정책 영역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계획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상위소득계층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주택시장”은 시장의 원리에 따라 운용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 이후 협의의 주택정책, 즉 경제적 약자를 위한 협의의 주택정책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즉 공공 임대주택의 공급이 크게 늘어났다. 주2)
※주2) 그러나 재정경제부 등(2007)에서 제시한 공공주택 건설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였는데 그 이후의 정부에서 이 계획을 대폭 수정하거나 파기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택시장”에 관한 정책에서는 의지 표명과는 반대로 후퇴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주택시장에 대한 정책 당국의 접근법은 당시 표명하였던 정책방향과는 정반대이다. 주택시장에 대한 그릇된 접근법이 최근 주택시장의 불안을 야기하는 핵심적인 원인이 되었다. 앞으로 주택정책의 체계 변경은 바로 “주택시장”과 관련하여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정립할지가 핵심이 될 것이다.
2020년 여름을 지나면서 기존 주택정책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 즉각적으로 그 반대효과가 나타날 정도로 시장은 예민해진 상태이다. 그 이후 정부는 주택 공급 확대를 부쩍 강조하는 등 그간의 정책기조에서 탈피할 수도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주택을 확대 공급하겠다는 것은 종전에 비해 진일보한 접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주택정책의 기본 틀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의도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제까지 추진해온 주택정책의 기조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없지 않다.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거론하는 데에는 서울 지역의 주택가격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여전히 주택가격 안정을 정책목표로 삼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정책 프레임을 고수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제는 이와 같은 주택정책 프레임은 포기되어야 한다. “주택시장”에 관한 정책의 틀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역대 정부가 주택정책에서 실패한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주택가격 안정을 목표로 수요 억제 수단을 동원하는 식의 주택정책 프레임은 앞으로 더 이상 적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 주택정책 목표의 재설정
이하의 논의에서는 “주택시장”과 관련한 정책을 주로 다루게 될 것이다. 물론 주택시장과 연관되는 사안이 있는 경우에는 경제적 약자를 위한 정책도 일부 언급하게 될 것이다.
우선 주택정책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모름지기 정책이라 함은 국민의 여망을 수용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다. 주3)
※주3) 정책을 이와 같이 정의하는 것이 현대적 국가관에 부합한다고 생각된다. 국가의 이념이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국민이 기여하도록 요구하고 강제하는 것을 정책으로 보는 사고는 전근대적 국가관에 입각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주택정책은 사람들이 직면하는 주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움을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집 없는 사람에게는 내 집을 갖고자 하는 바람이 곧 주택문제가 된다. 한편 모든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모두가 주택을 소유토록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주택을 보유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현실을 무시하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주택을 소유토록 지원하는 것도 결코 합당하지 않다.
현실적인 수준에서 주택정책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겠다. 주거공간으로서의 주택을 이용하는 상황이거나 주택의 구입과 보유, 그리고 처분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주택과 관련하여 큰 걱정을 하지 않게끔 하는 것을 이상적인 주택정책의 목표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정의는 그 대상에 따라 다소 변화될 수는 있을 것이다.
주택“시장”관 관련한 정책에서는 그 목표가 좀 더 구체적으로 정해져야 할 것이다. 주4)
※주4) “시장”이라고 하여 자유방임상태로 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특히 주택은 자산으로서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금융불안 현상이 반복되듯이 주택시장에서도 시장실패가 나타나기 쉽다. 따라서 정부가 주택시장의 안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즉 주택시장을 대상으로 한 정책도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주택정책의 목표는 “주택시장의 안정” 정도가 합당할 것이다. 이는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추구한 주택가격의 안정과는 전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주택시장의 안정은 주택가격이 어느 정도 변동하는 것을 용인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주택가격이 ① 일정한 범위 내에서, ②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변한다면 주택시장은 안정적인 상태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범위 이내라 함은 주택을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택구입능력이 상대적으로 급격히 악화되지 않는 수준을 뜻한다.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계층에서는 저축 등을 통해 가까운 장래에 집을 구입하고자 할 것이다. 이들의 소득 수준이 상승하고 저축 규모가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주택가격이 훨씬 더 빨리 상승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이 여기에는 내포되어 있다.
주택정책의 목표를 이와 같이 설정하는 것은 중산층이 저축 등을 통해 한 단계 높은 주거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주기 위함이다. 주택정책을 통해 이러한 장치를 강구함으로써 사람들의 일하려는 의지를 강화하고 나아가 튼실한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주택가격의 급격한 하락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일은 대개의 경우 잘 일어나지 않는다. 주택시장에서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것도 주택시장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다. 주택가격이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주택의 보유 및 거래와 관련하여 불확실성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주택의 구입과 보유, 그리고 처분 등의 과정에서 수반될 수 있는 불확실성을 경감하는 것이 주택정책 목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주택 관련 불확실성의 원인 요소들을 최소화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마땅한 책무이다.
3. 주택정책 수단의 적합한 운용
일반적으로는 “시장”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여야 할 일을 많지 않다. 하지만 주택시장은 그 특수성으로 인해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종전처럼 강압적인 방법으로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도 없다. 주택시장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서는 종전의 직접적 규제와는 전적으로 다른 정책수단을 개발하여야 한다.
앞으로 주택시장의 안정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도의 안정적 운영, 주택 공급 기반의 확보 등으로 집약된다. 그리고 주택 수요가 건전하게 형성될 수 있도록 거시경제정책 운영기조를 변경하여야 하겠다. 그동안 거시경제정책에서 주택가격을 명시적으로 감안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는 주택시장의 안정을 기하는 데 거시경제정책도 마땅히 기여해야만 할 것으로 판단된다.
<주택 관련 세제의 항구적 개편>
주택시장의 제도적 기반 중 주택 관련 조세 체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동안 주택경기 부침에 따라 주택관련 조세 제도를 수시로 변경해왔다. 잦은 조세체계 개편으로 시장 불안이 촉발되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잦은 조세제도의 변경은 정권이나 정부에 따라 자의적으로 법률과 규정을 바꾸는 풍조로 이어지고 심지어는 법치주의의 원칙을 무너뜨림으로써 시장이 제대로 작동될 수 없게 하였다. 앞으로 주택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주택관련 세제의 정상화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안정적으로 운용하여야 할 것이다.
주택관련 조세를 수시로 변경해온 폐해가 엄청나다. 현재 전문가들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내용이 복잡하다. 더욱이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전혀 기여하지 못하였다. 주택의 취득과 보유, 그리고 매각 등 일련의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야기하였다. 징벌적 과세라 할 정도로 세금들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어 있는 데 더하여 주택의 거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주택 관련 세제는 주택 잠김 현상을 야기하여 앞으로 주택가격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주택 관련 조세체계를 이대로 유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현행 조세체계를 계속 유지하기도 힘든 것으로 평가된다.
현행 주택 관련 세제의 문제점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의 주택 관련 조세 체계의 개편은 거래세를 현재보다 인하하고 보유세의 적정 수준을 새롭게 정하는 일 등 두 가지로 집약될 것으로 판단된다.
먼저 거래세 인하는 향후 주택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택 가격의 변동을 시장 자체 내에서 흡수하기 위해서는 거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높은 거래세로는 주택 거래가 활발해지기 어렵다.
다만 주택의 투기적 보유를 방지하기 위하여 양도소득세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1가구 1주택 소유자가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새로운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에는 양도소득세를 면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 수 있다. 그 이외 경우를 대상으로 투기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명확히 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다주택 보유 여부, 보유 기간, 보유 사유 등을 감안하여 그 기준을 정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의 투기기간(speculative period) 제도를 참고할 만하겠다.
보유세를 현재보다 높게 책정할지 여부는 앞으로 주택정책의 목표, 특히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지원 등의 정책적 수요에 의해 결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겠다. 그동안의 주택 가격 상승 등으로 중위 소득 계층 이하에서는 주택 구입 여력이 크게 악화되었다. 이들에 대한 정책 수요는 점증하고 있다. 공공 임대주택의 확보, 임대료 지원 등 정책적 수요는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데 주택 보유세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차원에서 주택보유세제는 협의의 주택정책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간접적인 수단으로 적극 활용될 여지가 많다고 하겠다.
한편 보유세의 운용과 관련하여서도 종전의 방법과는 달리 운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주택보유세의 과표를 매년 달리 정하고 있다. 이보다는 주택 매입 가격을 기준으로 보유세를 징수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방안과 양도소득세가 결합하게 되면 주택의 투기수요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주택 구입 가격을 기준으로 보유세를 부담하게 되면 그 부담을 감당할 의향과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주택을 매입하게 될 것이다. 보유세를 부담하면서도 주택을 구입하겠다는 것은 금융기관 대출 등에 의존하여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 주택을 구입하려는 것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주택 수요 억제책을 활용되는 LTV DTI 등에 관한 규제도 수시로 변경하는 것도 시장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수단들은 원칙적으로 금융기관의 책임하에 자율적으로 운용토록 하여야 하겠다. 대신 금융기관들은 거시건전성 정책의 차원에서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의 경영전략이 거시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풍토가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요컨대 조세 체계 등은 한 번 정하고 나면 가급적 변동시키지 말고 제도화하여 항구적으로 운영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것이 앞으로 주택시장의 불안 혹은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안 중의 하나로 생각된다. 이런 차원에서 구체적인 조세체계의 개편 방안에 관한 논의가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주택공급의 안정화>
주택의 원활한 공급이 주택시장의 안정성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이다. 한 번의 주택 공급 위축의 영향은 일시적인 수급의 문제로 그치는 게 아니라 장구한 시일에 걸쳐 그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례들을 통해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주택의 공급 규모를 일정하게, 그리고 안정적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정책적 역량이 모아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주택의 공급은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하여야 한다. 하나는 신축 주택의 공급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주택의 거래이다. 기존 주택의 거래 활성화는 거래세의 인하에 관한 논의를 통해 이미 언급하였다. 아래에서는 신규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방안을 몇 가지 생각해보기로 하자.
주택 공급은 기본적으로 민간부문에서 담당해야 할 과업이다. 따라서 민간의 주택공급을 원활히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자 한다.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규 주택의 공급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접근은 확실히 피해야 한다. 주택 공급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주택시장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는 것이 과거 경험이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등의 시행이나 유예에 따라 아파트 공급에 큰 기복이 나타났다. 그리고 단기 가격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재건축 등을 억제하는 정책은 장기적으로는 주택시장의 불안을 가져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둘째, 재건축이나 재개발 등에 관한 규칙을 명확하게 정할 필요가 있다. 재건축 재개발 요건을 미리 정하고 그 요건에 부합하면 자동적으로 재개발 재건축이 이루어지도록 한다면 주택 공급이 좀 더 원활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재건축 요건 등에 주택정책의 필요에 따라 공공부문의 개입 여부도 미리 정해둘 필요가 있다. 현재 공공 임대주택의 확보를 위해 재건축 등에 공영개발의 개념이 도입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용적률의 인상 등을 허용하되 그중의 일부를 공공주택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제도화할 것인지 여부를 조속히 결정하여야 한다.
셋째, 주택경기 하강 국면에서도 민간의 주택 건설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공공부문에 의한 주택비축 기능을 확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종전에 주택경기가 위축되면 미분양이 발생하였고 이에 대응하여 규제 완화 등을 시행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앞으로는 미분양이 발생하면 공공기관 등이 미분양 주택을 구입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주5)
※주5) 주택 구입 자금은 채권을 발행하여 조달토록 하면 재정적 부담도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 목적으로 발행되는 채권에 대하여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거나 이자소득에 대해 세금을 면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면 그로 인한 부담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주택들은 임대 주택 등으로 운영하다가 주택 경기가 회복되고 주택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는 등 시장이 불안정해지는 경우 매각함으로써 시장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중장기 주택 공급 여력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애로 요인 등을 미리 해결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방안도 생각해봄직하다. 이 체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인구 및 고용 구조의 변화 등 수요 요인과 지역균형발전, 국토개발계획 등에 입각한 주택 공급 여력 등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것이다. 주6)
※주6) 중장기적 관점에서 주택정책을 점검하는 메커니즘은 지금도 작동되고 있다. 다만 현재의 주택정책은 경제적 약자를 위한 주거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주택시장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은 없다고 여겨진다. 주택시장에 대해서는 가격 안정을 위해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시행하여 왔다.
이 결과 민간 부문에서 주택을 공급하는 데 애로가 발견되는 경우 사전에 그것을 제거하는 등 선제적 노력을 기울이는 방식이다. 이 체제가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이해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소위 주택공급협의회를 운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주택 공급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수요를 사전적으로 조절한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로써 주택시장의 기저적 흐름이 큰 폭으로 변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정책 수단이 규제나 강제가 아닌 일종의 도덕적 설득(moral suasion)의 방법을 동원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다섯째, 주택정책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대도시 핵심 지역에서 주택 공급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지방 거주 선호도를 높이는 방책이 절실하다. 지방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교통, 교육, 의료 보건, 문화 등의 기능을 고루 갖춘 주거 공간을 형성하는 데 지자체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같은 차원에서 지방의 핵심 기업이나 기구의 역할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방의 핵심 기업 등이 조업원 등을 대상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경우 조세 혜택 등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는 독일 정부가 기업들의 종업원용 주택투자를 촉진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특히 청년층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반면 지방 기업들은 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사정을 감안하면 이 방안의 효과가 크리라 생각된다.
한편 주택의 구입을 위한 대출의 이자에 대한 조세 감면이나 건설업자 등의 주택건설을 촉진책 등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방식은 주택에 대하여 투기 수요를 유발한다는 부작용이 있다. 이러한 한계를 감안하여 이 제도를 활용한다면 지방에 대해서만 선별적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데 그쳤으면 한다.
공공 임대주택 공급 확대도 경제적 약자들의 주거를 안정시키고 주택시장에서 수요를 줄인다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가 많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하겠다. 공공 임대주택은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지위를 개선시키는 데에도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공공 주택을 운용함에 있어서 이런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더라도 선호 지역에서의 주택 공급 확대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여야 한다. 도시 계획 등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대도시 선호 지역에서 무리하게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은 도시기능의 마비 등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결국 지역별 가격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이를 용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건전한 주택 수요의 육성과 지원>
주택수요는 그 성격을 건전성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소득이나 저축에 의해 뒷받침된 건전한 주택 수요이다. 다른 하나는 소득의 뒷받침 없이 차입금에 의존한 주택 수요이다.주7)
※주7) 주택의 구입 동기를 실수요나 투기성 등의 관점에서 구분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그에 비해 대출 의존성 여부를 기준으로 주택 구입의 건전성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주택 수요의 건전성 여부는 금융안정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책 당국이 후자의 주택수요를 촉발해놓고 또 다른 정책수단을 동원하여 이를 억제하는 모순적 정책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건전치 못한 주택 수요를 근원적으로 억제함과 동시에 건전한 주택수요를 진작하는 정상적인 구조로 신속히 돌아가야 할 것이다.
주택에 대한 총량적 수요는 거시경제 변수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주택가격의 장기적 흐름을 결정하는 데 M1/M2 비율의 변화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런 점에서 주택의 수요는 거시적 차원에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주택가격의 지속적 상승 그 자체가 거시경제 현상으로 볼 여지가 있다. 주택이라는 자산의 예상 수익률이 다른 자산에 비해 높아짐으로써 자산간 맞바꿈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주택 가격의 상승이다.
사실 그동안 금융자산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실물 경제활동의 기대 수익률은 경제성장률로 의제할 수 있다. 금융부문의 수익률은 실질금리로 파악할 수 있다. 이 두 부문의 수익률이 1990년대까지는 대체로 비슷하였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금융부문의 수익률이 실물 부문 수익률에 비해 일률적으로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일종의 거시경제적 불균형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거시경제적 불균형이 발생한 것은 경제성장률의 추세적 하락에 대응하여 거시경제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영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시경제정책의 운용이 과거 20여년 간 되풀이 되어왔다.
그동안의 거시경제정책 운영 과정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경기가 위축되면 거시경제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영한다. 그에 따라 금융상황이 이완된다. 그리고 금융자산의 수익률이 낮아진다. 결과적으로 금융자산의 대체 자산인 부동산, 특히 대도시의 주택이 주목을 받게 된다. 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금융 자금도 주택시장으로 몰리게 된다.
이 상황에서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었다. 주택 구입용 자금 수요가 크게 늘었다. 주택 구입용 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LTV, DTI 등의 규제를 강구하였다. 대출에 의존한 주택 구입이 재무적으로 건전치 못한 것은 사실이고 이를 억제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문제는 정책적으로 이완적인 금융상황을 조성하고 주택 수요를 억제하는 모순적 정책을 시행하였다는 점이다.
건전치 못한 주택 수요를 줄이기 위해서는 거시경제정책을 견실하게 운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차원에서 앞으로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거시경제정책을 운영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삼가야 할 것이다. 특히 주택경기가 상승 국면에 있는 반면 실물 경기는 하강하는 경우에는 거시경제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극구 지양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 거시경제정책 운영에 거시건전성 차원의 위험 요소들을 확실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 주택시장의 불안은 거시경제적으로 막대한 폐해를 가져오게 된다. Mishkin(2008)이 주장한 바와 같이 거시경제정책에서는 잠재적인 불안 요소에 대해 미리부터 대비하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Mishkin, Frederic S., “Monetary Policy Flexibility, Risk Management, and Financial Disruptions,” A Speech at the 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 New York, New York, January 11, 2008.
현재의 거시경제적 불균형을 적극적으로 시정해나가는 방도도 찾아야 한다. 즉 금융자산의 실질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간단하게는 정책금리를 인상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 방안은 부작용이 적지 않으므로 추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금융자금에 대한 수요를 높여 실질 금리를 인상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게 이상적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실물 부문의 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이다. 예컨대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통하여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이 거시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거시경제정책 운용을 전제로 건전한 주택수요를 육성하고 이를 실현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국민소득이 향상되고 이것이 건전한 주택 수요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출에 의존한 주택 수요와는 질적으로 다른 수요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의 안정적 소득을 기반으로 주택 구입을 지원하기 위하여 모기지 대출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봄직하다. 우리나라에서 모기지 대출이 활성화되지 않는 것은 대출신청자들의 장래 소득이 불확실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적극적인 산업정책 등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이 주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여러 모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식되었으면 한다.
4. 주택정책 집행 방식의 개선
주택정책의 집행방식에서도 많은 개선이 수반되기를 기대한다.
주택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종합적인 사고방식이 적용되었으면 한다. 주택시장의 안정 여부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너무나 많다. 특히 차원이 다른 거시경제적 요소들이 주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이런 요소들을 충분히 감안하여 주택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여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책 당국에서는 종합적 관점이나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주택시장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다양하고 그 과정이 복잡한 만큼 주택정책에서는 시장 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주택정책의 효과를 수시로 평가하고 문제점들이 시정되었으면 좋겠다. 종전의 정책을 답습하는 식의 정책으로는 정책의 실효성이 확보될 수 없다. 여건 변화와 새로운 과제 등에 적합한 정책 수단을 적절하게 동원할 수 있는 정책결정의 유연성이 요구된다.
한편 정책에 대한 주기적인 평가 등을 통해 정책 니즈를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대책을 마련하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이제까지는 주택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 정책을 마련하는 식으로 사후대책으로 일관하여 왔다. 중장기 종합계획을 통해 주택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의 관점에서 정책 니즈를 발굴하고 이를 선제적으로 정책에 반영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주택시장 분위기의 조성이나 변화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고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여타 정책과의 연관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불확실성 관리 능력에 대한 신인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수반되어야 한다. 주택시장 정보의 생산과 유통도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 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수단들을 통해 주택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가 향상되면 그만큼 주택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어들게 된다. 이것이 시장참가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가져오게 되고 종국적으로 주택시장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주택정책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주택문제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저성장이다. 주택 문제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늘지 않으면서 나타난다. 이에 대응하여 주택을 확대 공급하는 등의 대책은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다. 즉 주택정책은 주택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책이 아니다. 주택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국민들의 소득수준을 높이고 경제적 약자들이 경제적 지위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이런 차원에서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산업정책과 거시경제정책 등 여타 정책에서 큰 성과를 거두기를 기원한다.
이종규는 누구?
한국은행(1980-2015년) 출신으로 IMF 선임연구원과 금융결제원 상무이사를 거쳐 지금은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경영대학과 미 하와이대학 대학원(경제학박사)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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