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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분열 시대의 천하양분(天下兩分), 복합위기의 정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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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11월16일 20시40분

작성자

  • 지만수
  •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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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국경제 대전망'

 

2023년은 대분열과 천하양분 시대이자, 그 속에서 진행되는 복합위기의 정점을 가계와 기업이 냉철하게 판단하고 가늠할 수 있느냐와 복합적 전환을 이루어낼 정치와 정부의 리더십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는 해다. 

 

천하양분(天下兩分) , 진영과 정책의 이중분할 

 

작년 이맘때 “2022 한국경제 대전망”을 출간하면서 우리는 2022년의 세계가 합종연횡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더해지면서 미-중-러-EU-인도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는 국가간의 합종연횡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 속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산업과 전략적 기술을 둘러싼 산업과 기업의 합종연횡도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합종연횡의 결과가 2023년에는 일종의 ‘갈라진 세상’, ‘천하양분’의 질서로 구체화될 전망이다. 그런데 그 분열은 단지 지정학적 진영화 뿐 아니라 각국이 직면한 경제적 현실과 과제 측면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분열은 이중적이다. 

 

우선 지정학적으로는 국가간 기업간의 합종연횡을 거쳐 일종의 천하양분 구조가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 미래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분리하고 각자 다른 미래를 궁리하고 그것을 제도화하고 있다. 중국의 도전을 의식하는 유럽, 일본, 한국 등 선진국 그룹은 좀더 확실하게 미국의 중국견제망에 동참할 생각이다. 그렇지만 상당수의 개도국들은 온도차를 보이며 중국견제의 전선 바깥에 머물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 국면에서도 선진국 그룹과 개도국 그룹은 온도차를 보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G20 체제 구축을 통해 통합된 세계경제를 바탕으로 일치된 정책대응을 보여준 있었던 주요국가들은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그리고 러-우 전쟁을 거치면서 다시 갈라지고 있다. 수십년간 구축된 글로벌 가치사슬이 아직까지는 작동하고 있지만, 모두에게 자유로운 성장의 공간을 제공하는 만큼이나 다양한 지정학적 분쟁의 충격을 확대하는 통로이자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시에 거시경제적 상황과 그에 대한 주요국의 대응도 세상을 갈라놓고 있다.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풀린 막대한 유동성으로 인한 수요측 요인과 지정학적 갈등이 초래한 글로벌 공급망의 부실화로 인한 공급충격이 2022년 초부터 매우 난폭한 인플레이션 시대를 열었다. 그렇지만 미국이나 EU, 그리고 한국 등이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서 경기침체를 감수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표명한 반면, 다른 많은 나라들은 미국의 빠른 금리인상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고금리와 고환율의 영향을 더 걱정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바깥에 있으며 인플레이션 억제만큼이나 성장과 고용유지를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많은 저개발국들은 식량과 에너지 등 생존의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2023년 내내 인플레이션을 둘러싸고 각국의 대응방향이 서로 충돌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2023년을 앞둔 글로벌 경제는 지정학적으로는 진영과 온도가 다르고 경제적으로는 각국의 당면과제가 서로 다른, 갈라진 천하로 변모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2023년의 세계경제 환경을 대분열과 천하양분이라는 단어로 요약한다. 

 

냉정하게 복합위기의 정점을 판단해야 

 

 대분열과 천하양분의 세상에서는 가계, 기업, 정부의 의사결정이 더 이상 단일한 글로벌 트렌드를 좇을 수만은 없다. 큰 물결도 보아야 하지만, 나와 내 주변이 물결의 어느 쪽에 있느냐도 함께 보아야 한다. 앞에서 오는 물결 뿐 아니라 뒤와 옆에서 삼각파도가 치는지도 살펴야 한다. 에너지, 지정학, 경제, 금융 등 여러 차원의 위기가 상호적으로 증폭하며 전개되는 다층적 ‘복합위기’에 대한 대응이 절실한 것이다.    

 당장 증시, 부동산, 환율, 가상자산의 방향을 읽는 것도 복합적이다. 2023년 자산시장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금리와 환율이다. 하지만 지금의 고금리와 고환율 그리고 그 배후에 놓인 인플레이션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수요측과 공급측을 모두 보아야 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지정학적 상황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속에서 미국도 유럽도 러시아도 석유수출국기구(OPEC)도 각자 다른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다만 무엇이든 정점(peak)은 있기 마련이다. 물론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 가계부채나 외환건전성 등을 매개로 우리 경제를 더 큰 위험으로 몰고 가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2023년 자산시장에서는 그리고 기업경영에서는 누가 인플레이션, 금리, 환율의 피크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예측하느냐가 투자와 사업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 하락의 바닥이 어디냐도 마찬가지다.   


정책 역량과 정치 역량의 시험대 

 

 경제정책은 ‘복합위기’ 속에서 어려운 판단과 선택을 해야 한다. 당장은 미국이나 EU처럼 인플레이션 구조가 정착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기조 하에서 금리의 지속적 인상과 유지를 시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성장이 예상보다도 더 둔화되거나 국제수지와 환율이 급격히 불안해지거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침체가 가계와 금융권에 부담이 되기 시작하면 이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과 저항이 나타날 것이다. 복합위기에 대한 복합적 대응이 정책적 혼란으로 해석되지 않게 하는 정책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2023년이다. 

 특히 현 정부는 교육, 노동, 연금 등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체질을 강화할 수 있는 구조개혁 과제를 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2023년에는 그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하나하나가 청년, 장년, 노년 세대의 미래에 중요한 이슈들이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시대를 맞아 구조적 대응이 반드시 시작되어야 하는 분야요 과제이지만 동시에 경제가 상대적으로 평온한 시기에도 달성하기 어려운 개혁과제다. 이 어려운 과제를 물가, 성장, 환율이 모두 불안한 시기에 밀고 가야 한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근본적이고 개방적인 논의를 통해 사회의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것도, 이해관계자와 정치권을 설득하는 것도 정부와 정치의 역량에 달려 있다.  

 현재 한국의 정치와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한계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걸 핑계 삼으면 정체와 정쟁이 악순환될 뿐이다. 그 한계를 넘어서는 능력과 책임의식을 정부가 보여주어야 한다. 한번에 많은 것을 이루려 하지 말고 작은 분야에서라도 설득과 타협의 성과를 내서 개혁의 분위기와 동력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기업 없는 중국 시장, 중국 기업 없는 미국 시장 

 

천하양분이란 우리 기업들 앞에 놓인 시장이 하나의 글로벌 시장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으로 갈라진 두 개의 시장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이 중국의 산업성장과 영향력 확대를 집중적으로 견제하고 있는 반도체나 배터리 산업에서는 그 양상이 두드러진다. 최근에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제한 확대나 인플레이션방지법(IRA) 등을 통해 두 시장의 디커플링이 아예 제도적으로 고착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이러한 디커플링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미중 중 하나의 시장을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현실에서 나타난 상황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심지어 갈등의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교역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테슬라의 상하이 공장 건설이나 애플의 중국산 메모리 사용 사례에서 보듯 핵심 분야에서 미국기업과 중국기업의 협력도 중단되지 않고 있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를 포함하여, 철강,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적 규모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서나 중국의 쌍순환 전략을 위해서나 미중 양쪽 모두 놓치기 어려운 협력 파트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좀 더 대담하게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미중갈등과 천하양분의 시대에 우리기업은 “미국기업 없는 중국시장, 중국기업 없는 미국시장”을 앞에 두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세계 1,2위(미/중)의 시장에서 세계 제조업 1,2위(중/미) 국가가 서로 갈등하는 상황은 제3국 기업들에게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이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에 지레 위축되기보다, 정확한 지정학적 판단을 바탕으로 대담하고 용감하게 접근한다면 두 시장 모두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양국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유리한 조건에서 확대할 수 있다. 용기있는 기업에게는 난세야말로 또 다른 기회이다. 

 

디지털을 중심으로 선도자의 생태계를 구축해야   

   

2021년 10월 영국에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릴 때까지만 해도, 그린(green)과 디지털이 미래산업의 화두가 될 것이라는 데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2년 벽두에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공급 자체가 불안에 빠지고 가격이 급등하자 석탄 사용 재개 논의가 나타나는 등 탄소배출 억제에 대한 기왕의 합의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도 기존의 탄소배출 절감 시나리오를 재검토하고 있다. 전세계의 일치된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탄소배출 억제다. 그렇지만 당장의 인플레이션 대응과 에너지 확보가 모든 나라에게 중요해졌다. 진영과 정책이 갈라진 세계 속에서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예전과 같은 일치된 합의와 추진 동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미래산업의 대세로서 디지털 전환이 갖는 중요성은 여전히 견고하다. 특히 디지털 산업은 개별 산업으로서 뿐 아니라 산업과 시장 전반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외부효과를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그 디지털 전환의 쌀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를 주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주문형 반도체 생산(파운드리)이나 설계 쪽의 경쟁력도 키우고 있다. 스마트 공장이나 농장의 확대 등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분야에서도 디지털 인프라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나아가 디지털 기반 위에서 만들어지는 IT 플랫폼 면에서도 한국은 독자적인 검색이나 소통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나라이다. 인터넷 방송(OTT)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문화산업의 한류가 가요를 넘어 글로벌 드라마 시장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지난 수년간 국내에서는 빠른 추격자를 넘어 산업의 선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담론이 우리 산업의 과제이자 미래의 비전으로 제시되어왔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반도체, 플랫폼, 컨텐츠 등 이미 많은 디지털 관련 산업에서 세계적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제는 그 성공의 경험을 평가하고 이를 다른 분야로 확산시키는 ‘선도자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기업전략과 정부정책의 과제이다.

 

지금까지 이 책의 주제와 이슈들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2023년을 맞는 가계, 기업, 정부가 준비할 것은 냉정과 용기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피크는 반드시 온다. 주식이나 주택가격의 바닥도 올 수 있다. 냉정하게 그 피크의 시점과 영향을 판단해야 그나마 팍팍한 가계를 살찌울 수 있다. 천하양분이라는 새로운 경영환경에 움츠러들지 않고 대담하고 용기있게 접근하는 기업에는 미국기업이 떠나버린 중국시장, 중국기업이 못 들어가는 미국시장이 펼쳐질 수 있다. 불안한 대내외 경제여건 속에서도 정부는 이미 천명한 구조개혁 과제에 도전해야 한다. 작더라도 협상과 타협의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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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북스 刊, 2022.11.9.,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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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경제추격연구소에서 발간한 ‘2023 한국경제 대전망’<사진>의 서문을 간추린 것이다. 필자인 지만수 박사(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는 책 필자의 일원(一員)이면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경제추격연구소는 2017년 처음으로 ‘한국경제 대전망’을 발간한 이후 올해 일곱 번째로 각 분야의 전문가 26명의 글을 모아 ‘2023 한국경제 대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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